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반미(反美) 선전선동이 책동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기독교 인구가 줄었다 하더라도, 일천만에 육박했던 기독교는 어째서 사회주의 선동에 무기력한가. 다음은 그 개요이다.

구약성서라는 지축을 형성시킨(우리가 학술적으로 '유대교'란 명칭으로 구별지어 부르는) 정신사적 DNA는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을 빼놓고선 이해가 불가하다.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이 그 문집을 읽는 독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약 문집을 의식해 경쟁적으로 문집된 책, 신약성서를 축으로 삼는 그리스도교 DNA는 A.D. 70년, 예루살렘 함락을 빼놓고서는 논하는 것이 불가하다. 그것이 모든 구약을 성취한 역사로서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 사건은 바울을 넘지 않고서는 예수에게 갈 수 없는 결과를 낳았는데, 제1 거점이었던 예루살렘이 다 파괴되고서도 살아남은 복음은 주로 바울의 편지들이었던 이치이다. (제3의 복음, 제3의 성전, 제3의 시대... 하는 아류들이 언제나 이단으로 전락하는 이치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와 마찬가지로 프로테스탄트라 불리는 기독교는(우리 개신교를 말하는 것이다) 마르틴 루터를 넘지 않고서는 예수에게 갈 수 없다. 앞서 두 지축이 예루살렘 함락이라는 역사성 속에서 실물로 응결되었듯이, 종교개혁이라는 '사건'으로서 역사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기독교 교사로 자처하는 분들 가운데 "초대교회로 직접ㅡ", 이런 매력적인 선전선동을 일삼는 분들이 많은 시절이나, 그것은 마치 "너의 조상이 누구냐?"라고 묻는 말에 "네, 아담입니다"라고 답하는 것만큼이나 근본 없는 가르침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교회들 중 상당수는 루터나 칼빈, 이른바 일군의 종교개혁 가치를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필자도 과거 출석하던 교회에서 5-6년이 넘도록 목회자의 설교에서 루터라는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이다.

대개 해당 목회자가 루터나 칼빈을 장로교 교주로만 알고 있을 정도로 무지한 경우에 일어나는 사태이지만, 목회자가 무지하지 않더라도 자기 교권을 자산화하는 데만 열심인 대다수의 경우는 루터를 미처 가르칠 시간이 없다. 자기 프로그램에 바쁘기 때문이다.

전자의 교회는 명목상 개신교회 간판을 걸고 있겠지만 실상은 지역 신당(神堂)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후자 역시 명목상 개신교회이지만 실상은 대형마트 문화센터로 전락해 있는 것이다.

그만큼 기독교는 역사의 종교이다. 그리고 그만큼 역사에 태만했던 것이다.

상기와 같은 교회들에서 자라난 청소년·청년들이 교회 바깥에서 루터와 칼빈의 이름을 배우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하필이면 그 이름들을 가르쳐준 교사가 사회주의자들이다.

자기가 믿는 믿음의 뿌리를 알고서 눈이 번쩍 띄었는데, 어느새 종교개혁은 공산/사회주의 혁명으로, 칼 마르크스는 루터로 각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사회주의를 가속화하고 있는 주범 중 하나인 동시에, 그 전체주의 망령에게 권위를 실어주는 영적 권능이 되고 있다.

결국 교회의 무지가, 그리고 무책임한 목회자들의 상황 회피가, 사회적 종양을 방기한 셈이다. 그리고 그 최종 결과를 우리는 목전에 두고 있다.

사회주의 옷을 착용한 기독교는 이단이다.

대한민국의 복음은 마치 예루살렘 함락이라는 사건을 빼놓고서는 구약과 신약을 논할 수 없듯이, '6·25'라는 사건을 기점으로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다.

흔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라는 상황을 관념에 호소하는 경우가 태반이나, 여기서 말하는 '문'은 관념의 문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에서 발생한 명백한 '사건'을 이르는 말이다.

종교개혁과 이어진 역사에서 유리된 교회들이 실상은 이단이듯이, 바울의 전도를 월담해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들어갈 수 없듯이, 사회주의(라 말하고 공산주의를 가르치는) 기독교는 '사건'으로서 우리에게 직결된 역사와 유리되어 있거나 반립하기에 절도요 강도요 이단인 것이다.

그 이단들이 반미 책동에 기름 부어줄 태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