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이는 아버지의 날품팔이와 어머니의 구걸로 입에 겨우 풀칠하는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돈도 직장도 없는 아버지는 늘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하면 엄마를 때렸습니다.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아버지를 버려버렸습니다. 아버지가 멀리 돈 벌러 가신 틈에 엄마는 몽실이를 데리고 댓골 김 주사에게 시집을 가버렸습니다.
그렇게 몽실이는 새 아버지 김 주사와 살게 되었습니다. 새 아버지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 밥걱정은 안 했지만 식모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엄마는 새 아빠한테서 동생 영득이를 낳았습니다. 동생 영득이가 태어나자 새 아버지는 몽실이를 더욱 심하게 구박합니다. 몽실이는 새 아버지의 폭력으로 다리를 다쳐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새 아버지 밑에서 고생하던 몽실이는 고모의 도움으로 친아버지한테로 돌아갑니다. 당시 친아빠는 남의 집 머슴으로 얹혀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도망간 엄마에 대한 분노 때문에 몽실이를 심하게 구박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빠는 고모의 주선으로 북촌 댁에게 새 장가를 갔습니다.. 가냘프고 착한 여자 북촌 댁은 몽실이를 살갑게 대해 주었습니다.
이 즈음에 6.25가 터져서 몽실이 아버지는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북촌 댁은 아들을 원했지만 원하지 않는 딸을 낳고 곧 죽었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젖 한번 물리지 못하고 새 엄마는 죽었습니다. 몽실이의 배다른 여동생은 난리 통에 태어났다고 해서 '난남'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몽실이는 죽은 새엄마가 낳은 배다른 동생 난남이를 업어 키우며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전쟁은 더 심해집니다. 살길이 막막한 몽실이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친엄마를 찾아갔다가 잠시 친 엄마와 같이 살게 됩니다. 그러나 곧 전쟁터에 갔던 새 아버지가 돌아오자 몽실이는 본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몽실이는 지인의 소개로 식모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을 데리고 들어간 식모 살이었으니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배려로 몽실이는 잠시 나마 편하게 살수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군대에 간 친아버지가 돌아왔는데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포로로 잡혀 있다가 맞아서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몽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야 한다.'라고 굳게 다짐을 했습니다. 몽실이는 깡통을 차고 장터에서 구걸했습니다. 댓골로 시집간 친어머니 밀양 댁은 셋째 아기를 사산한 후 심장병으로 죽었습니다.
몽실이는 배다른 동생과 성이 다른 동생들을 데리고 억척스럽게 살았습니다. 아버지 병세는 점점 악화됩니다. 몽실이는 아버지를 자선병원에 맡기려 했는데 아버지는 병원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죽었습니다. 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몽실이는 다시 흩어진 동생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배다른 동생, 씨다른 동생들을 키우며 어렵게 살아갑니다.
세월이 흘러 삼십 년이 지났습니다. 몽실이는 구두 수선쟁이인 꼽추 남편과 결혼해서 남매의 어머니가 되었고, 배다른 동생 난남이는 결핵으로 요양소에 입원해서 생활합니다. 시장에서 노점을 하는 몽실이는 닭찜을 싸서 들고 한 달에 한 번씩 요양소로 동생난'난남'이를 찾아갑니다. 비록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상처를 품은 몽실이의 삶은 고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이상은 한국 근대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체험한 작가 권정생의 동화 '몽실언니'의 줄거리입니다. 그는 징용 노동자의 아들로, 일본에서 돌아와 안동 시골 교회의 종지기로 살았습니다. 몸소 체험한 6.25 전쟁의 처절한 아픔을 작품에다 토해냅니다. '전쟁은 무지막지한 고통을 낳는다.'는 작품의 메시지가 절절합니다.
온갖 아픔과 눈물 그리고 쓰라린 상처를 남긴 한국전쟁이 70주년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몸서리쳤던 전쟁의 고통이 잊히는 듯합니다. 정부도, 사회도, 심지어 군대도 전쟁을 쉽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전쟁을 모르는 탓입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킨 북한에 대한 경계심도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 무서운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을 준비하는 북한을 마치 오랜 친구 대하듯 하는 유력한 사람들을 보면서 탄식과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성경 사사기 3장은 전쟁을 모르는 세대들에게 전쟁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쟁을 모르니 전쟁에서 구원의 팔을 펴신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래서 교만하고 방자합니다. 문득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전쟁을 알고 있을까?" "우리는 전쟁의 참상을 기억할까?" "우리는 전쟁에서 우리를 건지신 하나님 은혜를 기억할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전쟁을 기억하고 전쟁을 두려워해야 할 6월에 조차도 전쟁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강태광 목사(남가주 625 한국전쟁 70주년 예배 진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