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최대의 벽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율법학자로써 예수 믿는 사람들을 살기등등하게 남녀 막론하여 핍박하고 잡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초대교회에 지성과 열심을 동시에 지닌 교회 최대의 벽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인생 가운데 이런 답답한 벽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철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울이 어느 날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이후로 부터 복음의 최고 강한 사도가 된 것 입니다. 핍박 자에서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택한 그릇이 된 것입니다. 누가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일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지시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의 벽은 홍해였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죽음의 벽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손을 대시므로 홍해가 눕혀져 다리로 만 드셨습니다. 200만 백성이 건너는 다리요, 애급 군대의 추격을 막아주는 보호벽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벽이라 생각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불가능이라는 생각하는 벽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 나아간다면 이 벽으로 다리를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불가능이 최선이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중풍 병이라는 벽이 있는 사람을 지붕을 뚫고 달아 내린 친구의 믿음이 벽을 다리로 만들 듯 말입니다.
그리고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야 합니다. 모세가 지도자로써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40년의 애급의 학문과 40년 광야의 연단과 시내 산의 경험 등으로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인생이 깊어지라고 넓게 모세의 인생을 이끌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깊이가 중요하기에 깊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독서의 깊이와 지식의 깊이와 상식의 깊이가 큰 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깊이가 중요하다고 깊이만 추구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깊이만을 원한다면, 반대로 넓게 접근해야 합니다. 넓게 파게 되면 궁극적으로 깊게 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것에만 매달리면, 깊어지지 않습니다. 다른 것을 접하고 부딪칠 때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광야를 거치게 되면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하던 일들이 깊어지는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를 원하면 넓게 접근해야 합니다. 깊은 기도를 원한다면 오래 기도해야 합니다. 넓이가 깊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넓게 이끄시기에 무가치하다 생각 치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쓰레기통은 없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벽이 도구이기에. 벽을 모두 다리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김병규 칼럼]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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