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오늘의 단어’로 ‘꼰대(KKONDAE)’라는 말을 선정했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김)”이라고 설명을 붙였다.
아프리카 속담에 ‘죽어가는 노인은 불타고 있는 도서관과 같다’는 말이 있다. 노인 한 사람은 한 시대요, 그 시대의 산 역사다. 개개인의 지적 역량과 경험치, 인품과는 별개로 노인은 그 자체가 보물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사회학자 엄기호는 우리 사회에 ‘자신의 경험을 후대에 전승하고 조언을 주고, 참조할 만한’ 어른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 없이 잔소리와 설교를 일삼는 ‘꼰대’에게 사회적 존경이 따라올 수는 없다.
“쓴맛이 사는 맛”은 시대의 어른, 거리의 철학자로 존경받는 채현국 선생의 생각을 정운현 작가가 기록한 책이다. 채현국 선생은 1935년에 사업가 채기엽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방송국(KBS의 전신)의 공채 1기 연출직에 입사했다. 그러나 그 곳에서의 일이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의 탄광 운영을 돕게 된다. 사업을 통해 한때 개인 소득세 납부액 전국 2위를 기록할 정도로 거부가 되었지만, 돈 버는 것이 신앙이 되어 버리기 전에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1988년부터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해 효암 고등학교와 개운 중학교를 돌보며 교육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효암 고등학교 정문 비석에는 ‘쓴맛이 사는 맛’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채현국 선생은 사람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인생에 쓴맛을 볼 수밖에 없기에 쓴맛도 인생의 일부이며 쓴맛을 본 사람이야 말로 단맛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돈 버는 것, 그리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단맛이라면 그는 누구보다도 단맛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돈 쓰는 재미’보다 몇 천 배 강한 것이 ‘돈 버는 재미’라고 말한다. 돈 버는 일에 한번 빠지면 자꾸 빨려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회정의나 삶의 가치를 잃고 그저 돈의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그가 잘 나가던 사업을 정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시시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부지런하지 않으면서 한가로운 것이 행복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몸이든 의식이든 행동이든 모두가 한가해야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시시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가로우면 행복해진다. 시시하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이다 보니 파격적이지 못할 뿐이다. 시시하고 식상한 것은 보통 우리 곁에 있다. 왜냐하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자유’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갈구하지만 사회라는 구성체는 도덕과 윤리 규범을 비롯해 온갖 법규로 사람들의 자유를 구속한다. 그러나 정작 자유로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까닭은 자기 스스로 그런 것들에 구속되고 얽매이는 데 있다. 채현국 선생은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모험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의 틀 속에 갇혀서는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세상을 바꾼 사람, 자유로운 삶을 산 사람들은 모두 모험가들이었다. 다만 목표는 함께 잘사는 것이어야 한다. 기득권 상실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서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다. 기득권과 안락함은 자유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예나 지금이나 없는 법이다.
선생의 이런 생각은 가져본 자의 ‘훈장질’이 아니다. 그는 민주화 운동의 선상에서 수배 시국 사범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구속자를 빼내고 활동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그는 지나온 세월을 두고 “나는 비틀비틀하며 살아온 인생이다. 또 비겁하게도 살아왔다. 내놓을 게 없는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선생은 누린 것이 많았기에 그런 사람은 시대와 사회에 대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 사명감이 그를 교육자요, 거리의 철학자로 만들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꼰대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다. “쓴맛이 사는 맛”에서 발견한 채현국 선생은 우리 시대의 어른이자 ‘멋있는 사람’이다. 멋있는 사람에 대한 기준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동서고금에 공통된 가치는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