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에게는 아내가 1,000명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 인가? 묻는다면 답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일까? 목마름 때문입니다. 10명 정도라면 쾌락의 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를 넘어섰다는 것은 자기 인생이 목말랐다는 뜻입니다. 시오노 나나미라는 분이 쓴 책,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는 아름다운 건물을 지을 수 없을 때, 큰 건물을 지었다." 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실력이 부족해서 아름다운 건물을 지을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실력을 기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건물 지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을 수 있는 남는 힘 있으니 큰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보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짜 만족이요. 허망한 일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 없으면, 그냥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 머물러서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없습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그게 오히려 아름다움인 것입니다. 그러나 발버둥을 칠 때가 언젠가 아름다울 수 없을 때입니다. 그래 다른 것으로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는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회심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에게는 채울 수 없는 공허가 있었습니다. 채워질 때까지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러면 깊어져 진실 된 하나님을 만나 다시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 힘이 있다 보니까 숫자로 채워버립니다. 양으로 밀어 붙입니다. 그래서 최악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가장 멋진 남자는? 외로움에 찌든 사람입니다. 장차 올 그녀를 기다리며 외로움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 것으로 채우려 하지 않습니다. 이삭같이 40세가 되도록 들판에서 묵상하며 기다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 준비는? 외로움인 것입니다. 장차 만나게 될 그를 기다리며 지금은 한껏 외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목마름을 지니고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채워짐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 영광 앞에서 없음을 고백합니다. 결국 입술이 더러운 중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베드로도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아무것도 없음에 머물러 있을 때 주님이 오셔서 있음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령의 임재를 구했듯 우리도 힘들어도 성령 계시면 회복됩니다. 중심에 하나님 계시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물질도, 건강도, 관계도, 가정도. 예배로 돌아오고. 기도의 자리로 돌아오면. 나를 물고 있는 죄의 거머리가 힘을 잃고, 물러가게 되고 막힌 곳도 열리게 될 것입니다.
[김병규 칼럼]"없음"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음"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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