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에는 영화 '사랑의 선물'의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북한 황해도에 있었던 한 가족의 슬픈 사랑을 다룬 실제 이야기입니다."
올해 광복절에 개봉한 영화 '사랑의 선물' 줄거리 소개에 나오는 글이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우리나라는 '자유'를 얻었지만, 같은 얼굴을 갖고, 같은 언어를 씀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유' 없이 살아가는 북한의 상황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고 먹먹했다. 영화는 실제로 북한에서 살았던 탈북민에 의해 제작됐다. 바로 '탈북민 1호 감독'으로 불리는 김규민 감독.
김 감독은 그간 꾸준히 북한 인권 영화를 제작해 왔다. 이번 영화에서는 많은 사람이 기억하지만 기록하지 않는 '고난의 행군' 당시의 이야기를 선택했다. 그는 '고난의 행군' 당시 북한에 살았던 한 사람의 증인이기도 하다. 감히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숨 막히는 삶. 영화에 그저 "보아온 것을 담았을 뿐"이라는 그는 "북한에서는 큰일이 아니었다"며 "일상이었다"고 했다.
"난 당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갔고 당이 원하면 이 한 몸 기꺼이 바쳤소."-'사랑의 선물' 예고편 中
영화 '사랑의 선물'은 한 상이 군인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북한을 위해 몸을 바치다 하체가 마비된 상이 군인 김강호의 가족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를 차지한다. 그는 여전히 북한을 위한 삶을 살던 자였지만,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고난의 행군'이라는 파멸의 길을 피할 수 없었다.
'고난의 행군'은 동구권 공산당 일당의 독재 및 소련 붕괴 후 경제 파탄과 대흉작을 맞이한 북한에서 배급제가 붕괴되며 시작됐다. 북한은 1996년 1월 1일을 시작으로 기관지, 영화 등을 통해 '고난의 행군'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갔다.
이와 같은 북한의 '고난의 행군' 홍보 상황은 영화 속에서도 등장한다. 그때 등장하는 단어가 '자력갱생(自力更生)'과 '간고분투(艱苦奮鬪)'이다. 남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어려움을 타파한다는 의미의 '자력갱생'과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있는 힘을 다해 싸운다는 '간고분투'. 여전히 북한이 즐겨 쓰는 단어다. 북한은 올해에도 수차례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선전했다. 심지어 '고난의 행군' 때 어려웠던 상황을 소개하면서까지 그 단어를 썼다. 자신들의 '죄'와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낙원'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는 사회주의 사상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낙원은 북한 주민이 제외된, 김 씨 일가와 그의 추종자들만의 '권력'과 '욕망'을 위한 '낙원'이겠지만. 영화에서도 이러한 역설적이고 반어법적인 표현이 지속해서 등장한다.
"이 영화를 인민의 낙원에서 유명을 달리한 수많은 원혼들에게 바칩니다." -영화 '사랑의 선물' 예고편 中
더욱이 영화에서 가족을 위해 몸까지 팔게 된 아내 이소정을 나무라는 김강호의 말은 번지르르하게 허공에 떨어지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랑하는 남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몸을 팔기 시작한 아내. 그런 아내의 사정을 알 길이 없는 남편. 이소정은 김강호에게 '당신이 쓰러질 때마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그럴 때마다 맞는 약이랑 주사는 어디서 나냐'고 절규하듯이 묻지만, 순진무구하게 "그거야 다 병원에서..."라고 말하는 김강호의 말은 이소정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죽을 만큼 힘들어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요. 절약이요? 뭐가 있어야 절약을 하죠." -영화 '사랑의 선물' 예고편 中
이소정이 절규하는 모습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절규했을 수많은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가장 많은 이주, 생명권의 자유가 침해당했던 그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이 탈북했다.
"강호 동지, 제가 오늘 경외하는 장군님을 만나 뵈었어요." -영화 '사랑의 선물' 예고편 中
이와 동시에 북한은 '김씨 일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하는 데 온 힘을 다한다. 영화 속 인물들의 삶도 '김씨 일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김씨 일가'가 이들에게 준 것은 지독한 가난과 절망뿐이지만, 김강호는 '비사회주의분자'로 낙인 찍힐 것을 두려워하며 '김씨 일가'를 "대원수님" "경외하는 장군님"이라 부르며 우상화한다. 그 뒤에는 자신의 몸을 팔면서까지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아내 이소정이 있다.
영화 연출에서 돋보이는 점은 영화의 장면(scene)이 굉장히 자주 바뀐다는 점이다. 바뀌는 장면은 주인공인 김강호의 집안과 반대된 상황으로 두 장면이 대비를 이룬다. 상이 군인이 북한 주민 대부분의 삶이라면, 반대되는 장면은 폭력과 뇌물, 비리가 만연한 '특권층'의 부조리를 담았다. 겉으로는 '자력갱생 고군분투'를 외치면서도 '충성의 선물과 편지'라는 이름으로 뇌물을 준 곳은 친필 화답서를 받고 고속 승진하는 등의 부조리는 김강호의 집안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영화 중에는 남조선이 '갖다바친' 쌀을 배급받은 적이 없다고 외치는 장면도 나온다.
김규민 감독에 따르면 배우 캐스팅부터 국내 개봉까지 쉬운 일이 없었다고 한다. 반면 영화 '사랑의 선물'은 해외에서 큰 수확을 얻었다. 영국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영예의 영화제에서 해방(Liberatio)·사회정의(Social Justice)·항의(protest) 우수상을 수상했고, 2019 퀸즈 세계영화제 공식상영작이자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세계 20여 유수 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되거나 노미네이트 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 멀고 먼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의 북한에 대한 관심도가 그 정도라는 사실에 푹 꺼지는 한숨만 나온다. 영화를 본 관객 중에는 "북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고 소감을 말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우리와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나라는 북한이 아닐까 싶다.
소수자의 배만 불리는 북한 독재 체제가 속히 붕괴 되어 북한 주민들이 거짓된 '김씨 일가'로부터 자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영혼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