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다 말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입에서 독을 내뿜고, 화살을 날린다. 생각없이 편하게 한 말이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시원하게 내지른 한마디가 열 배의 파도가 되어 덮쳐 올 때도 있다.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 매번 뒤늦게 깨닫는다. 어떻게 하면 오해받거나 상처주지 않고 품격 있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전두환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대한민국 대통령 5인의 정상회담 통역사이자 국제회의 통역사로 활동해 온 최정화 교수는 말로써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들은 하나같이 남다른 통력(通力)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통력이란 소통할 때 사람과 교감하는 힘이다.
통력의 내공이 있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말의 폭이 넓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안다. 대화 상대가 누구든 소통하는 순간에 무섭게 집중하며 최선을 다한다. 소통에서 디테일을 중시한다. 자신의 경험을 자기만의 언어에 담아 표현하는 것을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긴다.
말이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우선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 뛰어나야 한다. 두 번째는 내용 자체가 논리적이어야 한다. 세 번째는 상대방과 감정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말’과 ‘소통’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소통은 나와 상대가 같은 정보와 감정을 공유하는 활동이다. 메시지 못지않게 서로의 관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점에서 소통은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일이 아님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요된다. 하지만 말은 굳이 대화 상대가 없어도 얼마든지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다. 즉 ‘너’라는 대상이 있는지 여부가 말과 소통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소통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던지는 자아’와 ‘타자의 말을 듣는 자아’가 한데 어우러져야 균형을 이룰 수 있다.
혼자 하는 소통은 없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말을 꺼내는 목적은,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자기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며 공감하며 나누는 것이다. 청중이 단 한번도 시선을 떼지 않고 주목해줄 수 있는 시간은 2분이다. 혼자 시간을 독점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청중은 표현이 평범하더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에 열광한다. 말을 할 때 내가 상대를 보지 않으면 상대 역시 나를 바라볼 리 없다. 발표자의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는 시선 처리는 청중에게 신뢰를 준다. 듣는 이들은 퇴장하는 뒷모습도 주시하므로 마지막까지 자신감 있고 분명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다.
세련된 말하기, 품격 있는 소통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말투나 태도만큼이나 내용도 중요하다. 아무리 언변이 좋아도 ‘말할 거리’가 있어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인상 깊은 말하기를 하고 싶다면 자신만의 구체적인 콘텐츠를 만들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분야든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해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콘텐츠를 쥐고 있으면 존재감이 돋보이는 것은 물론, 설령 말솜씨가 유창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그 내용에 집중하게끔 할 수 있다.
말하는 타이밍은 말의 격을 결정하는 요소다. 타이밍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것도 없다. 특히 타이밍만 제때 지켜도 내 말이 금 사과처럼 가치 있게 빛날 수 있다. 나이를 먹었다고 어른인 것은 아니다. 그에 걸맞은 경험도 물론 필요하지만 ‘어른에 맞는 언어’를 구사할 때야 말로 어른이 된다. 어른에 맞는 말이란, 타인의 기운을 북돋워주며 그에게 지금 필요한 내용을 담은 말이다.
이 책은 아무 말이나 던져보고 통하면 다행, 아니면 대충 수습하기를 반복하는 우리의 말하기 습관에 품격을 얹어준다. 말로 쌓이는 오해와 분노를 넘어, 서로에게서 각기 다른 언향(言香, 언어의 향기)을 느끼는 소통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첫 마디를 행운에 맡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