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칼럼은 '펜앤드마이크'에 28일 게재됐습니다. 본지는 이정훈 교수와 펜앤드마이크의 허락을 얻어 전문을 싣습니다.
짧은 시간, 봄의 아름다움을 만개(滿開)로 표현한 벚꽃도 지고 더 농숙해지던 날씨가 비와 함께 추위를 느낄 정도로 변해버린 밤이었다. 한 대학에서 강연을 마치고 산부인과 의사이자 낙태 경험을 가진 두 아이의 엄마를 만나서 낙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낙태시술의 경험을 설명하면서 눈물을 보이던 그녀의 아픔이 엄마에 의해 살해된 여러 생명들의 표현되지 못한 원망처럼 필자의 양심과 감정을 파고들었다.
1977년 보스턴에서는 케네스 에들린(Kenneth Edelin) 박사가 자궁절개수술로 꺼낸 내용물(?)을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 내용물은 모체에서 분리되어 세상에 나왔을 때 분명히 살아있었다. 피해자는 내용물로 취급될 수 없는 인간의 형상을 가진 귀한 생명이었다. 코네티컷주에서 1972년 있었던 재판(Abele v. Markle)을 통해 낙태수술로 모체 밖으로 나온 후 일정시간 동안 생존했던 태아들에 대한 기록이 27건이나 세상에 알려졌다. 그들 중 몇몇은 입양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한 산부인과 의사가 염수낙태법 시술 후 산채로 태어나 버린(살아서 태어나길 원하지 않았던) 아기를 질식사시킨 혐의로 기소되었다.
최근 원하지 않는 아기를 임신했을 경우, 이 아기를 살해하는 행위를 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이 헌법재판소에서 내려졌다. 낙태 후에도 살아남아서 인간으로 살아간 경우도 있었던 미국의 사례들을 보았을 때 "인간의 형상을 가진 태아 살해와 영아 살해의 윤리적·법적 경계선을 인간이 정할 수 있을까?"라는 심각한 의문에 직면하게 된다.
필자의 감정적·이성적 황망함과 분노는 과거 황우석 박사와 관련된 생명윤리 논쟁과 생명윤리법으로 전이되었다. 생명윤리를 강력하게 외치던 소위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이자 인권의 근거로 떠들어대던 목소리 큰 인간 군상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유물론자임을 지적으로 자랑하던 자들과 신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연합하여 인간의 배아를 사용하는 연구에 대한 철저한 윤리적 통제를 주문했다.
덕분에 한국의 생명윤리법(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관련연구에 대한 윤리적 규범통제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강력하게 제정되었다. 이 법은 연구를 위한 배아·난자·정자의 보존에 관한 사항과 폐기에 관한 사항뿐만 아니라 잔여배아 및 잔여난자를 연구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관한 사항까지 윤리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이 법은 제1조에서 "인간과 인체유래물 등을 연구하거나, 배아나 유전자 등을 취급할 때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거나 인체에 위해(危害)를 끼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생명윤리 및 안전을 확보하고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배아"(胚芽)란 인간의 수정란 및 수정된 때부터 발생학적(發生學的)으로 모든 기관(器官)이 형성되기 전까지의 분열된 세포군(細胞群)이라고 정의한다. 심지어 이 법은 난자를 매매하거나 매매를 중개한 자를 처벌한다.
"인체유래물"(人體由來物)이란 인체로부터 수집하거나 채취한 조직·세포·혈액·체액 등 인체 구성물 또는 이들로부터 분리된 혈청, 혈장, 염색체, DNA(Deoxyribonucleic acid), RNA(Ribonucleic acid), 단백질 등을 말한다. "배아"뿐만 아니라 "인체유래물"조차도 다른 물질들과 다르게 법이 특별하게 취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다르게 특별히 존엄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헌법이 보장하는 모든 기본권의 규범근거이자 인류가 영원히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다.
난자를 매매하는 행위까지 처벌하자고 외치던 그 윤리적 인사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오히려 이 위선적 인사들이 인권의 이름으로 낙태죄가 위헌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지 않은가? 생명권보다 더 중요한 인권이 존재하는가? 이것은 태아가 완전한 인간인가 여부에 대한 논쟁의 차원이 아니라 태아의 생명 자체가 갖는 존엄성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윤리적·법적 논쟁이다.
인간의 형상을 갖춘 태아가 "배아"보다 더 하찮게 취급받고 심지어 살해당해도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상한 한국의 법현상은 특정 이데올로기로 사법부 내에 사조직을 만든 세력이 법의 이름으로 헌정과 법치를 파괴하고 있는 촛불혁명이 진행 중인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당연한 것일까?
이미 모자보건법은 제14조 제1항에서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정하고 있다. 모자보건법이 정한 낙태의 법적 허용한계를 넘어서는 태아살해의 비범죄화가 여성의 인권 실현이라는 주장은 기본권의 근거인 "인간의 존엄성"과 양립할 수 없다.
또한 생명윤리법이 "인체유래물"과 "배아"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해 다른 물질과 다르게 존중하는 것과 유비적으로 형량해 보아도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은 헌법해석의 통일성, 그리고 헌법의 규범통제 차원에서 법질서의 정합성이 유지될 수 없는 잘못된 결정이다.
인간을 학살해서 혁명을 완수한다는 공산독재를 위대한 혁명으로 존경한다는 자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한국에서, 또 특정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자들의 사조직이 사법부를 장악한 헌법과 법치파괴의 상황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헌법해석의 통일성을 강의하고 있는 법철학자의 무력감은 이제 죄책감으로 변해 양심의 통증이 되고 있다.
음란한 방종과 무책임을 엄숙한 인권의 이름으로 그 정당화의 격을 높여 자식을 살해하는 행위에 대한 심리적 죄책감마저 덜어주려는 도덕의 부정을 헌법의 이름으로 승인한 것은 인간이 인간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포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해서 인권을 실현한다는 미친 혁명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이 이상한 불법의 나라를 헌법의 이름으로 용인할 수 없기에,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질 수밖에 없는 도덕적 책무로 인해 이 더러운 권력과 그 정당성을 상실한 부도덕한 법에 불복종하고 투쟁해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