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리학자 아브라함 머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단계로 나누었다. (1) 생리적 욕구,(2)안전의 욕구,(3)소속감과 애정의 욕구,(4)존경의 욕구,(5)자아실현의 욕구이다. 피라밋을 연상해서 (1)부터 (5)까지를 밑에서부터 층계별로 생각해보라. (1)에서 (4)까지는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갖는 욕구이면서 행복의 조건으로 삼는다. (5)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만이 갖는 욕구이다. 자아실현의 욕구란 자아의 의미를 찾고 이웃을 향한 관심을 갖는다. 자아실현을 성취하려는 사람들 중에는 (1)부터 (4)까지의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5)를 행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1)부터 (5)까지의 욕구를 모두 채우며 살아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욕구를 채워야 행복을 느낄까? 필자는 독자에게 묻고 싶다. 지금 어떤 욕구를 채우고 싶은지? 사실 인간의 존재란 어떤 욕구를 채워도 만족함이 없는 존재이다. 아무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도 마음의 공허감와 위축감은 씻을 수 없다. 그나마 자아실현의 욕구를 채우며 사는 것이 조금이나마 행복을 찾으며 산다고나 할까.
필자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심적인 적막함과 공허가 끊임없이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인지해 왔다. 다시말해 무엇을 얻었든, 못얻었든 간에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다섯가지 욕구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어떤 욕구 속에 충족함을 주시려고 하지 않으셨겠는가. 세상에 살면서 어떤 성취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그 어떤 것이 있을까? 그것이 무엇일까? 종교일까? 종교란 인류역사 이래 인간이 추구하는 기본 욕구이긴 하다. 그러나 필자는 종교 생활 그 자체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믿는다.
필자는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진정 인간이 추구해야할 한 가지 욕구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참 인간됨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된 나의 모습을 찾으며 사는 것이다. 이것 없이는 아무리 어떤 욕구, 나아가 남을 돕고 사랑을 베푸는 욕구를 채워도 행복해질 수 없다. 나 자신이 인간으로서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시 말해 'Doing'이 아니라 'Being'이다. 나의 현주소와 나의 본 모습을 보며 나를 찾는 삶이 없으면 인간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 필자는 자신의 모습을 찾는 비결은 오직 기독교 신앙 밖에는 없다고 믿는다.
기독교 신앙은 단지 종교가 아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마땅히 믿고 따르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이고 전부인 삶이다. 장로교 창시자 존 켈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집'에서 말하길, "하나님을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라. 그러면 내가 보이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하라. '왜 내가 그런 성격을 갖게 되었으며, 왜 나는 공허감을 느끼는지, 또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이 무슨 목적으로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하셨는지? 과연 나는 죽어서 어떻게 되는지?'를 확고히 알고 산다면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신앙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게 만들고 목자인 그리스도를 통해 위안과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신앙생활이란 내 인생의 주인을 모시고 산다는 것이다. 주인이 없는 인생은 방황할 수밖에 없고 안정감이 없다.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세상의 정치, 경제문제, 민족과 사회, 교회의 모든 상황을 보고 에너지를 쏟기 전에 그 에너지로 자신을 먼저 보라. 그래야 세상에 대한 눈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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