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사람: 신앙이 사람을 만든다
◈교육과 가계(家系): 쥭스 가문과 에드워즈 가문 비교
목회자이자 저술가로 평생 미국의 교육에 관한 연구에 매진했던 앨버트 윈십(Albert E. Winship)은 1900년 '쥭스 가문-에드워즈 가문: 교육과 유전에 관한 연구(Jukes-Edward: A Study in Education and Heredity)'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에서 윈십은 미국의 저명한 목회자, 설교자, 신학자이자 제1차 대각성운동(1735-1755)을 주도한 조나단 에드워즈, 그리고 그와 같은 시기에 생존했던 개척자 맥스 쥭스, 이 두 사람의 후손들의 삶을 교육과 유전 측면에서 분석한다.
쥭스와 그의 후손들에 관한 사연은 이미 1874년 사회학자 리처드 덕데일(Richard L. Dugdale)이 조사해 정리한 바 있다. 덕데일의 조사에서 맥스 쥭스는 "무신론자(an atheist)였으며, 불경건한(ungodly) 삶을 살았고, 역시 불경건한 여자(an ungodly girl)와 결혼한" 인물로 소개된다.
그리고 그의 후손 540명 가운데 310명은 극빈자였고, 150명이 범죄자였으며, 7명은 살인자였고, 100명은 술주정뱅이였으며, 여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매춘부였던 것으로 집계된다.
덕데일은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범죄, 빈곤, 질병이 유전 못지 않게 환경에 의해서도 후대에 전수될 수 있다고 결론내리고 미국의 공공복지정책 강화를 촉구했다.
윈십은 덕데일의 주장을 한층 더 강화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덕데일의 조사결과를 조나단 에드워즈 가문의 사연에 맞대어 비교한다.
윈십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에드워즈 가문에 범법자란 존재하지 않았고, 100명의 변호사, 30명의 판사, 13명의 대학 총장, 65명의 교수, 60명의 외과의사, 100명의 목회자(선교사와 신학교수 포함), 80명의 선출직 공직자(시장 3명, 주지사 3명, 다수의 의회의원, 3명의 상원의원, 1명의 부통령 포함), 60명의 저술가 혹은 편집자(135권의 책 출간), 75명의 육해군 장교가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대단히 유명한 일화일 뿐더러, 설교단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예화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평생을 목회자로 헌신했을 뿐 아니라, 예일대 졸업생이자 다수의 학술논문을 남긴 신학자로서 지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살았던 에드워즈의 삶은 후대 그리스도인들의 모범 중 모범으로 손꼽힌다.
그는 개인적인 삶의 방식뿐 아니라 교육방법에 있어서도 걸출한 모범을 남겼다. 그의 후손들의 삶은 그의 성공적 교육방법을 입증한다.
▲조나단 에드워즈 가문과 맥스 쥭스 가문의 삶 비교. |
물론 덕데일과 윈십의 연구, 그 가운데 특히 덕데일의 연구는 여러 측면에서 세부적으로 부정확하고 편향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날 속속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맥스 쥭스 본인이 무신론자였는지 여부, 그의 자손의 전체 수, 그리고 자손들의 비행(非行) 가운데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술주정뱅이 수, 여자들 중 매춘부의 수 등이 그 정확성을 의심받고 있다.
그렇지만 맥스 쥭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의 삶이 여러 모로 빈곤하고 추악했던 것, 그리고 여자들 가운데 실제 매춘부가 다수 존재했으며, 혹 돈을 받고 성을 팔지는 않았어도 성윤리가 희박한 삶을 산 여자들도 많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윈십은 자신의 연구 말미에 유전보다 교육을 강조한다. 애초 유전 자체가 교육에 의해 결정되는 요소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는 자신의 글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적는다.
"교육이란 1년에 몇 주간 학교에 가는 것, 그리고 읽고 쓰는 법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교육은 성격(character), 근면성(industry), 그리고 애국심(patriotism)과 연관되어 있다.
교육은 저속함(vulgarity), 빈곤(pauperism), 범죄(crime)를 멀리하고 질병(disease)과 불명예(disgrace)를 방지하려 하며, 인간다움(manliness), 성공(success), 충성심(loyalty) 획득에 도움을 준다."
이 진술에서 윈십이 쥭스 가문의 몰락과 에드워즈 가문의 흥왕(興旺) 원인을 단지 지식 전수의 성사 여부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교육은 지식 전달 이상의 것으로, 삶의 방식과 태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신앙까지 포괄하는 전인적(全人的) 배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윈십의 연구가 전달하는 주된 함의라 할 수 있다.
▲앨버트 윈십과 그의 저서 <쥭스 가문-에드워즈 가문>. |
◈교육과 지위: 무엇이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가?
쥭스 가문과 에드워즈 가문의 사연은 명가(名家)의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윈십은 신앙을 바탕으로 삼는 전인적 교육을 답으로 제시했다. 'SKY 캐슬'에 등장하는 다섯 가정은 각기 고유한 신념을 따른다.
'명문家를 만드는 건...'이라는 홍보문구에는 이 신념의 내역이 나열된다. 정성(精誠), 인성(人性), 명성(名聲), 극성(極盛), 본성(本性).
이 가운데 윈십의 견해에 가까운 것은 당연히 이수임(이태란 분) 가족의 '인성'이다. 그리고 이처럼 인성이 뒷받침된 교육의 결과는 수임의 아들(친아들은 아니지만) 황우주(찬희 분)다.
보육원에서 자라나 가난과 고생을 알고, 그 기억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데 힘쓰는 훌륭한 의사 아버지 황치영(최원영 분), 그리고 교생 시절 경쟁 위주 입시교육의 폐해로 절친했던 학생의 자살을 목격해야 했던 어머니 이수임의 양육을 통해, 황우주는 성품이나 성적 모두에 결점이 없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학생으로 성장했다.
'SKY 캐슬'은 이른바 '막장성'을 다분하게 함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신분 상승과 과거 세탁에 목을 매는 미모의 중년 여성, 가족 간 불화와 자살, 출생의 비밀(김혜나의 친아버지가 실은 강예서의 아버지 강준상, 즉 김혜나와 강예서는 이복자매), 주요인물의 갑작스러운 죽음(김혜나의 추락사) 등 자극적 요소가 산적해 있다.
그나마 우주네 가족의 존재로 인해 권선징악형 결말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김혜나(김보라 분)의 추락과 사망으로 인해 희박해지고 만다.
결국 'SKY 캐슬'의 다섯 가족 모두 드라마의 막장성에 희생되고 있는 중인데, 문제는 이것이 드라마 서사 가운데 어디로부터 유래되는 것인가다.
그 원천은 바로 강준상(정준호 분)-한서진(염정아 분) 가족이 고수하는 인간관, 즉 사회적 지위와 명성(최고대학 의대출신 의사 가문으로서의 명성)에 집착하는 출세지향적 인간관이다.
강준상의 가문에서 인간의 품격은 그가 가진 지위와 명성에 의해 결정된다. 재물은 그에 자연스레 뒤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오로지 지위와 명성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확고한 신념이다.
그리고 이런 신념은 대한민국 전체 학부모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거국적 이데올로기로서 우리가 자주 집착하는 민족주의조차 압도하는 위력을 보인다.
이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속담이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이 속담의 원뜻은 사람이 높은 지위를 얻게 되면, 그에 걸맞는 성품과 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결국 그 지위를 감당할 정도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매우 긍정적인 의미의 속담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속담이 한국의 기형적 교육열과 교육방식에 연결되면 그 의미가 180도 달라지게 된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자리를 얻어야 한다는 완벽히 출세 제일주의적 의미로 재해석되고 마는 것이다.
▲한서진과 그의 딸 강예서(김혜윤 분), 이들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사상을 신봉한다. |
이 경우 그 '자리'를 얻기 위한 첫 관문, 출세가도를 달리기 위한 첫 관문인 학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들이 연이어지게 된다. 'SKY 캐슬' 12화에 등장한 차세리(박유나 분)의 학력위조 사건은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일상다반사 수준의 일이라 별로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그 현실성 때문에 헛웃음을 유발할 뿐이다.
하버드대에 입학한 척 했을 뿐 아니라 학생증을 위조해 1년간 강의를 도강하고, 기숙사와 식당을 이용한 차세리의 행태는 2015년 발생한 실제 사건인 '김양 위조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듯하다.
한 미국 유학생이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두 곳에 동시 합격했다고 속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이 사건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학력위조 풍토를 대표하는 사례다.
이 사건 전에는 한 유명 미술관 큐레이터의 학력위조 사건이 주목을 받았고, 어떤 연예인은 학력위조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에 의해 부당하게 시달리다 결국 법정 공방까지 가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결국 이 모두는 사회적 지위가 온전한 인격을 완성한다는 사고로부터 초래된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앞세워 자녀교육에 집착하는 이들 모두는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본질적 조건이 아님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의 세태는 끊임없이 이런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
특히 이는 강남 8학군 안에서도 소위 '테남(테헤란로 남쪽)'이라 불리는 대치동, 도곡동, 개포동 등지에서 여실하게 확인된다.
사업가나 자산가 등 전통적인 강남 부유층이 많이 살고 있는 '테북(테헤란로 북쪽, 압구정동, 신사동, 청담동, 논현동, 삼성동 등)'과 달리 자수성가한 전문직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는 테남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자녀 학교성적과 사교육에 매달리는 학부모들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본고장이라 할 수 있다.
▲하버드 입학을 위조한 사실이 드러난 차세리와 아버지 차민혁(김병철 분)의 갈등 장면. |
드라마 'SKY 캐슬'의 극성스러운 학부모들의 모습은 바로 이 지역 학부모들의 모습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드라마 'SKY 캐슬'의 서사가 전달하는 이 '자리'의 이데올로기는 이와 비견되는 교육사상을 전하는 영화 한 편을 상기시킨다.
바로 2014년 흥행작 <킹스맨(Kingman: The Secret Service)>이다. <킹스맨>의 주된 서사는 첩보 액션이라 교육사상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세부서사인 주인공 에그시(태런 에저턴 분)의 성장사 때문에 특정한 인간관과 교육사상을 간간이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사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이다. 영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말이지만, 이 대사는 원래 중세 말엽인 14세기경 영국의 신학자이자 정치가, 그리고 교육자로서 윈체스터 칼리지를 설립한 위컴의 윌리엄(William of Wykeham)이 남긴 말이다. 이 말은 아직까지도 윈체스터 칼리지의 교육 표어로 남아 있다.
영화 속 장면에서는 이 말이 매너, 즉 단순 예절을 중시하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영화 서사 전체 차원에서 보다 넓게 보면 사람됨 자체를 강조하는 말로도 이해될 수 있다.
에그시의 멘토이자 선임 킹스맨 에이전트인 해리(콜린 퍼스 분)는 작중 한심하고 불우한 삶을 살고 있던 에그시를 거울 앞에 세워놓고 말한다. "[거울에] 뭐가 보이지? 난 잠재력 있는 젊은이가 보여... 자기 삶을 통해 무언가 선한 일을 하기 원하는 젊은이가 보여."
즉 해리가 말한 매너란, 원래 위컴의 윌리엄이 의도했던 바와 같이, 온전한 인간됨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온전한 인간됨의 기준은, 이 말을 처음 말한 이가 유명한 신학자였던 까닭에, 당연히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나온다.
기독교적 정신해 입각해 볼 때 매너란 불우한 처지에 처한 이들을 동정할 줄 아는 심성, 그리고 가진 바를 자랑하기보다 자신의 잠재력을 활용해 작게는 타인을 배려하고 크게는 인류와 사회에 봉사하는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 <킹스맨>은 탐욕스러운 악당으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에그시의 성장과 활약을 통해 이를 확증한다.
▲영화 <킹스맨>의 명대사,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이 말은 원래 기독교 신앙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
앞서 약술한 윈십의 견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에드워즈 가문의 업적 가운데서 주목한 것은 그들이 차지한 사회적 지위(학자, 법률가, 정치가, 군인, 목회자, 그리고 의사)가 아니다.
그 지위는 그들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온전한 인간됨의 길을 따라가다가 얻게 된 부수적인 결실에 불과하다. 윈십이 주목한 바는 에드워즈와 그의 후손들이 교회와 사회와 인류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해 자기 삶을 헌신한 바로 그 믿음과 열심이었다.
'SKY 캐슬'에 등장하는 다섯 가족 부모들이 누리고 있는 지위는 사회 중상류층에 속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실제 삶의 모습과 사고방식은, 황치영-이수임 가족을 제외하면 에드워즈 가문이 아닌 쥭스 가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전문지식을 더 많이 갖췄고 눈에 띄는 범법행위를 덜 저질렀을 뿐이다.
한서진이 곽미향이던 시절에 남발했던 말, "아갈머리"는 나머지 네 가족의 인간관과 교육관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저속함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기독교 신앙인들이 'SKY 캐슬'을 통해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바는 다음이 아닐까. "혹시 우리들도 자녀 교육에 있어 '매너'가 아닌 '자리'에 집착하는 세태에 부화뇌동하는 것은 아닌가?"
에드워즈 가문의 교육이 전문지식 주입이 아닌 신앙과 윤리와 인간됨 함양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깊게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명문가(家)를 만드는 건' 확고한 신앙과 그에 바탕을 둔 배려, 봉사, 그리고 헌신의 정신이다.
▲진정한 '명문가를 만드는 건' 무엇일까? |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