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존경을 받은 인물은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on) 대통령이다. 링컨은 미국인들은 물론 외국인들로부터도 많은 존경을 받아온 위대한 인물로 평가된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링컨을 존경한다고 할 정도이다. 그는 변호사, 사업가, 하원의원과 16대 대통령을 지내는 등 화려해 보이는 이력, 좋은 성품과 국민을 위한 정치로 유명하지만, 실상 그 이면에는 수많은 실패와 정신병 경력까지 소유한 사람이었다.
[2] 충격적인 링컨의 실패 경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809년 켄터키 주에서 태어났다. 1816년 그의 가족이 집을 잃고 길거리로 쫓겨났다. 1816년 그는 혼자 힘으로 가족을 먹여 살려야만 했다. 1818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1831년 사업에 실패했다.
[3] 1832년 주 의회에 진출하려 했으나 선거에서 떨어졌다. 1832년 직장을 잃고 법률 학교에 입학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833년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나 연말에 완전히 파산했다. 이 때 진 빚을 갚기 위해 17년 동안 일했다. 1834년 다시 주 의회 진출을 시도해 성공했다. 1834년 약혼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큰 상처를 받았다.
[4] 1836년 극도의 신경쇠약증에 걸려 병원에 6개월간 입원했다. 1837년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1838년 주 의회 대변인 선거에 출마했으나 실패했다. 1840년 정부통령(대통령과 부통령을 아울러 이르는 말) 선거 위원에 출마했으나 실패했다. 1843년 미국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실패했다. 1846년 하원의원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됐다.
[5] 1848년 하원의원 재선거에 출마했으나 실패했다. 1849년 고향으로 돌아가 국유지 관리인이 되고자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54년 미국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실패했다. 1856년 소속 정당의 대의원 총회에서 부통령 후보 지명전에 출마했으나 백표 차로 떨어졌다. 1858년 상원의원에 다시 출마했으나 또 실패했다. 수없는 실패로 점철된 그의 불행한 인생은 성공과는 아주 거리가 먼 듯했다.
[6] 하지만 그는 마침내 성공했다. 1861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했다. 1864년 대통령에 재선됐다. 이 한 마디는 지난 과거 그의 무수한 실패들을 완벽하게 덮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링컨은 어릴 시절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그런 링컨을 교육시킨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링컨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쓰는 법을 가르쳤다.
[7] 그는 닥치는 대로 독서를 했다. 나중에 변호사도 독학으로 책만 읽어서 된 것이다. 링컨은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중단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면 굳이 다른 인물을 찾을 필요가 없다. 링컨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평생에 걸쳐 실패와 마주쳐야 했다. 무려 8번이나 선거에서 패배했고, 두 번이나 사업에 실패했다. 몸은 신경쇠약증으로 고통 받았다. 링컨은 수없이 중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단하지 않았다. 중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8] 링컨은 대통령에 재선되고 1년 후에 암살당하기 전까지 그의 인생 57년 동안 너무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그의 마지막 장면도 암살이라는 흑역사로 마무리했다. 링컨은 자신의 실패에 주저앉지 않았다.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반대로 승리했다. 그의 승리로 미국은 마침내 노예제도 해방을 이루었고,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문장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링컨을 대변해주는 중요한 특징이다.
[9] 2003년 이런 링컨의 신앙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 한 권 출간되어 공전의 히트를 친 일이 있었다. 전광 목사가 쓴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생명의말씀사, 2003)이다. 이 책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링컨 대통령의 신앙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삶 전반을 살피고 있다. 링컨에 대한 많은 책이 출간됐지만 그의 신앙에 관해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으로는 최초라는 점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무려 50만 부나 팔렸을 정도로 말이다.
[10] 이 책이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에게 오르내리자 그 내용에 대한 의문제기와 반박기사가 나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링컨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모른 채 그의 신앙을 너무 좋게 포장해서 집필했다는 내용이었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한 것은 자신의 신앙 때문이기보다는 정치적 입지로 인한 이유가 컸으며, 또한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신앙생활을 했다는 증거가 없고, 그는 무신론자로 살다가 암살당했다는 충격적인 폭로였다. 이에 따른 전광 목사의 반응이 요구됐었는데, 지금까지 그는 침묵모드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11] 1997년 미국 캘빈 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내가 유학하던 시절이었다. 그 신학교는 도서관에 책이 많기로 아주 유명한 학교이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페이퍼 작성을 위해 소논문들을 찾던 중 흥미로운 제목의 글이 하나 눈에 띄었다. '링컨은 거듭난 크리스찬이 맞는가?'(Was President Lincoln a born again Christian?) 궁금증이 유발됐으나 읽지 않기로 했다. 이런 제목이면 으레 기존의 생각을 뒤엎는 부정적인 내용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었다.
[12] 내 마음의 우상 중 한 분인 링컨에 대한 실망감이 생길까 걱정되는 마음에 그냥 지나치다가 학자적 양심과 호기심이 발동되어 어쩔 수 없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끝까지 읽은 후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그의 신앙에 대한 여러 의문들이 제기되긴 했으나, 그는 크리스천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게 맞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전광 목사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그에 말에 의하면 당시 기독교 출판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베스트셀러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은 나 때문에 출간됐다는 것이다.
[13] 사실 전광 목사가 그 책을 집필할 무렵 그와 나는 시카고의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신대원 2년 후배인 그는 나와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LA에 담임 목회를 하러 떠나버리자 너무 외로웠다고 했다. 그 고독을 달래기 위해 그동안 수집하고 연구해온 자료들을 가지고 집필에 집중했다고 했다. 단 권에 50만 부나 판매될 정도로 유명세를 탄 책이기도 하고, 내가 집필에 영향을 미친 책이라 하기도 하고, 전광 목사와의 친분 때문이기도 하고, 링컨 대통령의 신앙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필요하기도 하고 해서 나는 사명감을 갖고 링컨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보기로 마음먹었다.
[14] LA에서 담임 목회를 하다가 박사 논문을 마치기 위해 학문의 고향인 시카고로 컴백했을 때 나는 전광 목사가 베스트셀러를 집필하고 이사 간 바로 그 아파트로 들어갔다. 2003년 학위를 마친 나는 귀국해서 총신신대원에서의 9년간 강의를 마치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의 설교학 교수로 사역하기 시작했다. 2017년쯤으로 기억한다.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이 있는 시카고로 가서 지난 날 전광 목사가 먼저 방문했던 스프링필드(Springfield)를 가족과 함께 찾아갔다.
[15] 일리노이(Illinois) 주도인 이곳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 16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17년 동안 거주한 자택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그의 박물관이 있는 유명 관광지였다. 미국은 차 뒤 번호판(License Plate)에 주마다 특징되는 물건과 별명을 붙이게 되어 있는데, 50개주 가운데 유일하게 인격체가 들어간 곳은 일리노이 주밖에 없다. 일리노이 주는 '링컨의 고향'(Land of Lincoln)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그만큼 링컨의 영향이 지대한 곳이기 때문이다.
[16] 스프링필드에 도착한 나는 링컨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들을 방문하면서 그의 신앙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캐기 위해 이모저모로 애를 썼다. 박물관 서점에 들러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과연 링컨이 교회출석도 하지 않고 무신론자로 살다가 암살됐는가 하는 점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해보았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지면서 그의 신앙에 관한 흔적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 결과 내린 결론은, 다소 실망스럽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만큼 링컨은 신앙이 출중한 사람은 아니었단 사실이다.
[17] 그가 암살당한 직후 영부인이 고백한 말에서도 링컨이 정말 신앙적인 사람이었는지는 알기 힘들었다. 노예해방이 하나님의 뜻이라던 그의 신앙의 열정만으로 행한 것이 아님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링컨이 분명 대통령 재직 중에도 교회에 출석했던 교인이었다는 점은 확인이 된다. 당시 백악관에서 세 블락 떨어진 곳에 '뉴욕가 장로교회'(New York Avenue Presbyterian Church)란 곳이 있었는데, 이곳은 1861년 3월 4일 링컨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처음 출석하여 암살 전까지 자주 출석했던 교회이다.
[18] 뿐만 아니라 그곳 발코니 북쪽에는 '링컨 스테인드 글래스 창문'(The Lincoln Stained Glass Window)이라는 것이 있다. 링컨이 기도하는 장면이 새겨진 스테인드 글래스인데, 그가 이 교회에 출석한 것을 기념으로 만든 것이다. 링컨이 남긴 말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나는 성경의 진리를 부인한 적은 결코 없다. 그리고 나는 종교 전반이나 특히 기독교의 어떤 교파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I have never denied the truth of the Scriptures; and I have never spoken with intentional disrespect of religion in general, or of any denomination of Christians in particular).
[19] 링컨에 대한 연구를 마친 후 한국에 돌아와 전광 목사에게 전화를 해서 스프링필드를 다녀온 일과 조사 결과를 얘기하면서, 링컨에 대한 문제로 더는 부담을 가지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그가 무신자가 아닌 신앙인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개연성이 더욱 많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 가슴 속 믿음의 작은 영웅 링컨의 적나라한 모습은 우리에게 다소 실망을 안겨다준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업적이나 입지전적인 그의 커리어는 우리에게 많은 도전과 감동을 주고 있다.
[20] 비록 그가 우리가 알아왔던 것처럼 대단한 신앙의 인물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계모로부터 받은 성경에 영향을 받았고 하나님이 그의 고백과 정치이력 속에 떠나지 않았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링컨에 대한 해부를 마치면서도 여전히 그는 내 가슴 속 작은 영웅에서 지워지지 않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에 대한 존경심이 컸기 때문이리라.
인간은 누구나가 다 불완전한 존재이다. 우리가 따르고 본받고 영광 돌리고 예배드릴 유일한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 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하며 링컨에 관한 소고를 마친다.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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