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경제 대강국일 뿐 아니라 스포츠 최강국인 미국의 주요 스포츠 종목의 스타들은 대부분 흑인들이다. 특별히 육상과 농구와 야구와 테니스, 미식축구 등 인기 종목의 주요 스타들은 흑인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결국 미국은 오바마라는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19세기 중반만 해도 미국의 흑인들에게는 진정한 자유가 없었다. 미국 남부 지방에서는 수많은 흑인들이 마치 물건처럼 매매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자유라고는 없는 노예였다.
이 무렵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사는 해리어트 비처 스토우 부인 집에 한 흑인 소녀가 다급하게 찾아 들어왔다. 그 모습은 너무나 애처로워 보였다. 스토우 부인은 조용히 그 소녀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서 왔니?"
소녀가 대답했다.
"네 저는 남부 켄터키에서 왔어요."
소녀의 목소리는 잔뜩 두려움과 겁에 질려 있었다.
"그래,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부모님은 저와 어릴 적 헤어졌어요. 기억이 잘 나지를 않아요."
스토우 부인은 이 흑인소녀가 가엽게 느껴졌다.
"걱정 말거라. 여기는 그리 위험하지 않단다. 당분간 우리 집 일을 도우면서 우리와 함께 지내도록 하자."
스토우 부인의 다정한 말에 흑인 소녀의 눈에서는 한줄기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신앙심이 깊던 미 북부의 여러 주 사람들은 노예 제도를 좋게 여기지를 않았다. 그러나 노동력이 필요하던 남부 사람들은 여전히 흑인들을 노예로 고용하고 있었다.
미국은 본래 17세기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던 영국의 청교도들이 세운 국가였다. 그러나 그 후 미국 땅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어왔다. 신앙심과 관련 없이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흘러들어온 것이다. 그들 중에 흑인들도 합류하게 되었다. 흑인들은 자유롭게 신대륙 미국을 찾아 온 것이 아니었다. 유럽의 스페인 사람들이 남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만들며 아프리카 흑인들을 강제로 데려와 노예로 부리기 시작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마을을 습격하여 마치 짐승을 잡듯 남자와 여자, 어린 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붙잡아왔다. 스페인 사람들은 잡아온 아프리카 흑인들을 북아메리카 신대륙(미국) 땅에도 돈을 받고 인계하기 시작했다. 주로 이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의 노예가 된 것이다. 흑인 노예들은 1776년 신대륙 미국이 완전 독립한 후에도 400여만 명이나 남부지역 농장에서 살고 있었다.
"노예 제도는 창조주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제도란다."
헤리어트가 어릴 적 아버지 라이만 비처 목사는 늘 그렇게 말하곤 했다. 해리어트의 아버지는 엄격한 칼뱅파 목사였다. 이 말라빠진 흑인 소녀를 보는 순간 해리어트의 가슴속에는 아버지의 그 목소리가 하나하나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부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제 여기는 안심해도 된단다. 그래 어떻게 그곳을 탈출하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 주는 부인을 보고 소녀는 그제 서야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지나간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 이야기는 이랬다. 하루는 이 흑인 소녀가 다른 노예들과 함께 밭에서 목화송이를 따고 있었다. 그때 무심코 옆을 보니 나이든 한 흑인 여자 노예가 아픈 기색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 어디 아프세요?"
이렇게 묻자 그 여자 노예가 대답했다.
"응. 몸이 좀 아프단다."
"그럼 방에 가서 좀 쉬시지 그래요!"
"노예인 우리가 어떻게 쉴 수 있겠니."
이 말을 들은 소녀는 너무나 딱한 마음에 가끔 자기가 딴 목화송이를 아주머니의 바구니에 몰래 넣어 주었다. 그때였다. 존이라는 나이 많은 한 흑인 아저씨가 그들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노예들 사이에서 크게 존경 받는 노인이었다.
"아프면 쉬어야지 내가 네 몫까지 해주마. 걱정 말고 쉬 거라."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모습이 그만 감시를 돌던 주인에게 발각되고 만다.
"존! 자네 지금 뮐 하고 있나?"
무서운 고함 소리에 모든 노예들이 벌벌 떨기를 시작했다.
"예 주인님. 이 여자가 병이 난 듯해서 제가 좀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존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밥 잘 먹고 왜 아프다는 거야. 이 거짓말 장이야!."
주인은 손에 든 채찍을 내리치며 명령했다.
"존! 이 채찍으로 저 게으름뱅이의 버릇을 좀 고쳐 주거라!"
"주인님 죄송합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도저히 그 일만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 못하겠단 말이지. 좋다! 그럼 내가 네게 직접 본때를 보여주마. 네게서 하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두고 보자."
철썩! 채찍 소리가 났다. 존 아저씨 얼굴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철썩! 철석! 소리가 날 때마다 존의 얼굴과 몸에는 살점이 떨어지고 더 심한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존 아저씨의 몸은 참혹한 피투성이가 되고 있었다.
"존! 어떠냐? 이래도 내 말을 안 들을 테냐?"
"네, 주인님 이 목숨이 붙어있는 한 일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병든 저 여자를 때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말대꾸야! 이 노예 자식!"
존은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존 아저씨 정신이 드세요?"
존이 대답했다.
"응, 나는 괜찮단다."
걱정스런 모습으로 존 아저씨 옆에 둘러 앉아있던 노예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저런 잔인한 주인은 죽여 버려야해! 내가 그 일을 하겠어." 그 때 존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안 된다! 나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야.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을 죽일 수는 없어."
그러면서 존 아저씨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여기 뒷일은 내게 맡기고 너희들은 모두 북부로 도망을 가거라. 북부는 사람을 노예 취급은 하지 않는 단다!"
여기까지 말한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는 계속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해리어트는 조용히 소녀와 함께 존 아저씨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이 짧은 이야기는 바로 훗날 유명한 "엉클 톰스 캐빈"(주: 우리말로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원본이 되었다.
1850년 여름 남편 스토우 교수는 브런즈위크 시에 있는 보오든 학교 선생으로 가게 되어 그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스토우 부인은 신문에서 미국의 국회가 '도망간 노예를 다루는 법'을 통과시켰다는 큼지막한 기사를 읽었다. 이 법은 도망친 노예들을 붙잡아 주인에게 돌려보내 지독한 벌을 받게 한다는 잔혹한 법이었다. 더욱이 노예를 숨겨준 자도 함께 처벌 받는 아주 고약한 법이었다. 그러니까 북부 사람들도 당연히 이 법을 지켜야만 했다. 남부의 지주들은 너나 할것 없이 북부로 밀려들어왔다. 도망친 노예를 붙잡기 위해서였다. 그때까지 북부로 피신해 와 은신하며 살던 흑인들은 이 법률로 인해 모두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고 하루에도 수많은 노예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짐승처럼 끌려갔다.
막내아들의 죽음으로 큰 슬픔에 잠겨 있던 해리어트는 이들 끌려가는 흑인 노예들의 어머니들의 부르짖음을 목격했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저 사람들도 같은 어머니가 아닌가!'
스토우 부인은 너무나 마음이 아파왔다. 그러던 어느 날 신학교 선생이던 남편 스토우가 돌아오자마자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스토우 부인에게 말하였다.
"여보 큰일 났소. 저 흑인소녀의 옛 주인도 저 아이를 찾으러 이 거리에 와있다는 소문이야?"
"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 애를 숨길 방법이 없을까요?
"저 아이를 캐나다로 보내면 어떨까?"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스토우 씨가 결심한 듯 잘라 말했다.
"한 사람을 죽이느냐 살리느냐의 중대한 일이야. 어서 그 아이에게 도망갈 준비를 하도록 하시오."
"서둘러 캐나다로 떠나야겠다. 캐나다로 떠나면 이 잔인한 법과 주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스토우 부인은 흑인 소녀가 도망하는 것을 도와주고 캐나다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기도하였다.
"내가 따라 가겠소."
그러나 스토우 부인은 남편 혼자 보내는 것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같은 마을에 사는 동생 헨리를 불러왔다.
"안녕히 계세요. 사모님,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을께요."
소녀는 울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정들었던 흑인 소녀를 떠나보내면서 스토우부인은 이런 부당한 일을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다짐한다. 스토우부인은 흑인 소녀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을 글로 써 내려 가기 시작했다. 결국 그 글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란 책으로 출판되었다. 주인공 흑인 톰 아저씨는 선량한 기독교인이었다. 톰도 다른 흑인들처럼 여기저기 팔려 다니는 신세였다.
그러던 어느 날 톰은 목화 따는 일을 하면서 힘에 겨워하는 연약한 흑인 여자 노예에게 목화를 나누어주었다. 이것이 그만 주인에게 발각이 되고 말았다. 톰은 정말 죽도록 얻어맞았다.
'하나님은 나를 영원히 버리신 것은 아닐까?'
톰은 너무 고통스러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 어느 날 밤 톰 앞에 가시관을 쓰고 계신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오! 예수님!"
톰은 깨달았다. 예수님은 한 번도 톰을 버리신 적이 없었다. 톰은 이제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어떤 고통도 이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톰은 그 후 불쌍한 여자 노예 에게린이 탈출하는 것을 도와준다. 톰은 그 일로 주인 레글리에게 채찍에 맞게 되었다. 살이 터지고 입술은 말라붙었다. 주인의 명령으로 톰은 두 흑인 노예에게 죽도록 맞았다. 그들은 샘과 센보였다.
"톰. 우리가 정말 못할 짓을 했어 용서해 주게."
"아니야. 나는 진심으로 자네들을 용서하네."
그러면서 톰은 자기를 때린 흑인 동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샘과 센보는 감격하였다.
"톰. 왜 진작 이런 예수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는가!"
톰의 순교적 삶과 사랑과 자유와 신앙은 노예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내용이었다. 바로 흑인 소녀에게 들었던 그 내용이었다.
이 소설은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어 노예해방을 맞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바로 아브라함 링컨이 이 소설을 읽었던 것이다. 이 한편의 소설은 링컨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링컨은 이 소설을 읽고 더 이상 침묵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 미국의 모든 노예들에게 해방을 선언합니다."
한 권의 책이 세계의 역사를 뒤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당시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모든 노동력을 전적으로 흑인 노예들에게 의지하던 남부의 완강한 반대는 곧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1861년부터 1865년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제 2혁명이라 할 수 있는 남·북간 노예해방 전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흑인의 인권을 옹호하는 자들에게는 KKK단이라는 아주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테러가 뒤따랐던 시대였다. 이 책이 출간되자 백인우월 주의자들은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스토우 부인! 당신을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다."
일부는 흑인을 살해한 뒤 귀를 잘라 소포로 우송하면서까지 협박을 일삼았다. 그러나 스토우 부인은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다. 남북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어느 날 링컨 대통령이 스토우 부인을 찾아왔다. 봄바람에 날아갈 것 같은 가냘픈 몸매를 한 여인이 링컨 대통령 앞에 나타났다. 링컨 대통령은 깜짝 놀랐다.
"당신이 이 전쟁에 불을 당긴 스토우 부인 맞습니까? 스토우 부인! 이렇게 나약해 보이는 몸으로 어찌 그리 강하고 담대한 글을 쓸 수가 있었습니까?"
스토우 부인이 대답했다.
"링컨 대통령님, 이 소설은 제가 쓴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의 작품이란 말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단지 하나님이 쓰신 도구였습니다."
그 때 링컨이 대답했다.
"스토우 부인, 저도 한 번도 제가 노예 해방을 시켰다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었지요."
스토우 부인은 링컨 대통령에게 한권의 책을 선물했다. 그 책 표지 안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본명이 해리어트 비처(1811-1896)인 스토우 부인은 1811년 6월 14일 미국 코네티켓 주 리치필드에서 목사인 라이만 비처 박사의 딸로 태어났다. 1833년 친구와 같이 켄터키 주로 여행을 가서 노예의 비참한 생활을 처음으로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는데 이것이 뒷날 작가 생활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랜 신학교의 교수 엘리스 스토우와 결혼하여 1839년에는 1남 2녀의 어머니가 되었다. 이 해에 바로 켄터키에서 도망쳐 나온 흑인 소녀를 맞아들였는데 이것이 명작 "엉클 톰스 캐빈"을 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1852년 출판된 이 책은 그 해에만 30만부나 팔렸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까지 이 책에 큰 흥미를 가졌고 스토우 부인은 직접 이 책을 여왕께 선물하였다. 이 책을 읽고 감동한 한 유명 작가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스토우 부인에게 보냈다.
"세계를 감동 시킨 당신의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도저히 쓸 수 없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이 책을 앞길을 예비하는 사자로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흑인 노예 해방의 계기가 된 것을 칭송한 것이었다. 책의 명성으로 인해 스토우 부인은 큰 부와 명예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쓸 당시만 해도 스토우 부인은 소설의 원고를 포장지 안쪽에 써야할 만큼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스토우 부인을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시각 장애를 가진 어떤 부인은 '나는 앞을 보지 못하나 아이들에게 소식을 들었다'며 기꺼이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남북전쟁이 끝나자 흑인들은 완전히 자유스런 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온 지 채 10년이 되지 않아 노예제도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 후 스토우 부인은 미국 플로리다 주의 맨더리에서 여생을 보내며 예수의 정신으로 흑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에 온 힘을 다하였다. 그리고 1896년 7월 1일, 85세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갔다. 진정 스토우 부인은 오늘날 미 합중국에 흑인 대통령을 있게 한 최고 공헌자였다!
그렇다! 예수는 특권과 권력자들의 대명사 예루살렘 출신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의 척박한 땅 갈릴리 출신이었다. 우리 사회도 언제 갑질과 금수저 같은 천박한 언어들이 사라지고 진정한 예수의 샬롬이 찾아올 것인지~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평택대 <과학과 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