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같은 재난이 갑자기 닥치면 모든 사람에겐 끈질긴 생존 의식이 발현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남을 살피기보다 자신과 자기 가족을 돌보는 데 급급하게 된다. 미국 내에서 COVID-19의 집단 발병이 처음 일어난 곳은 북서부 워싱톤 주(Washington State)의 요양원들이었다. 그때 한 요양원에 들어가 자원하여 의료활동을 했던 여성 간호사를 뉴스에서 인터뷰했다. 인터뷰 진행자가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왜 굳이 자원해서 거기 들어가셨나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나요?"
그 간호사는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답했다.
"저는 간호사거든요."
별 생각없이 TV를 보고 있던 내 눈에도 나도 몰래 눈물이 고였다.
내가 위의 이야기를 나누자 가깝게 지내는 교수님 한 분이 마음을 열고 자기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다. 현재 COVID-19 환자 병동에서 지원팀 소속 간호사로 근무 중인 그의 아내가 얼마전 다음과 같은 요청을 해왔다고 한다.
"여보, 지금 뉴욕에 코로나 사태로 의료진이 많이 부족하데요. 제가 한달 간 뉴욕으로 자원봉사로 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 당신이 지금 이 곳에서도 이미 코로나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보고 있는데, 굳이 꼭 뉴욕에까지 가서 봉사를 해야겠어?"
아내가 위험에 더 노출되는 일을 막고 싶어 한 말이기는 하나, 자기 모습이 마치 세계 선교를 나가겠다는 교인만 보면 일단 무조건 말리며 본 교회에 더 충성하라고만 조언하는 목사와 같다고 이 교수님은 자조적으로 고백했다. (교수님의 아내 분은 가족의 만류 가운데 자원봉사 지원시한을 놓쳐 비록 뉴욕에 가지는 못 했지만, 캔자스시티의 소속 병원에서 COVID19 환자들을 계속 섬기며 쉽지 않은 상황 가운데도 간호사로의 소임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필자에게는 이 두 분 간호사 이야기가 그리스도인이 현 시점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하나의 유비적 사건(analogical event)으로 다가온다. 소명 의식은 행동을 양산한다. 이 간호사들의 소명 의식은 용기 있는 희생적 행동을 낳았다. 그리고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오늘 우리가 피하고 싶어하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질문을 제기한다. COVID-19이 주는 여러 도전과 다양한 어려움을 삶 속에서 피부로 경험하고 있는 이 시기에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set-apart) 자'로 부름 받은 성도의 소명의식이 과연 우리를 거룩하게 추동하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성도인 우리 역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만 몸부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COVID-19로 인한 금번의 도전과 위기를 그저 가볍게 여겨도 좋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도전과 위기가 우리로 하여금 성도로서 살지 않아도 될 예외를 허락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위기와 도전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재확인하고, 이를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시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COVID-19의 크고 작은 여파 한복판에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 내어 주시고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우리는 진정 따르고 있는가?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있는 이 시간에 주님의 본을 따라 타인을 위해 손해 보고 희생하는, 그 의미 있는 몸짓이 과연 우리에게 존재하는가? 아니면 오직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경제적 생존을 챙기는 일에 급급한가?
자신과 가족의 건강, 그리고 경제적 생존을 챙기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 일들을 챙기는 것이 지금 우리의 관심사의 전부라면, 우리의 제자도가 현재시제(present tense)가 아님이 분명하다. COVID-19가 가져온 다양한 도전들은 각각의 상황에 적합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지만, 우리가 처한 환경의 다양성 가운데 부동의 진리가 있으니, 그 어떤 상황 가운데도 우리가 주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구원(엡1-3장)에 대해 설명한 후 편지 수신자들을 향해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엡 4:1)고 역동적으로 권면한다. 여기서 바울은 특정 직업과 관련된 소명에 관해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의 고귀한 소명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의 권속이 되도록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받았다면, 마땅히 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성도 간에 사랑과 연합의 관계를 힘써 지키고(엡4:1-16), 주변에서 누가 어떻게 살든지 거기 휘둘리지 말고 '빛'에 속한 자로 살며(4:17-5:20), 그리스도인 답게(즉, 예수님을 주로 모시는 자 답게) 가족을 존중하며(5:21-6:9), '답답할 정도로' 신앙의 근본에 충실함으로써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주신 그 승리를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라는 것이다(6:10-20).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희생적인)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는 것이다(5:2).
COVID-19의 여파 가운데 우리는 이 시기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글로벌 팬데믹(Global Pandemic)의 시대 한복판에서 성도로 부름 받은 은혜의 소명이 지금 우리의 삶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왜 굳이 그렇게까지 손해를 보고 희생하셨어요? 그럴 필요 없었잖아요?"라고 누군가 우리에게 말하는 일들이 자주 있으면 좋겠다. 그 때 우리가 바리새인 같은 허영심과 종교적 자만심 들떠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로 불러 주신 그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소명에 감격해서 "저는 그리스도인이거든요"라고 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그렇게까지 손해보고 희생하기가 힘들다면, 적어도 자기 생존의 욕구의 알을 깨고 나와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배려가 담긴 친절한 말 한 마디, 따뜻한 격려의 문자 한 통이라도 꼭 나눌 수 있기 바란다.
행동을 낳는 소명 의식이 성도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다. COVID-19로 인해 삶의 무게가 여러모로 무겁고 버겁더라도 우리가 주 예수의 사람으로 오늘을 살 수 있기를 간구한다. 지금 상황이 어렵더라도 우리가 이 시기를 그리스도의 충성된 제자로 살 수 있기를 간구한다. 어찌 들으면 좀 '막연'하고 '따분'하게 들릴 수 있는 바울의 말(그러니까 그리스도를 위해 투옥된 그때 그가 했던 말)이 오늘 우리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기를 갈구한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엡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