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많아서 무능해지고, 많아서 약해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없어서 강해질 수 있고, 없어서 능력이 임할 수 있습니다. 쉬운 말로 꽉 찬 무능과 텅 빈 능력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없다고 실망합니다. 그런데 그 실망이 실패와 좌절과 고난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실망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실망이 가져다주는 유익은 엄청납니다. 실망해서 끊게 되고. 실망해서 떠나게 되고. 실망해서 집중하게 됩니다. 없어서 작아서 실망해서 얻을 수 있는 축복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애급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은 애급의 삶이 지긋지긋해졌습니다. 430년 동안 정들었던 애급을 미련 없이 떠나게 됩니다. 만약에 바로가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면 모세의 10가지 재앙에도 출애굽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에 대한 실망이 애급에 미련을 끊게 만든 것입니다. 이렇듯 때론 나를 지긋지긋하게 만드는 것, 나를 질리게 만드는 것이 축복이 된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성전 앞에 앉은뱅이를 만납니다. 은과 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을 힘입어 일어나 걸을 수 있게 했습니다. 없어서 더 강해진 것입니다. 당시에 은과 금이 많았다면 그것 때문에 주님의 능력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욥은 고난을 당할 때에 친구들의 위로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실망뿐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위로보다는 자기 살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욥의 고난을 같이 동행해 줌으로 돕기 보다는 오히려 고난당하는 욥을 비난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실망한 욥은 하나님을 주목합니다. 가치 없는 인간의 기대를 던져 버리고, 진짜 위로의 원천이신 능력의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마치 쥐엄 열매까지 라도 주는 자가 없을 때,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원했던 탕자와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도 실망이 왔다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망의 힘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희망의 원천인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역전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예배 자가 의인인 것은 십자가 보혈의 씻음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나의 의는 사라지고, 십자가의 의로 옷 입은 사람이 예배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 자는 의롭게 됩니다. 세상의 유일한 의인은 예배 자뿐입니다. 그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자는 주를 힘입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예배 자는 곧 기도 자가 됩니다. 기도를 늘리는 길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말을 많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말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 할 말이 없어집니다. 사람의 말을 줄여야 기도가 늘어납니다. 그래서 기도는 경건의 문제라기보다는 지혜의 문제입니다. 실망되는 일을 회복하는 길은 기도에 힘쓸 때입니다. 그러면 강력해 질 것입니다.
[김병규 칼럼] 실망이나 잘림이나 없을 때 강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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