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남의 것을 계속 훔치다 보면 결국 큰 것을 훔치는 큰 도둑이 된다는 말입니다. 죄는 마치 누룩과 같아서, 내 안에 있는 죄를 그냥 방치해두면 결국 크게 자라 낭패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가 쓴 '레 미제라블'이란 소설에 장발장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다 체포되 5년 징역형을 받습니다. 그리고 계속 탈옥을 시도하다 결국 19년이란, 조금은 억울해 보이는(?) 세월을 감옥에서 썩게 됩니다. 극한 빈곤을 이기지 못하고 빵을 훔쳤던 장발장은,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생계형 범죄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현대판 장발장 ㅇㅇㅇ'라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최근 3 년간 생계형 범죄가 4배로 급증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2016 년 한 해 418 건이었던 생계형 범죄가, 2019 년엔 1699 건으로 늘었습니다. 그만큼 살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선, 생계형 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너그러워졌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해서는 안되는 일지만, 벼랑 끝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큰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그저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생긴 일이니 이해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벼랑 끝에 몰린 절박한 죄인들을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죄에게 틈을 주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럴 수도 있는 일'인양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되기 때문입니다. 죄를 청산하고, 죄와 싸우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TV를 보면 죄수들이 교도소를 퇴소할 때 두부를 먹는 장면이 있습니다. 두부만 먹으면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 것처럼, 교도소를 나서는 사람들마다 두부를 먹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하얀 두부를 먹으면 정말 우리의 속이 하얗게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죄를 짓지 않고 착한 일을 하면서 살면 우리가 새로워지는 것일까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사도 바울은 뭔가 새로운 일을 한다고 우리가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착한 일을 한다고 우리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일까요? 예수 안에 있을 때입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분, 당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그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하시는 그 사랑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마치 은식기를 훔친 장발장이 자신의 죄를 눈감아준 미리엘 주교의 사랑을 경험한 후에야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고 계십니까? 나는 새로운 피조물입니까?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