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에 칼럼을 쓴 지가 얼추 25년은 넘은 듯합니다. 그런데도 매주 돌아오는 칼럼 쓰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처음에는 글을 제대로 쓸 줄 몰라 힘들었습니다. 어휘력도 부족하고 글의 묘사가 미흡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아직도 들고 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글의 소재를 찾는 것입니다. 저처럼 매주 칼럼을 쓰시는 한 목사님은 설교 준비를 하면서 그중 하나를 칼럼의 소재로 쓴다고 합니다. 그만큼 칼럼을 쓰려면 충분한 묵상과 사물을 깊이 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영화나 신문 기사를 읽을 때도 영적인 진리를 반추 하는 부분을 읽어내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매일 큐티를 하면서 익힌 묵상 연습은 칼럼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집니다. 수많은 일이 지나가는 그 시간에 내 생각과 감정을 스치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기록하지 않으면 그냥 잊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별것 아닌 시간에 주님을 만나는 값진 시간이 있고, 말씀과 기도 속에 던져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시원하게 내리는 장대비 혹은 산들산들 부는 봄바람에도 주님의 호흡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구르는 낙엽에서 느껴지는 주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종이 위의 활자로밖에 안 보이는 글자에서 때때로 살아 움직이는 주님의 모습을 상상할 때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평범한 24시간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감동과 눈물 그리고 깨우침으로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칼럼 쓰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크로노스에서 일기장에 남기고 싶은 시간, 카이로스를 남기는 것이 칼럼을 쓰는 이유입니다.
기억 상실증은 병입니다. 불필요한 것을 잊어서 좋기도 하지만 우리는 좋았던 것을 너무 쉽게 잊는 경향도 있습니다. 저는 흘러가는 매일의 일상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수많은 선물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중에 몇 개 만을 우리는 기억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기억한다면 더 많은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칼럼을 쓰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좀 더 민감하게 기억하는 습관을 기른 것 같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만나는 색다른 경험을 글로 담아내면서 '은혜 기억 상실증'이라는 병을 조금씩 극복해 가려고 몸부림쳐 봅니다. 정말로 괴로웠던 기억을 지우는 심리치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치유는 괴로웠던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은혜와 감사의 기억으로 대치하는 것입니다. 교회 주차장에 꼼짝 못하고 박혀 있는 나무를 보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은 푸른 옷을 갈아입고 힘있게 좌우로 손짓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나보다 더 생명력 있는 모습입니다. 움직일 수 없다고 무능하다 말하지 말고, 손짓하는 나뭇가지를 보며 은혜를 기억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