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4월 12일은 기독교에 중요한 절기 중 하나인 부활절입니다. 그런데 올해에 맞이하는 부활절은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인해 예년과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되고 그러므로 조금 더 깊은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부활 신앙이 현재 코로나 19의 문제에 어떤 대답을 줄 수 있을까요?
헤르만 바빙크는 '하나님의 주권은 영혼구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자연과 역사의 모든 부분을 수용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어느 선까지 작용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계시는 만물 안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눈을 감고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깨달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눈으로 본다고 해서 모두가 바른 이해를 갖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해하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앙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함을 전제에 두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두 축을 붙들고 갑니다. 십자가가 죽음이라면, 부활은 생명입니다. 십자가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단절과 허무와 탄식과 불가능의 현장이었다면 부활은 그들에게 생명과 경이로움과 감사의 자리입니다.
부활신앙이란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경험하는 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류 역사 속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생소하고 낯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이해하려면 먼저 죽음이 무엇인가? 를 이해해야 합니다.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단절입니다. 우리의 익숙했던 모든 것에서의 단절입니다. 숨 쉬는 것, 먹고 마시는 것, 기쁨과 슬픔의 감정까지 부활이란 어떤 의미에서 그 모든 단절에서 다시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활이란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님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 신앙을 갖게 될 때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부활 신앙이 우리의 경험과 사고, 이해의 장벽을 깨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현실, 지금 내가 탄식하는 것, 지금 내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 내가 절망하고 있는 것, 그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 줍니다.
부활이 이 경험을 우리에게 열어 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마주하는 현실이 어둡고 무거울지라도, 그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란 사실을 알려주면서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예수님의 생명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먼저 이 세상의 가치관은 어떻습니까? 모든 삶의 순간을 우연으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부활의 신비, 생명의 신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생명이 하나님이 주권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중요한 건 물질이며 그러기 위해서 '지식과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생명의 신비, 부활의 축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부활의 생명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미래가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왜 기쁜 소식일까요? 모든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오열하고 슬픔에 멈춰 섰을 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사건은 죽음을 넘어선 사건입니다. 생명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차별의 경계를 넘어섭니다. 인종과 사상, (편견)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빈부의 경계를 초월합니다. 진정한 나눔을 실천합니다. 그럴 때 참된 살롬이 이루어집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니 너희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손을 붙잡는 것, 이 아름다운 세계의 생명들을 누리고 즐거워하면서 감사하는 것, 이것이 예수의 부활을 믿고 그 부활을 소망하며 사는 성도의 삶이라 생각해 봅니다.
벤츄라교역자협의회 회장 김진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