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떠남은 여러분들이 저를 버림으로써만 완결됩니다. … 여러분은 이재철을 버리시되, 적당히가 아니라 철저하게 버리셔야 합니다. 이재철을 크게 버리면 크게 버릴수록, 후임 공동 담임목사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거침없이 내려주실 새로운 차원의 은혜를 더 크게 누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이었던 지난 2018년 11월 18일, 100주년기념교회 초대 담임 이재철 목사는 설교에서 이 말을 남기고 퇴임, 지리산 자락 경남 거창군에 미리 지어놓은 집을 향해 떠났다. 그로부터 6개월, 현재 100주년기념교회 홈페이지에는 이재철 목사의 프로필조차 남아있지 않다.
재임 시절 한국교회를 향해 삶과 설교, 그리고 교회 내 제도 개혁으로 ‘본질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온 이재철 목사는, 퇴임 순간까지 ‘가진 것 없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나는’ 강렬한 마무리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는 그의 메시지에 반응하고 있을까. 이재철 목사가 남긴 유산이자 교회 개혁의 모델인 100주년기념교회 ‘공동 담임목사’ 중 2인을 지난 14일 만나, 그가 한국교회와 100주년기념교회, 그리고 그들에게 남긴 ‘신앙의 유산’들을 들어봤다. 두 차례에 나눠 연재한다.
세 차례 모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난 ‘언행일치’
-정한조 목사님은 이번까지 이재철 목사님을 세 번째 떠나 보내셨습니다. 세 번의 떠남에 다른 점이 있었나요.
정한조 목사: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결같이 떠나셨습니다. 처음 주님의교회는 10년만 목회하기로 하고 부임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교회 4주년 정도부터 있었습니다. 10년만 하고 떠나신다고 했지만, 전에는 그렇게 떠난 분들이 없었기에 계속 계시리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계속 떠나실 거라고 말씀하셔서, 교우님들도 ‘진짜 떠나시려나’ 하게 됐습니다. 10년이 지나고, 약속대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시는 모습을 보면서 ‘목사란 저런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제네바 한인교회에서도 그랬습니다. 주님의교회에선 여러 교역자들 중 한 사람이었지만, 제네바에선 목사님을 떠나보내고 저 홀로 남았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목사님의 뒤를 이어 제네바 한인교회에 부임하고서 운영위원 열 몇 분과 앉아있으니 ‘아, 이게 담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이 분들이 결정한 대로 교회가 운영될텐데, 잘못 결정하면 교회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두려운 마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100주년기념교회에서는 떠남과 함께 목회직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무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도 예전부터 마무리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좋은 모델을 봤기에 ‘나도 나중에 저렇게 떠나면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감동적이었고, 저는 왜 자꾸 떠나 보내야만 하나 하는 생각도 조금 했습니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말씀드려 많이 슬펐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한쪽 구석에 숨어서 가시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차마 앞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김광욱 목사: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주님의교회에서 어떤 기념행사도 갖지 않고 떠나신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실제로 예배 인도 후 그대로 떠나셨습니다. 조용히 가고자 하셨지만, 성도님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축복송을 부르며 배웅하셨습니다. 교역자들이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끝까지 ‘언행일치’의 목회를 하셨습니다.
말로만 ‘떠난다’고 하지 않았고,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하셨습니다. 지난해 11월 18일 마지막 예배 후 떠나셨는데, 그 전에 이삿짐을 이미 다 옮기셨습니다. 교인들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미련 없이 완전히 떠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셨습니다.
정한조 목사: 목사님은 원래 주일 설교 후 원고를 교역자들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한 주간 동안 같은 말씀으로 심방도 하고 살기 위함인데, 마지막 예배 때는 전날 밤에 미리 보내 주셨습니다. 설교가 끝나면 바로 떠나야 하니 미리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철저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임들에 부담 주지 않으려 멀리 거창으로 떠나신 듯
-목사님이 굳이 연고도 없는 거창까지 가셔야 했을까요. ‘땅값 10만원’이라는 기준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김광욱 목사: 한국교회를 향한 메시지라고 봅니다. 사모님은 사업이 남아있어 서울에 자주 오셔야 하는데도, 불편을 감수하고 그곳까지 떠나셨습니다. 후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멀리 떠나셨다고 봅니다. 큰 마음 먹고 찾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 내용들을 놓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한 평에) 10만원 미만의 땅을 서울에서 아주 먼 곳에 찾게 하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0만원은 ‘형편에 맞게 구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10만원 하는 땅이 거의 없습니다. 버려진 땅,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땅이라도 이사하겠다는 의미 아닐까요. 실제로 시골 구석진 곳에서 겨우 찾으셨습니다.
정한조 목사: 같은 생각입니다. 교인들에게, 후임 목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함일 것입니다. 저희 4명이 굉장히 잘 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혹시라도 그렇지 못하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물론 ‘나는 떠난 사람입니다’ 하시겠지만 이런저런 사람들이 계속 찾아갈텐데, 그런 모습을 막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또 하나는 한국교회를 향한 상징적 메시지라고 봅니다. 이재철 목사님은 교회에서 정말 완전히 떠나셨습니다. 주님의교회에서는 약속대로 떠나는 게 맞다고 보여주셨다면, 100주년기념교회에서는 은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시려는 것 같습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이 은퇴 후에도 교회 근처에 사무실을 내거나 연구소를 만들어 계속 출근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런 분들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1%도 없습니다. 각자 역할이 다르다고 봅니다. 이 목사님은 ‘은퇴란 이런 것’임을 한국교회에서 샘플로 보여주신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퇴임 메시지, 목회자들 은퇴하면서 대우받으려 하지 마라는 것
-그렇다면 이재철 목사님이 은퇴를 통해 한국교회에 남기려는 메시지가 무엇이었을까요.
김광욱 목사: 마지막 설교와 전후 행동에 목사님의 뜻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3가지인데, 먼저는 ‘원로목사’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원로목사로 추대하든지 그에 준하는 대우를 해야 한다고 여러 교우님들이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원로목사라는 것이 하나의 직함에 불과한 줄 알지만, 이는 월급부터 차량 제공, 설교 등 ‘원로목사급 대우’를 뜻합니다. 결국 원로목사가 되지 말라, 대우받으려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둘째로 후임 청빙에 있어 ‘스카웃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00주년기념교회 정도 규모라면 해외 박사학위에 갖가지 화려한 커리어 있는 분들을 교우님들이 원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전에 여러 차례 말씀하셨는데, 좋은 목사를 데려오려면 기존 담임목회를 하지 않는 사람 중에 데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괜찮은 교회에서 목회하던 분을 모셔온다면, 모시는 입장에선 좋을지 몰라도 떠나보내는 입장에선 어떻겠습니까. 그런 걸 맞지 않다고 보셨기 때문에, 대한민국 최초로 ‘공동 4인 담임목사’가 세워졌다고 봅니다.
달리 말해 담임목회를 하면서 교역자들을 ‘소명인’으로 키우라는 의미입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긴 그렇지만, 이재철 목사님은 교역자들을 ‘소명인’으로 훈련시키고 세우셨다고 봅니다. 후임이 세워질 때도 개입하실 수 있었지만, 철저히 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보통 담임목사님들이 퇴임할 때 ‘전별금’을 받지 않습니까? 다른 교회와 비교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목사님은 전별금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고 봅니다.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가능하면 교회와 교우님들에게 베풀어야 함도 보여 주셨습니다. 아실지 모르겠는데, 사시던 집을 기부하고 가셨습니다. 지금 1별관 건물로 사용되는 곳인데, 3층 짜리 주택이었고 총 100평 이상입니다. 시세로 보면 20억원이 넘을 것입니다. 명의는 누님 것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목사님께서 교회에 내놓으신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 교우님들이 목사님께 전별금도 드리고, 최소한 목사님이 주신 것만큼만이라도 다시 드리자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목사님 뜻을 알기 때문에 저희들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은 한 푼도 받지 않고 떠나신 것입니다.
제왕적 목회란, 재정과 인사권 마음대로 쓰는 것
-‘공동 4인 담임목사’ 체제는 소위 ‘제왕적 목회’의 거부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항간에서는 ‘본인은 혼자 (제왕적으로) 하셔놓고…’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김광욱 목사: 카리스마적 목회라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제왕적 목회’라는 표현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교인들 다수가 반대하더라도, 자신의 욕심을 위해 뭔가 추진하는 것이 ‘제왕적 목회’ 아닙니까. 의견 대립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해서 명예를 훼손하거나 실추시켰다면 ‘제왕적 목회’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재철 목사님은 재정에 있어 철저했습니다. 저희 교회에는 판공비도 없었습니다. 재정 운영도 시스템과 룰에 의해 움직였습니다. ‘제왕적 목회’를 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습니다.
상임위원회 역시 부서 결정을 존중하는 편이었고, 2-3개 부서와 연관돼 있을 때는 협의를 거치는 정도였습니다. 찬성과 반대만 있는 당회와 달랐습니다. 카리스마가 있어 보일 수 있지만, 그 결과가 ‘제왕적 목회’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2009년 12월 이 교회에 왔습니다. 면접을 보는데, 그 자리에 담임목사님이 안 계셨습니다.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해 면접 심사위원에 제가 바로 들어갔습니다. 인사권을 철저히 잡고 있어야 하는데, 교역자 청빙조차 맡기셨습니다. 저희도 공동 담임목사 4인이 철저히 협의하고 있습니다.
정한조 목사: 그런 말씀 하시는 분들께 되묻고 싶습니다. 제왕적 목회가 무엇입니까? 돈 마음대로 쓰고, 사람 마음대로 조종하고, 2가지 아닙니까. 그걸 하신 적이 없습니다.
안 계신 것 체감 못할 정도… 성도 수도 그대로
-사실 이재철 목사님은 올해 6월이 연령상으로 정해진 은퇴 날짜였는데, 약 7개월 빨리 떠나셨습니다.
김광욱 목사: 치밀한 성격대로, 매주 또는 격주 회의하면서 설교도, 회의도 서서히 자신의 일에서 하나씩 물러나셨습니다. 그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충분히 됐는데 더 있어본들 뭐하겠는가’ 하는 말씀을 하신 적은 있습니다.
본인 없는 시스템을 서서히 다 만들어놓고 가셨기 때문에, 교인들이 물론 그리워하지만 안 계시다는 걸 체감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저희도 목사님 퇴임 후 성도 수가 줄어들 거라 생각했는데, 그대로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나가셨습니다.
정한조 목사: 이전 정관에는 ‘초대 담임목사의 정년은 70세까지로 한다’고 돼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만 70세’로 알았지만, 이 목사님은 ‘우리 나이로 70이라 생각한다’고 하고 가셨습니다. 저희 후임 4인을 위해 자리를 내주신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목회에 진력을 다 하셨기 때문에, 좋은 의미로 진이 다 빠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교회가 이 목사님 퇴임 후 바뀐 부분이 있는지요.
정한조 목사: 바뀐 것이 별로 없고,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저희는 아직 연말에 재신임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이대로 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배가 클수록 방향을 천천히 돌려야 하지 않습니까?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바꾸겠지만, 연말에 신임이 되더라도 바꿀 것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김광욱 목사: ‘교회 방향이 잘 잡혀 있으니, 잘 보수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더 뜯어고쳐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요. 교인들이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 수준에 머물지 말라는 과제를 주신 것 같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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