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의 기형적 사생아, 공산주의
최근 귀순 정황이 뚜렷해 보이는 북한 선원 두 명의 강제북송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엊그제는 베트남에서 탈북민 10여 명이 강제북송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이 거의 방관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일에 직접 관련된 이들이 아니고서야 그 내막을 자세히 알 수는 없겠으나, 일의 처리 과정을 보면 현 대한민국 정권이 탈북민 문제에 있어 북한의 방침과 입장을 과도하게 추종한다는 의혹을 불식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 1948년 건국 이후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 전까지 반백년 동안 '반공'을 외교 및 안보 정책의 제일 원리로 내세웠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은 왜 대한민국이 반공을 안보의 제일 원리로 삼아야만 했는지를 온 천하에 밝혀준 사건이었다. 6.25 전쟁은 한국인들에게 공산주의라는 것이 어떤 인간관을 표방하는지 확실하게 인지하게 해준 것이다.
공산주의 내부에도 다양한 분파들이 존재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소비에트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개념 및 역사관을 기반으로 삼고, 러시아에서 몇 차례 연이은 혁명을 통해 최초로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사상이다. 중국과 북한의 공산주의는 이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각 국가별 특색에 맞게 토착화한 것이다.
공산주의 사상이 가진 부정적 측면을 지목할 때 늘 최우선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개인 인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이는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 공산주의 정권들이 가진 최대의 내적 모순 가운데 하나이다.
마르크스 본인은 공산당 지도부가 최고 특권층으로 자리잡는 왜곡된 형태의 계급사회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 적이 없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다분히 이상적이었다. 그는 중앙정부에 의한 노동자 통제에 오히려 반발하는 입장이었다.
대신 소규모의 생산 시설을 확보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각기 협력하며 평등하게 살아가는 철저한 분권형 사회를 꿈꿨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사실 이런 평등한 경제공동체에 대한 이상적 전망은 일정 부분 기독교적 모티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마르크스 본인은 기독교의 평등과 분배 사상이 교리에의 복종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에, 자주적이지 못하고 억압적이라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분권형 정치경제 공동체의 이상향 가운데는 사도들이 이끌었던 초대교회의 삶의 모습, 그리고 중세 수도원이나 소규모 신앙공동체의 삶의 모습이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농민과 노동자 개개인의 인권과 소유를 중시하던 마르크스의 희망이, 어떻게 오늘날의 비인간적이다 못해 때로 반인륜적이기까지 한 공산주의 체제라는 기형적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것일까?
지금까지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제시되어 왔고, 여기에 관련된 연구자들의 논문과 저서 수만 해도 족히 수십만 편은 넘어설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마르크스적 인간 이해와 역사 이해 속에 배태되어 있는 전체주의적 성격에서 그 주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전체주의적 사고의 원천은, 마르크스적 인간관과 역사관의 구조적 기반이 된 헤겔 철학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헤겔과 공산주의: 헤겔 정신현상학의 타락한 현실화
헤겔의 역사관은 '인류 계몽'과 '변증법적 지양'이라는 두 개념을 핵심으로 삼는다. 그는 독일의 저명한 근현대 철학자 다수가 그랬던 것처럼, 기독교 신학을 전공으로 삼았다가 철학으로 전과한 인물이다.
이런 학문적 경력 때문인지, 자신의 사상을 정립할 때 기독교와 세속 철학을 적절히 조합하는 데 상당한 수완을 발휘했다.
그의 인간관 및 역사관은 기독교의 창조론과 성육신론, 그리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범신론과 로고스론을 정교하게 조합해 창안된 것이다.
헤겔은 기독교가 가르쳐 왔던 하나님의 신성의 본질을 '전지하고 창조적인 정신'으로 규정하고, 인간의 정신과 세계 만물이 모두 신적 정신인 절대정신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이라는 이설(異說)을 펼쳤다.
인간의 정신과 물질 세계 모두가 신의 정신으로부터 나왔다는 전제 하에, 헤겔은 결국 정신과 세계가 본질적으로는 정신이라 믿었으며, 이 두 가지의 분화된 정신이 대립되어 만나는 현장인 인간 의식의 변증법적 지양 과정을 하나의 저서 안에 포괄해 설명했다. 이것이 헤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정신현상학>이다.
공산주의의 반인륜적 성격과 관련해 헤겔 사상에서 주시해야 할 점은, 그가 인간 개개인의 정신을 인류 전체의 정신적 통일과 고양을 향한 하나의 계기 정도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개개인의 인격은 인류 정신의 계몽과 고양, 그리고 인류 역사의 진보를 위한 하나의 수단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
헤겔 본인은 이런 사고가 전체주의로 발전될 위험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인류의 정신적 진보란 개개인의 인격이 겪을 희생과 고통을 월등히 뛰어넘을 만한 보상을 수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헤겔은 이 보상이 희생되고 고통받은 인격에게도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개개인의 인격은 죽음을 통해 사라지는 것 같지만, 실은 윗 단계로 고양된 정신 안에 통일되고 종합되어 살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을 신봉했기에 헤겔이 말하는 정신이나 영혼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개개인의 삶이 인류 전체의 진보, 역사적 진보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받아들여 계승했다.
물론 원래의 마르크스주의는 개개인의 인권과 평등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이 현실에 적용될 때 어떤 측면이 현실화될지 알지 못했던 듯하다.
러시아를 시작으로 동유럽, 중국, 북한에까지 이른 공산주의 사상 전체는 공산당의 권력 확보를 위해 인간 개개인의 생명 정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헤겔이 펼쳐낸 변증법적 지양의 역사관이 인류 역사상 가장 혹독하고 반인륜적인 전체주의 체제를 탄생시키고 만 것이다.
이는 역사와 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간파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기독교에서 줄곧 가르쳐 온 인간 실존의 유한성을 재삼 입증하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지혜란 그것이 얼마나 이상적이고 멋드러진 미래를 약속하는가에 상관없이, 현실에서는 항상 왜곡되고 타락한 양상으로 실현된다. 이는 윤리적으로 유한한 인간 실존에 관여된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아쉽게도 현재 한국의 정권자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이런 통찰이 결여된 듯 하다. 공산주의 때문에 무려 10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전쟁을 몸소 겪은 나라임에도 그러하다.
게다가 1970년대 캄보디아 공산 정권 크메르 루즈가 벌인 것과 유사한 고문과 살인을 아직도 자행하고 있는 전쟁과 인권 유린의 주범 북한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러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의 전체주의적 반인륜성에 대해 기독교적인 반성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철학적이고 역사적인 반성과 통찰조차 없다는 점은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탈북민을 대하는 한국 정치 지도부의 태도를 보면서 느끼는 바는 안타까움이다. 그 자신 인권변호사 출신인 한국의 현 지도자와 그 주변인들이 이토록 철학 없는 정치를 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