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보면 참 같은 뜻인데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見(볼 견)이 있고 觀(볼 관)이 있습니다. 뜻은 똑같이 "보다" 이지만 용례와 의미가 다릅니다. 세상을 두루 보고 듣는 것을 見聞 (견문)이라 하고, 주의 깊게 보는 것을 觀察 (관찰)이라고 합니다. 즉 見(볼 견)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되고, 觀(볼 관)은 속을 들여다 보고 의미를 생각하며 볼 때 사용되는 한자입니다. 듣는 것을 한자는 聞(들을 문)이 있고 聽(들을 청)이 있습니다. 所聞 (소문)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전하여 들리는 말' 입니다. 반면에 귀를 기울여 집중하여 듣는 것을 傾聽 (경청)이라 합니다. 즉 聞 은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이고, 聽 은 귀를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말에도 言 (말씀 언)이 있고, 語 (말씀 어)가 있습니다. 語는 國語 (국어), 英語 (영어), 佛語 (불어)와 같이 일반적인 언어를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言은 直言 (직언), 妄言 (망언), 證言 (증언)과 같이 의미를 담아 표현된 말에 대해 사용됩니다. 이와 같이 같은 뜻인데 그 담겨진 의미가 다릅니다.
부유(富裕)와 부요(富饒)도 그와 같습니다. 裕(넉넉할 유), 饒(넉넉할 요) 둘 다 뜻은 넉넉하다 입니다만
裕(넉넉할 유)는 여유(餘裕), 유복(裕福)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이 넉넉할 때 사용되고, 饒(넉넉할 요)는 풍요(豊饒)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음이 넉넉할 때 사용됩니다. 그래서 개혁개정 성경에는 이 둘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49: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富裕)함을 자랑하는 자는", "눅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富饒)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롬10:12 ...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富饒)하시도다"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富饒)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富饒)하게 하려 하심이라" "계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富饒)한 자니라"
코로나19으로 빈부의 차에 따라 대응하고 반응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습니다. 자신들의 편안과 안전만을 위하고 사는 사람들은 돈 많은 부유(富裕)한 사람들이겠지요. 이 어려움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분들을 돕는 부요(富饒)한분들을 뵙니다. 혼자 계신 어르신 분들에게 도시락을 준비하여 전해 주시는 분들, 열악한 꽃집을 운영하는 분들을 위해 인터넷 주문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과 앱을 만들어 드리고, 심지어 직접 배달을 하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그 젊은 분에게 얼마나 받느냐 물으니 큰 눈을 껌뻑이며 어짜피 시간이 남아 그냥 자원 봉사해 드리는 것이라고 답하는 모습에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은 '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보다 더 가난한 사람은 '줄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때에 소유가 넉넉한 부유(富裕)한 사람 말고, 마음이 넉넉한 부요(富饒)한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