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평론에서는 지난 주에 이어 2019년 12월 31일 개봉한 영화 <미드웨이>를 분석합니다.
이 영화는 하와이 진주만에 이어 하와이 북서쪽 미드웨이까지 미국 본토 침략 야욕을 드러낸 일본군을 격퇴하는 미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미군은 전력상 절대 열세에 있었지만, 암호 해독을 바탕으로 기적을 이뤄냈고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잡게 됩니다.
영화 <미드웨이>는 <인디펜던스 데이> 시리즈 등 재난영화 전문 롤랜드 에머리히(Roland Emmerich) 감독을 필두로 에드 스크레인(딕 베스트), 패트릭 윌슨(레이튼), 루크 에반스(맥클러스키), 아론 에크하트(지미 둘리틀), 우디 해럴슨(니미츠 제독), 아사노 타다노부(야먀구치), 닉 조나스(브루노), 키언 존슨(제임스 머레이), 루크 클레인탱크, 맨디 무어, 대런 크리스 등의 초호화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편집자 주
제국주의와 미드웨이: 태평양 연안의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일본의 격돌
지난주 개봉한 영화 <미드웨이>에 대한 관람객들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 다만 그 긍정적 반응 가운데는 이 영화가 '일본의 패전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좋은 영화라는 평이 자주 목격된다.
이런 평을 볼 때마다, 우리의 역사 인식이 세계사적 차원으로 볼 때 매우 뒤쳐져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독소(독일-소련) 전쟁이 벌어진 유럽 동부전선을 제외한 제2차 세계대전의 나머지 전선, 즉 유럽 서부 전선과 태평양 전선의 전쟁은 단순히 연합군 대 독일, 미국 대 일본의 전쟁이라고만 볼 수 없었다.
이 두 방면의 전쟁은 본질적 차원에서 커다란 문화 충돌로 규정할 수 있었는데, 태평양 전쟁의 경우 이런 성격이 더욱 두드러지는 편이었다.
물론 미국과 일본, 양측 모두 당대 세계 질서를 좌우하던 제국주의 세력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이 서구적 개인주의와 자유 사상을 바탕 삼는 문화적 배경을 가진 제국이었다면, 일본은 동아시아 특유의 전체주의적 파시즘을 바탕 삼는 문화적 배경을 가진 제국이었다는 점에서 양측은 분명하게 구별된다.
미국의 제국주의는 18세기 중반부터, 그러니까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건국 이전부터 아메리카 이미 대륙 식민지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일례로 미국 독립전쟁 발발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민들이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 서부로 계속해서 영역을 넓히려 한 데 있었다.
영국 본토 정부는 이런 시도를 금지했다. 식민지 개척민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프랑스인들이 점거하고 있던 북아메리카 대륙 중부를 침범하면, 전쟁이 발생해 재정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식민지 사람들 대부분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프랑스인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자신들의 거주지와 농경지로 삼고자 하는 열망에 넘쳐 있었다.
서부로 진출하려는 미국의 열망, 이는 1803년의 루이지애나 매입, 1846년의 멕시코-미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당시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서부 진출을, 번영과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상을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고 불렀다.
미국의 '명백한 운명'은 북아메리카 대륙 서해안에 이르러서도 멈추지 않았다. 먼로 독트린을 통해 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아메리카 간섭을 막는 사이, 제국주의 미국은 서방의 태평양을 자신들의 내해(內海)로 삼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20세기 초까지 미국은 일본의 쿠로후네 사건(페리 제독의 원정, 1853년), 조선의 신미양요(1871년), 하와이 점령(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괌, 필리핀 점령(1898년), 사모아 점령(1900년), 중국 일부의 반(semi) 식민지화 등, 태평양 전 지역을 미국의 식민지로 삼으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태평양 전쟁은 미국의 '명백한 운명'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도전이었다. '대동아 공영권'을 제국주의 이상으로 내걸었던 일제는 조선과 대만, 만주에 만족하지 못하고 1938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미국의 심기를 거스렸다.
당시 미국은 중국 내부의 경제권과 이권사업에 대해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었는데 일제가 전쟁을 통해 이를 잠식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가쓰라-태프트 협약(1905년)을 통해 일제의 팽창을 조선과 대만까지 제한하려 했던 미국의 대일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기독교 선교와 미드웨이: 미국 대 일본이 아닌, 신앙의 자유 대 전체주의
여기까지만 보면 태평양 전쟁은 미국과 일본이라는 특정 제국주의 세력들이 격돌한 전쟁이 분명하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미드웨이>의 일본 연합함대 패전 장면은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고통받았던 한국인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기에 충분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그리고 좀 더 넓게 미-일 관계사(史)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태평양 전쟁은 개인의 삶의 자유와 인권을 명목상으로나마 옹호하는 자유민주 세력과 독재자 중심의 전체주의 파시즘을 강요하는 사회주의 세력의 격돌로도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본질적 차원에서는 이런 규정이 더 적절하다.
그 증거는 전쟁의 결과로 확인된다. 태평양 전쟁은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을 통해 전쟁의 승기가 일본에서 미국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전쟁의 결과 일제로부터 해방된 태평양과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 다수는 미국과 서방 열강의 정책에 따라 자유민주주의 독립국가가 된다.
반면 유럽 동부전선 독소 전쟁의 경우, 미드웨이 해전과 비슷한 시기인 1942년 8월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전투로 인해 전쟁의 승기는 소련 편으로 기울어진다. 그리고 1945년 독소전쟁이 종결된 후 동유럽 전역은 공산 독재 전체주의 체제로 인해 고통받게 된다.
이는 기독교 선교 역사의 관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과 서방의 영향력에 힘입어 해방을 맞이한 태평양 연안 아시아 국가 대부분에는 기독교 선교의 기회가 활짝 열린 반면, 공산 전체주의에 잠식된 국가들, 동유럽, 중국, 북한 등은 기독교 선교의 길이 완벽하게 막혔을 뿐 아니라 인권 차원에서도 처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영화 <미드웨이>에서 미국의 승리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일본을 쳐부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전체주의적 파시즘이나 공산 전체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날 기회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일본 자체도 포함되는데, 천황조차 무시하며 자국민과 식민지인 모두를 단순히 병력자원 취급하던 당시 일본 군부의 광기 어린 전체주의로부터 일본인들을 해방시키는 전기가 미드웨이 해전 때 마련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 자체를 만악의 근원으로, 무조건적인 악의 축으로 단정하는 입장에서 <미드웨이>가 주는 역사적 교훈을 평가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행태라 할 수 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의 승리가 큰 의미를 가진 이유는 당시의 일본이 동아시아적 전체주의, 군국주의를 대표하는 제국주의 세력이었기 때문이지, 단순히 패배한 측이 '일본이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혜택과 온전한 선교 및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진정한 악의 근원은 언제든 독재자, 국가, 민족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희생시키는 전체주의 사상으로 돌변할 수 있는 동아시아의 과도한 집단주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집단주의, 광신적인 자민족 중심주의의 위협은 태평양 전쟁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북한이라는 공산독재 국가를 마주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동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공산 전체주의 국가 중국의 정치적-문화적 영향력이 확산되면서 신앙에 대한 집단주의 사상의 위협이 더 증대되고 있다.
2018년 말부터 중국 정부는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금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온전한 신앙을 갖지 못하도록 기독교 성경의 개작을 추진하고 있다. 중화사상과 공산주의 사상에 맞게 성경의 내용을 임의적으로 개편하고 중국 내 교회들이 이렇게 개편된 성경만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한국의 현 집권세력이 여러 방면으로 친북, 친중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시국인 만큼, 기독교인들의 역사인식 역시 단순히 일본에 적개심을 갖는 수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가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다수의 한국 기독교인들을 배교하게 만든 사상적 배경은, 일본의 신토사상 자체라기보다 동아시아의 뿌리깊은 자민족 중심주의와 집단주의라고 하는 것이 옳다.
이제 일본이 아닌 북한과 중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실상은 소수의 독재자들과 집권세력을 위해) 신앙을 포기하라는 요구가 즉시는 아닐지라도 점진적으로 강요될 위험성이 커지는 상황인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미드웨이>는 신앙과 선교의 자유를 위해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역사적 안목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주고 있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