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국집에 초라한 행색의 아이 3명이 들어왔습니다. 쭈뼛쭈뼛 하더니 자장면 2그릇만 시킵니다. 언니는 체했다 하면서 먹지를 않습니다. 사실은 돈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가 말합니다. 우리에게도 엄마, 아빠가 있으면 좋을 텐데. 말하다가 웁니다, 그러자 막내가 울고, 질책하는 언니가 웁니다. 이것을 보던 중국집 사모님이 말합니다. "너희들 오랜만이구나. 모르겠니? 나 엄마 친구야. 무척 친했단다. 여기 한 그릇 더 있다. 탕수육도 줄게. 마음껏 먹어라." 체했다던 언니도 잘 먹습니다. 사모님이 덧붙입니다. 너희들 언제든지 와서 먹어라. 돈 내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이 간 다음에 남편이 물었습니다. 누구야? 그러자 몰라. 그런데 왜 아는 체 했어, 그러자 그냥 주면 아이들이 상처받을까봐서 엄마친구라 했다 합니다. 중국집 사모님의 선행이 참 아름답습니다. 아픈 아이들의 마음을 읽은 민감성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영혼들을 광야로 이끄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결핍이 주는 유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결핍에서 민감성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간혹은 쌓아놓은 재물이 민감성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상처를 주고도 느끼지 못합니다. 남의 아픔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 교육의 핵심은 결핍입니다. 재물 쌓아두면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풍부에서 교육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결핍을 알 때부터 철이 들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부모님들은 가난해도 당당했습니다. 돈이 없는데 아이들이 장난감 사달라고 조릅니다. 돈 없어. 못 사주어, 이것이 당당한 현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결핍을 알게 되었고. 한계를 알아. 부모의 능력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부터 철이 드는 것입니다. 현명한 부모는 재물 쌓아두고도 쉽게 사주지 않습니다. 아이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못 사와 안 사"는 설득력이 다른 것입니다.
중심에 믿음이 없는 부모는 나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에게 좋은 것 못해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낍니다. "자식에게 해 준 게 없어서." 이것은 부모가 할 말이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말입니다. 자식을 망치는 것은 부모입니다. 부모는 낳아 준 것, 키워 준 것만으로도 당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결핍의 존재입니다. 결핍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부모가 채워주려 하니, 하나님께 가는 길을 막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줄 수가 없어서 결핍으로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결핍에서 얻을 수 있는 민감성 때문입니다.
[김병규 칼럼]자녀 교육의 힘과 핵심은 결핍입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