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먹어..." 슬픈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에게 큰 딸 은서가 떡국 한 점을 먹여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애기 같애..." 엄마는 그런 은서를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들도 그런 엄마를 보며 함께 울기 시작합니다.
페이스북에서 지인들이 올린 영상들을 보다가 오래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던 풀빵 엄마 관련 영상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10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렇게 세상에 회자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만큼 이 풀빵 엄마의 사연이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불쌍한 여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릴 때 앓았던 소아마비 때문에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한 남자를 만나 소박한 행복을 꿈꾸어 보았지만, 결국 두 아이와 함께 버림을 당했습니다. 아이들만 생각하며 살겠다고 다짐해보았지만, 2007년 위암 말기라는 절망적인 현실을 만나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수님, 저 같은 위암 환자들은 생존율이 얼마나 돼요?" 그녀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얼굴로 담당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좋지 않은 경우도 생각하셔야 돼요. 1년 반이 될 수도 있고 2년이 될 수도 있어요." "이렇게 항암치료를 받는데도요?..." 그녀는 더 이상 묻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고통을 참으며 치료를 받고 있는데 고작 2년이라니... 진료실을 빠져 나오는 그녀의 어깨는 들썩이고 있었습니다.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살아서 내년에도, 또 그 후년에도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가는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내 곁을 떠날 때까지 만이라도 살고 싶어요. 내가 이렇게 사라지면 누가 애들의 그늘이 되어 주나요..." 그녀는 간절히 삶을 소망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2년을 더 살지 못하고 아이들 곁을 떠났습니다.
오래 전에 이 영상을 보며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풀빵 엄마의 모습이 흡사 제 아내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진 시기도 2007년 봄이었고, 사경을 헤매던 아내가 가장 많이 염려하고 집착했던 것도 아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5살이 갓 지난 막내를 어루만지시며 하염없이 우시던 어머님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 병신이라도 좋으니 살려주십시오..."
풀빵 엄마 최정미 씨는 지금 세상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은서와 홍현이를 남겨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죽기 살기로 사랑했던 엄마의 사랑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이모와 이모부의 보살핌 속에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풀빵 엄마가 떠난 곳에 우리가 남겨져 있습니다. 풀빵 엄마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지만 그럴 수 없던 시간들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기 살기로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마지막이 이르기 전에 죽기 살기로 사랑하며 살아가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