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진다는 생각은 마치 자기의 사전에 없는 것처럼 행동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기는 것에 익숙해 진 것처럼 지는 것에도 익숙해 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유익을 얻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졌습니다. 그런데 패배에도 유익이 있었습니다. 왜? 졌는가? 에 대한 본질을 점검하면 유익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전쟁에 진 이유를 당장에 붙들기 쉬운 상징으로 언약궤를 앞세우고 전쟁터에 나갑니다. 이렇듯이 우리도 문제가 생길 때에 상징을 붙드는 것은 쉽습니다.
본질의 변화 없이도 당장에 승리가 가능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인격의 변화가 없이도 상징이 승리를 준다는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징은 관리가 편리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수호신처럼 여겼던 언약궤마저 빼앗기고 패배하게 됩니다. 이렇듯 빠른 해답은 가짜이기 쉽고. 본질의 변화가 없는 상징도 가짜이기 쉽습니다. 고난도 하나님이 주시듯이 실패도 하나님이 허용하십니다. 그래서 고난이 오면 자꾸 벗어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고난 중에 머무를 때가 있어야 하고. 때로는 패배 중에 머물러야 하고. 때로는 초라함에 머무를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서 잘 안 되면, 벗어나려는 발버둥을 치기보다 하나님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치를 잘 견디고 못하고 초라함도 견디지 못하고 실패도 견디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내 자아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낮은 상태에 머무르고. 초라함에 머무르고. 불쌍한 상태에 머무를 필요도 있습니다. 복도 매도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시는 것을 받겠다고 머무르는 것도 신앙입니다. 또한 머문다는 것은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맞추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머무름을 통해서 죽지 못한 내 자아가 다 산산조각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머물러야 채워지고, 머물러야 부족함이 충족되고. 머물러야 멈춘 성장이 다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머물러야 예수님의 인격이 나의 성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징을 버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인위적인 방법도 버려야 합니다. 남들 보라고, 세를 과시하려 말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미지도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상태라도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주의 임재가 있는 그 순간 다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돌보시면 되고. 주가 일하시면 되고 주가 일으켜 세우시면 되는 것입니다.
[김병규 칼럼]어떤 상황과 조건에도 하나님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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