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고려대 베리타스 포럼은 고려대 이공대 과학도서관 5층에서 오후 6시에 칼빈 신학교 제임스 스미스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전했다. 그는 "당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가 삶을 이끄는 추동력"이라고 강조하면서, 강연의 첫 스타트를 끊었다. 다만 그는 "여러분과 나는 내면에서 무얼 정확히 갈망하는지 모를 수 있다"고 반문하며, "우리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게 실은 내면의 깊은 원함과 다름"을 타진했다.
그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 스토커를 빌려 논의를 전개해 갔다. 그는 "우리 내면의 소원을 이뤄주는 방 앞에서 작가와 과학자는 서있다"고 전하며, "그들은 방에 곧바로 들어가기보다, 서성이고 있다"고 했다. 스미스 교수에 따르면, 스토커에 의해 그들은 소원의 방 앞으로 인도받았다. 그들이 주저하는 이유는 달리 없었다. 바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미스 교수는 "방이 그들의 소원을 결정할 것"이라 강조했다.
이처럼 그는 "우리의 갈망은 실은 내면의 깊은 용솟음이 아니"라며 "문화·습관에 의해 직조되고 투입된 어떤 것 일수 있다"고 역설했다. 바꿔 말해 그는 "규칙으로 움직이는 문화권 안에서 습득되고, 만들어진 소원"이라고 했다.
또 그는 "우리 마음은 어떤 소원 따라 행동 한다"며 "이 소원은 실은 일상의 루틴(Routine)에 의해 직조된 것"이라고 재차 꼬집었다. 따라서 그는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삶을 맡기는 걸 조심하라"며 "마음 따라 헌신하는 게 실은 일상의 루틴(Routine)이 직조한 결과물 일 수도 있다"고 했다.
칼빈신학교 제임스 스미스 교수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아울러 그는 "우리 내면적 삶도 은폐된 영역"이라며 "익명의 땅이며, 굶주린 마음으로 무언가를 예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피조물은 예배하는 대상에 스스로를 내어 맡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그는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라스를 빌려, 누구든 무언가를 예배하며 살아감을 말했다.
"매일 살아가는 삶의 참호 속에서 무신론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예배 하지 않는다는 건 없습니다. 모두가 예배합니다. 우리가 오직 선택할 수 있는 건 무엇을 예배할 것 인가입니다"
가령 그는 스마트폰에 의해 구성된 우리 삶과 소원을 설명했다. 그는 "아이폰에 맞닿는 손은 필요할 때 얻고,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나 중심의 세계"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이 작은 기계는 나에 의해 세상을 선택하고, 측정하고, 작동시킬 수 있다는 자아의 집결체"라며 "내 맘대로 세상을 직조하고 선택해, 재구성 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기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고 밝히며, "내가 세상에 복종하는 게 아닌, 세상과 환경을 우리에게 복종하도록 한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아이폰은 자기중심성을 심겨줌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고 소원을 긍정하는 도구"라고 덧붙였다. 결국 그는 "우리가 아이폰을 통해 갈망하는 어떤 것을 이루는 게 아니"라며 "아이폰이 우리 소원을 이끌어 가는 것"이라 지적했다.
한편 그는 "이 소원이 정말 우리 내면의 깊은 원함일까"라고 재차 반문했다. 그는 파스칼을 빌려 "인류의 불행은 방에서 조용히 머무는 능력의 부재"라며 "조용히 내면을 응시하기를 포기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우리는 정신을 분주하게 만드는 것들을 사랑 한다"며 "지루함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우리가 열정과 비즈니스 없는, 생각과 노력이 없는 고요함"이 "우리를 무가치한 느낌에 사로잡게 만듦"도 덧붙였다.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사람들이 카지노에 열광하는 이유"로 그는 "멈춰 섰을 때 사로잡히는 불안감에서 도망가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그는 "이런 번잡함 속에서, 우리는 돈, 명예, 섹스, 쾌락, 권력, 봉사 등을 갈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우리 내면을 응시할 때, "나는 정말 무얼 원하는지"를 알게 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질문이 당신을 심문하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이 모든 것이 나의 굶주림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특히 그는 "어떤 선한 의지조차 이런 공허함에 내버릴 수 있다"며 "우리는 영혼 안에 있는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열광적인 행동주의자로 변모 한다"고 우려했다.
결국 논의를 확장해, 그는 우리가 직면하는 질문의 도달점을 짚어 말했다. 그는 성 어거스틴을 빌려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참 만족'임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당신은 우리 자신을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 쉴 수 없습니다"를 인용해, "바로 어거스틴의 기도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만일 그는 "정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 사랑이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면 "나는 지금 우얼 사랑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나아가 그는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하나님을 예배할 것인지가 삶의 차이를 만든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어떤 것도 내면의 굶주림을 채워줄 수 없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 "하나님이 내게 무얼 요구할 것인지"란 질문 앞에 서성임을 밝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얼 요구하시는 걸까? 그는 "스스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를 내어 맡기기를 원 하신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나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라며 "그분은 명령대신 스스로를 희생하신 분"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악과 깨어짐에 대해 보상하도록, 희생 제사를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셨다"고 역설했다. 도리어 그는 "예수는 악과 깨어짐을 스스로 짊어지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 자신을 예수께 내어드린다는 것은 돈이나 특권처럼, 우리의 복종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우리가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면, 어떤 보상에 대한 기대감도 아니"라고 했다. 다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단 위에서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참회는 야단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그분께 정직해지는 기회"라며 "은혜야 말로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이유로 그는 "이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제시했다. 만일 그는 "기독교가 진리고, 어거스틴이 옳다"면 "인간은 무한히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지어진 존재"라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쉼을 누리려는 시도는 우리를 실망 시킨다"고 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미친 듯이 사랑하고자 하는 것을 쫓지만,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 한다"고 꼬집었다. 다만 그는 "절망 가운데서 우리 스스로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발견할 뿐이라며, "우리는 갈망 속에서 궁극적인 하나님을 찾을 뿐"이라고 재차 말했다. 하여 그는 "이 시도 속에서 하나님의 메아리를 듣고 있는 우리 모습을 발견해야 함"을 촉구했다.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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