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인가 보건적 조치인가
이번에 김지연 약사와 나눌 이야기의 주제는 남성간 성관계를 가지는 자들의 수혈에 대한 것이다.
김지연 약사는 "2002년 말에 뇌수술 과정에서 받은 수혈 때문에 에이즈에 감염된 여학생 소식이 보도되면서 세상이 떠들썩했었다"며 "당시 보건복지부 혈액정책과는 수혈받은 피의 주인은 HIV에 감염된 남성 동성애자였으며 에이즈 감염 초기에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존재하더라도 음성으로 판단되므로 어쩔 수 없는 수혈 사고였음을 보고했다. 결국 에이즈 고위험군의 헌혈을 제한하여 에이즈 수혈감염을 막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이 다시 한 번 강조된 사건이었다"고 했다.
김지연 약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헌혈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헌혈기록카드를 작성해야 하는데, 문진항목 중 10번에는 이런 질문이 나온다.
"최근 1년 이내에 불특정 이성과 성 접촉을 하거나, 남성의 경우 다른 남성과 성 접촉을 한 적이 있습니까?"
김지연 약사는 "카드를 작성하는 것은 채혈(採血) 금지 대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과거 병력(病歷)이나 현재의 건강상태 등을 질문하여 얻어낸 답변을 토대로 헌혈을 하기에 부적격한 사람을 가려내 처음부터 채혈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위 항목에 '예'라고 답한다면 헌혈을 할 수 없다. 적십자사가 제공하는 혈액원 홈페이지 전자문진에서도 이 같은 내용은 동일하게 확인이 된다. 이렇듯 우리나라 혈액관리 당국은 남성간 성접촉을 했다면 그때로부터 1년간 남에게 헌혈을 하지말 것을 명시해 놓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남성 동성애자의 헌혈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수의 국가에서 제한·금지되고 있다. 상당수의 국가들은 남성 동성애자의 헌혈을 일정기간 혹은 평생 동안 금지하고 있는데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은 많지 않다"며 "사실 질병의 유무를 혈액 검사를 통해 따지기 전 혈액당국 입장에서는 '남성 간 성행위를 하는 사람은 에이즈 등 특정 질병과 관련돼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하고 있음을 엿볼수 있는 대목"라고 설명했다.
또 "최근 미국 존스홉킨스 의학연구소의 교수 역시 동성애자의 헌혈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며 "2014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이 남자 동성애자의 헌혈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하자 존스홉킨스 의학연구소의 역학전공 켄라드 넬슨 교수는 '만일 남성 동성애자의 헌혈로 한 두 명이라도 에이즈 바이러스(HIV) 감염으로 이어지는 날에는 남성 동성애자의 헌혈은 절대 허용되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한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남성 동성애자들의 현혈에 대해 김지연 약사는 "미국에서 에이즈가 급증세를 보이던 1983년 이후 남성 동성애자들의 헌혈은 불가능해졌다"며 "즉 남성간 성접촉을 한 경우 헌혈을 평생 금지시켜 놓은 것"이라고 했다.
김 약사는 "그러나 이런 정책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이라는 항의에 결국 미국 FDA는 2015년부터 남성 동성애자가 1년간 성관계를 안 하고 금욕한 경우에 한해서는 헌혈을 허용하기로 했다"며 "즉 남성 간 성행위 후에는 1년간만 헌혈이 금지되는 것으로 헌혈의 문턱이 많이 낮아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연 약사는 "동성애자 인권보호차원에서 남성 간 성관계 여부를 묻지 말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헌혈에 동참할 '인권'을 주자는 주장은 마치 권총 총알을 한알 넣은 뒤 귀 옆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러시안 룰렛'을 하자는 것과 같다며 강한 우려를 표현하는 미국 국민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했다.
김지연 약사는 또 "영국의 경우에도 MSM(남성 간 성접촉자)의 헌혈에 대한 평생 금지 조치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시행되어 왔다"며 "HIV와 B형 간염등 혈액 매개 감염의 비율이 MSM에서 가장 높았기 때문에 이들의 헌혈에 대한 금지조치가 취해졌던 것이다. 이러한 평생 금지조항은 2011년에 재검토 되었고 결국 남성 간 성관계를 했을지라도 1년이 지났으면 헌혈을 허용하는 것으로 개편되었다"고 했다.
김지연 약사는 캐나다 보건당국의 입장도 설명했다. "캐나다 보건 당국은 이전에는 '남성 동성애자의 헌혈 조건은 5년 간의 성행위 없음(sexless)'이라고 밝혀왔었죠. 헌혈이 허용된 남성 동성애자는 5년간 동성 간 성관계를 하지 않은 남성 동성애자로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남성 동성애자의 헌혈 금지를 천명한 것이었습니다. 캐나다 보건부의 의료고문인 로버트 커시먼은 2013년에 남성 동성애자의 헌혈 제한 정책에 대해 이런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남성 동성애자 간의 성행위는 위험한 행위이다. 해부학적 설명이 가능하다. 위험 인자임을 알면서도 그 혈액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라고요. 그리고 그는 '지금 캐나다에서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신규로 감염되는 이들의 절반 정도가 남성 동성애자(MSM)이고,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남성의 75%가 남성 동성애자다. 따라서 남성 동성애자의 헌혈 제한 정책은 성적지향과 관련된 정책이 아니라 위험 행동과 관련된 정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지연 약사는 "그러나 동성애를 옹호하는 캐나다 인권단체의 상당한 압박은 계속되었고 캐나다 혈액 당국 역시 이후 남성 동성애자의 헌혈 자진 배제 기간을 1년으로 줄이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김지연 약사는 중국의 경우도 짧게 언급했다. "중국 역시 남성 동성애자들은 에이즈 감염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남성 동성애자들의 헌혈 금지를 제도화 했습니다. 2012년 7월 중국 위생부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헌혈자 건강 검사에 대한 요구(지침)'를 제정했는데요. 이 지침에 따르면 남성 동성애자는 에이즈, B형 간염, C형 간염, 매독 감염자와 함께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헌혈이 금지된 것입니다. 중국 위생부는 헌혈 현장에서 남성 동성애자의 헌혈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안내서를 나눠주고 헌혈자들로부터 서명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질병센터가 발행한 에이즈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15세~24세 청소년들의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이 연평균 35%씩 증가하고있으며 베이징의 경우 2015년 신규 에이즈 감염자의 82%가 남성 동성애자라고 발표 했어요.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남성 동성애자가 일정기간 성관계를 하지 않은 이후의 헌혈만을 허용한 나라에 해당한다. 즉 1년이라는 일정기간에 해당하는 남성 간 성행위자에 대해 헌혈 자진배제 조항이 적용되는것이다.
김지연 약사는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사례를 다시 꺼냈다. 김 약사는 "국립보건원은 2002년 12월께 10대 소녀가 뇌수술 후유증 검사 과정에서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져 역학 및 추적조사를 벌인 결과, 같은 해 5월 9일 한 병원에서 에이즈 감염자인 20대 남성의 피를 수혈받아 감염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힌 사건"이라며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 남성은 남성 동성애자였고 보건원은 또 이 남성의 피는 70대 남성에게도 수혈돼 에이즈에 감염되었으며 또 다른 수혈자인 90대 노인은 이미 숨져 감염 여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는당시 온 국민이 대노하고 안타까워했던 사건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연 약사는 이어 "보건원 관계자는 당시 수혈 감염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감염자들이 헌혈을 자제하도록 홍보하고 선진화된 검사 및 관리법이 필요하므로 이를 위해서 관련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이런 안타까운 보도가 나간지 불과 3개월 뒤에 또 다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입대 전 동성애 경험이 있었던 21세 남성이 기증한 혈액을 수혈받은 두명의 60대 성인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이라고 했다.
"당시 대한적십자사가 내부 지침인 '헌혈 및 수혈사고 보상 위자료 지급 시행규칙'에 따라 1인당 3천만원 정도의 위자료가 지급되는 것이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된 피해자에 대해 주어지는 유일한 보상이었죠."
김지연 약사는 "그런데 이러한 헌혈제한 조치가 남성 동성애자를 '차별'하는정책이라며 반발한 일이 국내에서 있었다"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이 같은 항목이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며 관련 내용을 수정 또는 삭제 권고해달라며 2010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고 했다.
김 약사에 따르면 '친구사이'는 국가인권위 진정서에서 "(해당 항목이) 남성 간의 성행위는 무조건 위험한 것, 그래서 남성 간 동성애는 좋지않은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퍼뜨리고 있다"며 "이 문항으로인해 남성 동성애자들은 불필요하게 사회로부터 거부, 위축감 등을 경험하게 되고 헌혈할 자유 또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항목은 그 이전인 2004년에 이미 개정된 바 있다.
김지연 약사는 이에 대해 "당시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문진항목 중 '최근 1년 사이에 동성이나 불특정 이성과 성 접촉이 있었다'는 항목이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는 사실은 언론에도 공개된 사실"이라며 "이에 국가인권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항목을 바꿀 것을 권고했고 보건복지부가 일부를 받아들여 현재의 안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인권위는 당시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인 것처럼 간주되어온 편견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차별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감지연 약사는 "남성 간 성행위의 문제점을 알고 있는 보건당국 입장에선 앞으로도 해당 항목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즉 남성 간 성관계를 한 사람도 헌혈을 허용해줘야 한다는 요구는 일반 국민 입장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고 했다.
김 약사에 따르면 2003년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수혈 에이즈 감염자는 대부분에이즈에 감염된 남성 동성애자들이 헌혈한 피를 수혈 받은것으로 드러났다는 보도자료를 낸 기관은 다름아닌 보건복지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