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 노래 안 해도 제 소리 안 나요!
"하루만 노래 안 해도 제 소리 안 나요!"
소프라노 신영옥 씨가 한 말이다. 그녀는 2020년이 데뷔 30주년을 맞는다. 그녀는 무대 위 동작과 자세의 '교과서'로도 인정받는다.
거장 수준에 도달한 사람도 이런 말을 한다면 이제 막 시작하거나 중간 수준인 사람들은 '꾸준히', '매일', '지속적' 이란 말은 삶의 일부분이 돼야 한다.
필자의 독서와 글쓰기 원칙 중 하나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다. 필자가 독서를 시작할 때, 세운 독서원칙이 있다. '꾸준히 하자!'
이 말을 붙들고 10년간 독서를 했다. 이젠 '꾸준히 하자!'라는 구호가 다른 구호로 바뀌었다.
'죽을 때까지 꾸준히 하자!' 죽을 때까지 '꾸준히 독서하고 글을 써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독서와 글쓰기뿐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것인 성경 읽기와 기도도 동일하다.
미국 대표적 설교자이자 미국 제2차 대각성 운동을 주도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20대 때 결심한 결심문에 이런 말이 있다.
"꾸준히, 지속적으로, 가능한 한 자주 연구함으로써 성경을 분명하게 알고 성경을 아는 지식에 자라가기로 결심한다."
조나단 에드워즈도 성경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 '꾸준히'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경을 알기 위해 꾸준히 연구하며 살았다.
일본 메이지대 교수인 사이토 다카시는 그의 책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에서 글쓰기 원칙도 '꾸준히'라고 이야기한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처럼, 원고지 열 장 쓰기를 꾸준히 연습하면 어느덧 글쓰기 실력은 튼튼해질 것이다."
나아가 김준태는 그의 책 《군주의 조건》에서 군주가 갖춰야 할 것 두 가지인 존덕성(인간이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선한 덕성을 존숭하고 보존하는 것)과 도문학(학문을 통해 선한 덕성을 배양하는 것)도 '꾸준히'가 중요함을 역설한다.
그는 존덕성과 도문학 공부가 끝이 없는 여정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멈춰선 안 된다. 태산의 정상 위에 올라서서, 다시 또 다른 태산을 찾아 오르듯 만족하지 않고 꾸준히 수양에 힘써야 군주다운 능력과 자세를 갖출 수 있다고 한다.
군주의 조건인 존덕성과 도문학을 이루기 위해 중요한 것이 '꾸준함'이다.
독서에서의 키워드는 다른 것이 아니라 '꾸준히'다. 설교자는 독서를 '꾸준히' 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꾸준히'가 아니라 '가끔'이 더욱 적절한 말이라는 것이다.
교회 리더인 목회자, 설교를 통해 청중을 하나님께 인도해야 하는 설교자들은 '꾸준한 독서'가 답이다. 설교자들의 독서에 '꾸준히'만 장착하면, 죽을 때까지 책과 함께 행복한 삶,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지적 성장은 '꾸준히' 함으로써 이뤄진다
독서는 포물선 형태가 아니라, 계단 형태로 성장한다. 필자의 경험을 봐도, 포물선이 아니라 어느 순간 점프 하는 식으로 성장했다.
독서가 계단식으로 성장함을 안다면, 독서하는 중 안달하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설교자들이 독서를 잘 하다가도,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안달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성장이 더디니 도중에 포기한다. 답이 나올 때까지 독서하는 설교자가 거의 없다.
설교자들은 독서를 '꾸준히' 해야 한다. 하지만 성장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꾸준히' 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에 어떤 것도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것은 없다. 자녀들의 키도 자라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어느 순간 훌쩍 자란 것을 보게 될 뿐이다.
콩나물이 자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콩을 콩나물시루에 넣고 매일 물을 준다. 그 콩에 물 준 사람이 한눈을 판 사이에 쑥쑥 자란 것을 볼 수 있다.
독서하기는 마치 콩나물에 물 주기와 같다. 콩나물 시루에 꾸준히 물을 주듯 독서를 하면, 어느새 성장해 있다. 독서는 다른 것과 달리 계단식으로 성장한다. 콩나물이 자라듯, 나도 모르는 새 성장한다. 그러므로 '꾸준히' 독서를 하면 된다.
세상 원리는 단순하다. "들어간 대로 나온다"는 것이다. 즉 '아웃풋'은 '인풋'의 결과물이다. 인풋을 하되 '가끔씩'이 아니라 '꾸준히' 해야 한다.
독서를 꾸준히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독서는 나를 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배신하지 않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하나님'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이 '인풋'한 독서다. 그러므로 배신하지 않는 돆서 '인풋'을 꾸준히 해야 한다.
독서는 '베버의 법칙'이 적용된다
'베버의 법칙(Weber's law)'이란 것이 있다. 다른 말로 '최소 식별 차이(JND, Just Noticeable Difference)'다.
독서의 성장 변화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소 식별 차이'는 '두 자극의 차이를 변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차이'를 뜻한다. 이는 사람들이 변화를 발견하고 인식할 수 있는 정도의 변화 시간이다.
예를 들어, 본래 3층 건물을 4층으로 증축하면 12% 높아진다. 불과 한 층 올리지만, 올라가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잠실 롯데타워빌딩은 123층이다. 이 123층짜리 건물을 지을 때는 50층 건축한 뒤 30층을 더 올린 80층, 73층을 더 올린 123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감지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최소 식별 차이에 이르지 못하기에, 잘 감지되지 않는다.
무게 30g에 30kg이 추가되면, 묵직함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30kg에서 30g이 추가되면, 그 차이를 감지하기 어렵다. 이는 30g과 30kg의 차이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라나는 자녀들을 매일 보고 있으므로, 자라는 것에 대한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은 아이들이 부쩍 컸음을 금세 느낀다. 이는 최소 식별 차이 때문이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본 사람들은 이미 최소 식별 차이를 넘어선 변화를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매일 아이들을 보는 사람들은 그 변화의 차이를 모른다.
독서도 이와 같다. 가끔 읽으면 지적으로 성장했는지 잘 알기 힘들다. 하지만 꾸준히 독서를 하면, 성장이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독서를 꾸준히 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한다.
독서, 답이 나올 때까지 '지속'하라
'꾸준히 한다'는 말은 '지속적으로 한다'는 말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독서를 '꾸준히' 하지 않는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한다. 또한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거나,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독서하는 것은 '꾸준히' 독서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꾸준히' 독서한다는 것은 상황과 내키는 마음에 이끌리지 않고 철저한 계획에 이끌리는 것을 뜻한다.
'꾸준히' 하려면 자신과 주위 상황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절제해야 한다. 즉 철저하게 절제된 삶을 살 때 가능해진다.
《실낙원》 저자인 존 밀턴(John Milton)은 세상을 떠나기까지 20년간 맹인으로 살았다. 그가 명작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꾸준히 글을 쓴 결과다.
그는 새벽 4시부터 시작해 아침 시간을 혼자만의 묵상에 할애했다. 조수가 30분 가량 성경을 읽어주면, 밀턴은 혼자 기억에 담을 수 있을 만큼 서사시를 머릿속에 써내려갔다.
7시에 조수가 돌아오면 밀턴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썼다. 그 결과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작품을 쓸 수 있었다. 이런 명작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제대로 절제한 결과다.
독서는 자신을 절제하며 '꾸준히' 해야 한다. 중국 철학자 순자(荀子)는 그의 책 《순자》의 첫 편인 '권학(勸學) 편'에서 이런 말을 한다.
"기기일약 불능십보 노마십가 즉역급지 공재불사(騏驥一躍 不能十步 駑馬十駕 則亦及之 功在不舍)". 이 말 뜻은 다음과 같다. '준마라도 한 번 뛰어 열 걸음 갈 수 없고, 노둔한 말도 열 배로 수레를 끌면 이를 수 있으니, 성공은 포기하지 않는 데 있다.'
어떤 천리마도 한 번 뛰어서 열 걸음의 거리를 갈 수 없다. 절름발이 말도 열흘의 여행이 가능한 것은, 걷는 일을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된다.
그러므로 어떤 상태든지 '꾸준히' 하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제가 독서할 때 붙든 단어 중 하나인 '지속'은 다른 뜻이 아니다. 독서를 통해 자신이 생각한 답이 나올 때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답이 나오지 않았다고 투덜대면서 포기한다. 저도 그럴 때가 무척 많았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답을 나올 때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독서를 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설교자는 독서광이어야 한다. 독서광이 되려면 '꾸준히' 독서함으로부터 시작된다."
김도인 목사/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