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9-10>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명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도 바울도 자신에 살고 죽는 문제 보다 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라는 목표와 소망의 삶을 날마다 질문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함은 "지당한 말씀"이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어떤 삶일까?" 또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위해 우리는 먼저 "기쁘시게 한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해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쁘시게 한다."는 말의 근원을 그리스어로 해석하면 "유아레스토스"(eujavresto) 즉 "기꺼이", "마음에 드는" 혹은 "기쁘게 하는" 라는 어원에서 시작된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 "유아레스토스" (eujavresto)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지만 특별히 NKJV (New King James Version)에서는 "아주 기쁘시게 하다"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고백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표현은 "그냥 기쁘시게" 하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기쁘시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해석에 따라서 모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열심과 정성을 다하는 노력을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에서의 "기쁘시게 한다."는 명령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리는 선택이 중요 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의 노예가 되었었고 그 결과 새 주인인 사탄과 동일한 운명을 선고 받았던 인생 이였습니다. 그런 결과로 우리는 이와 같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의 삶 보다는 우리의 육신의 만족과 기쁨을 위해서 결정을 하면서 살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새셨고 믿는 자를 다시 죄에서 속량[贖良]하사 죄인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2:9 에 말씀에서는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 의미는 우리의 선택이 이제는 예수님의 기초위에 세워 나가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가지는 큰 만족은 하나님이 나를 보시며 기뻐하고 계심을 알게 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와같은 기쁨을 우리가 경험하게 되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다른 무엇도 그 기쁨과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날마다 찬송과 기도의 고백으로 주님께 기쁨을 드리겠노라고 다짐하지만 정작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인가를 답하지 못할 때 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자의 삶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안에 우리 자신을 세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큰 상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상은 그냥 상이 아니라 "온전한 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면 그분을 항상 기쁘시게 할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마음에 세기며 오늘도 하나님께 기쁨 드리는 삶을 위해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