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 송재호 목사(할렐루야한인교회)
송재호 목사(할렐루야한인교회)

오늘도 책 한권을 묵상해 보려 책을 폈다. 책의 제목은 "존 비비어의 은혜"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그리도인의 삶을 조명하며 한 단어를 소개하며 도전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 단어는 바로 "비범함"이라는 단어이다. 책 서두에는 "하나님은 당신이 비범하게 살기를 바라실 뿐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도록 당신을 갖추어 주셨다." 고 소개하고 있다. 그럼 비범하다는 사전적 의미는 무엇일까? 비범함 이란 우리가 경험하는 삶에 모든 영역들에서 평범하고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삶이 아닌 열망과 희망을 가지고 평범해 보이는 삶에서 벗어남을 이야기 하는 단어이다. 그렇다. 비범함이란 "보통의 수준보다 뛰어나게 됨", "평범함에서 벗어난다." 로 이해하고 정의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리고 이 모든 정의를 종합해서 우리는 "비범함의 반대말이 평범함이다." 라고 정의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 단어 즉 "비범함"에서 많은 질문을 창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과연 그리스도인의 비범함의 기준과 시작은 어디에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쉽게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이여 비범해라!"라고 누군가가 외친다면 우리는 이에 대한 의미화 해석에 많은 혼돈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 모두는 자신들의 존재나 삶의 의미가 예전과 비교해 그 이상이기를 원한다. 무엇보다 사람들 안에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평범함을 초월하려는 타고난 갈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범함"이라는 단어 속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비범함"은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비범함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될까?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고 하나님의 명령인 거룩함을 위해 살아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요즘 우리가 듣고 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보면 이와 같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기독교가 생기가 없어 보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형상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과연 그와 같은 모습이 비범한 모습일까? 성경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무업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는 결코 "비범함"을 이룰 수 없게 된다. 그렇다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은 다른 것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지음 받은 자기 본연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왜곡된 기독교인의 이미지는 결코 우리가 "비범하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의 비범함" 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 해답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지음 받은 가기 본연의 존재를 발견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너무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그와 같은 평범함은 하나님의 형상과 너무 멀게 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수님은 아담으로부터 잃어버려진 우리의 형상을 되찾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비범한 삶의 잠재력을 가진 주님의 백성들이다. 끝으로 그리스도인은 비범함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득 채워야 하는 "소명자" 이다. 오늘도 우리의 잠재력을 깨우며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갈망을 깨워 달라고 기도하며 승리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