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 북한인권 국제포럼 '북한의 박해 실태와 국제사회의 대응,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됐다.
특별히 이 자리엔, 탈북 후 중국 공안의 체포로 강제북송을 2회 경험하고 전거리교화소에 수감되었다가 3번째 탈북에 성공한 기독교인 이영주 씨(44)가 증언자로 나섰다.
1997년 당시 집에서 첫째였던 이 씨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중국으로 탈북을 결심했다. 이 씨는 당시 "참 웃기는 얘기지만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김일성 부자를 한 번도 탓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 씨는 중국으로 돈을 벌러 갔지만 탈북자 신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노래방 도우미'와 '강제 결혼'을 했다고 한다. "중국 내 브로커들에 팔려가 다른 나라의 남자와 살면서 문화적 갈등과 부작용으로 인해 생기는 것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치욕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씨는 중국에서 낳은 아이와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하지만 중국 공안에 잡혀버렸다.
이 씨는 "내가 낳은 딸 아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 슬퍼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보리라 생각했다. 탈북 후 중국에서는 한 끼도 굶은 적 없었는데 감방에서 다른 탈북자들의 눈을 피해 하루 한 끼씩 열흘 간 금식했다. 중국에서 거부감을 가지고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성경을 하나님께서 기억나게 하셨다"고 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 34세. 북송 되어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고 이감될 때마다 전기 곤봉과 나무 의자로 두들겨 맞았다.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다시 중국으로 탈북, 숨죽이며 살았지만 다시 체포됐다.
▲온성 출신, 전거리교화소 수감자 이영주 씨가 증언하고 있다. ⓒ김신의 기자 |
이 씨는 "감금된 일주일 동안 너무 울어서 눈물도 다 말라버렸다"며 "참새로 태어났어도 북송 되지 않을텐데 북송이 죽기보다 싫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눈물을 흘렸다. 이어 "보위부에서 만난, 이마가 깨져 피가 날 정도로 폭행 당한 쳐녀 아이들"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질 위험을 알면서도 식전기도를 하던 아이" "호명 받아 나갔지만 개처럼 질질 끌려온 동료들"에 대해 증언했다.
이 씨는 한국으로 가려고 했다는 조사 기록이 없어 불법월경죄로 처리되었다고 한다. 이후 신의주 보위부 감방에서 단련대로, 다시 전거리교화소로 이송됐다고. 그녀가 간 교화소는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임시 시설이었지만, 탈북자가 많아지면서 1년이 지난 후 수용자가 1,20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이들은 감옥을 만드는 강제 노동에 동원됐다.
이 씨는 "피와 땀으로 지은 새 감방으로 옮기게 됐다. 거기서 중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분들을 만났고, 그때부터 하나님이 기도를 많이 하게 하셨다"며 "비록 하나님을 마음대로 찬양할 수 없지만 감사가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이 씨는 전거리교화소에서 조장과 반장을 맡았고 나중에는 1,200명 죄수들의 하루 세끼를 담당하는 취사 반장까지 맡게 됐다. 그 덕에 수감 생활 동안 은밀하게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생활을 했다고. 그리고 다음과 같이 간증 했다.
"교도소 규정 때문에 마음대로 다른 감방으로 갈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간수들의 눈을 피해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시편 말씀을 암기해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힘을 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두 번 한국행을 가려던 길을 지켜주시고, 온성보위부와 신의주보위부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살아있는 지옥이라고 불리우는 전거리교화소에서 3년 반을 늘 저와 동료들을 지켜주신 주님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지옥 생활이 너무 고달프고 힘들어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중국에 두고 온 딸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서 울고 있을 때도 주님은 늘 내 등 뒤에서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살아서 역사하셨고, 북한에서 주님을 전하라고 저를 그곳으로 보내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하나님과 제일 가까웠고 은혜가 충만했던, 그리고 온 하루를 하나님과 오로지 동행했던 영광의 시간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북한 회령에 있는 전거리 12교화소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복음을 거부하는 마지막 땅 북한에서 태어남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눈물로 저 땅을 위해 마음을 찢어서 기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땅에 온 탈북민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북한 구원의 때를 위하여 예비하신 에스더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간증을 마감하면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지금 이 시간도 복음을 가지고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는 많은 북한의 지하교인들을 위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UN OHCHR(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반인도범죄에 대한 책임 실무팀장 드 미니시스 필리포(Minicis Filippo)는 축사를 통해 "불행하게도 북한 주민들은 인간의 근본적인 권리인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