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존재하는가?', '그 신은 전능자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까?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믿음과 교리에 익숙해 있기에, 믿지 않는 이들에게 명료하게 풀어 설명한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요즘은 쉽지 않다.
책 <붕어빵>은 소설 형식으로 '전능자 담론'을 전개하는 변증서이다. 주인공 '나'가 붕어빵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젊은 부부와 만나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신학적으로는 '신정론(theodicy, 神正論)', 세상의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을 변호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오가는 대화 속에 많은 '신학적 코드'를 숨겨 놓았다.
저자인 황의찬 목사(전주온고을교회)는 오랜 직장생활 후 침신대에서 석사(M.Div.)와 박사(Th.D.) 학위를 취득하고 목회를 하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인 <하나님의 기름부음>과 농아 자녀를 둔 목사 아빠의 참회록 <침묵하지 않는 하나님(이상 CLC)>을 펴냈다. 적지 않은 고난을 경험한 그가 어떻게 '선하신 하나님'을 소설로 변증하게 됐는지 만나봤다.
-책을 쓰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평소 끊임없이 질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았는데, 둘 모두 청각장애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땐 목회하기 전이었기에, 처음엔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러십니까?' 하면서 한때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전에 청년회장도 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말입니다. 저는 7남매로, 동생 둘은 성결교 쪽 목회자입니다. 조카나 친척 중에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우리 자녀들만 둘 다 청각장애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왜 나에게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하고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청각장애 2급이던 둘째 아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6년 반이 됐네요.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께 계속 답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서 답해주지 않으시면 견딜 수 없었고, 성경을 읽으면서도 '나는 저주받았나' 하는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나름대로 늘 민감했고, 하나님께 답을 구하다 보니 저만의 독특한 관점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답을 구하셨는지요.
"신앙의 근간에 대해 질문을 하실 것 같았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그럴 리 없으시다', 이것이 제 믿음입니다. 어느 때부턴가 그런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제 삶의 실존에 비춰, 그렇게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송명희 시인이 '하나님은 공평하다'고 노래했는데, 저도 공감합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세월호 사건, 홀로코스트, 리스본 대지진, 흑사병 때 침묵하셨느냐고요.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느냐고요. 그런 질문에 대해 신학은 갈수록 '전능자가 선하지 않거나, 전능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로 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답은 미흡하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악과 고통 뒤로 은닉하실 때조차 그럴만한 사정이 있고, 그래서 뒷짐을 지고 서 계시지만 오히려 더 가슴 아파하십니다. 그게 제 믿음입니다. 아들을 보낼 때도, 하나님이 저보다 더 가슴 아프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정론을 소설 형태로 풀어내신 것인지요.
"'하나님이 과연 선하신가?'에 대해 제가 받은 나름의 응답을 목회자들 앞에서 꺼내면, 잘 믿질 않았습니다. 박사과정 논문으로 악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교수님들이 반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책에서 밝히는 것처럼 뭐라고 변증을 하고 싶었습니다.
논문으로 쓰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것 같아서, 소설 형태를 택해 각주도 참고도서 목록도 없이 이야기처럼 툭 던져보기로 했습니다. 안 믿는 분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이러한 형식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치받은 사람입니다. 박사과정 세미나를 하면 목사들 5-6명이 함께하는데, 목사님들이 묻습니다. '황 목사님은 왜 그렇게 치받느냐?'고요. 다행히 교수님들은 제 편을 들어주시지요. 아이들이 농인인 이유도, 제 아들이 그렇게 떠난 이유도 저는 하나님께 다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살지,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저주한 게 아니다' 하는 대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하나님이 누구를 저주했다고 써 있으면 귀가 '번쩍'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도 그들을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땅을 저주하고 뱀을 저주하셨을 뿐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그저 징벌을 내리셨지요.
저는 처음 아이들의 장애를 알았을 때, 저주를 받은 줄 알았습니다. 십계명 속에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신다(출 20:5)'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아버지인 저 때문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약에선 또 아니라고 하지요. 그러면 '하나님, 도대체 뭡니까?'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그 답이 이 <붕어빵> 속에 들어 있습니다. '전능자란 이런 분'임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삶 가운데 만난 '좋으신 하나님'은 세상의 악과 고통에 무책임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 허락 없이는 안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문제와 고난에 하나님께서 무책임하시지 않다는 것이 제가 받은 대답입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신학적 주제들을 많이 심어 놓았습니다."
▲붕어빵, 황의찬, CLC, 248쪽, 12,000원. |
-제목은 왜 '붕어빵'인가요.
"첫째로 사람은 '하나님의 붕어빵'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말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붕어빵 아닙니까. 둘째로 전능자 담론을 '붕어빵 포장마차'에서 세 사람이 대화로 풀어나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악과 고통에 대한 질문' 때문입니다. 시편 37편에 '악한 자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7절)'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이 손을 대서 인간들에게 자신의 전능자 됨을 드러내 버린다면, 세상은 '빵틀에서 나온 붕어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책에서 귀류법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능자라면, '악한 자가 형통하고 선한 자가 고난받는 세상'을 보시고 왜 친히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시냐고요? 하나님이 악한 자의 형통을 아예 금지시켰다면, 인간들은 불합리한 것을 하나 하나 끊임없이 하나님에게 제기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들을 다 수정하고 고쳐 주신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럼 결국 자유의지는 무색해지고, 꿀벌이나 개미들의 사회처럼 돼 버릴 것입니다.
이처럼 '붕어빵' 속에는 긍정적·부정적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긍정적 의미는 사람이 하나님의 붕어빵이라는 것이고, 부정적 의미는 신정론에 대한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인간 앞에서 드러내고 손대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이 빵틀에서 나온 붕어빵과 같아진다고 말씀드렸죠. 수많은 사람들이 '나는 왜 장동건처럼 만들지 않으셨나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합리합니다. 자유의지가 없어지고, 사랑도 의미가 사라집니다."
-설령 다 똑같아진다 해도, 모두 행복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인간 사회에서 가장 불합리한 것이 '더러 악한 자가 형통하고 선한 자가 고통받는 일'이겠지요. 사람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불평불만일 것입니다. 말씀드렸듯, 사람들의 불만을 듣고 악한 자의 형통을 금지시킨다면, 모든 것이 다 똑같아질 것입니다. 자유의지 없는 피조물로 전락하는 것이지요.
오직 인간에게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인격적으로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격적 교제란 사랑하고 사랑받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전능자가 자신을 '커밍아웃'하고 인간들을 모두 평준화시켜 버리면, 사랑이 없어집니다. 자유의지를 부여하는 순간, 인간들 속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불가피합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아, 어렵습니다.
"이 책의 주제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전능자가 들지 못하는 바위를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순되는 상황이지요. 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각종 신정론 책을 읽었습니다. 읽어보니, 전능자를 부정하기 위해 개발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많더라고요(웃음).
버트런드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한 신부에게 질문합니다. '전능자라면 네모난 동그라미를 만들 수 있는가?' 기독교인은 여기에 답해야 하는 것이지요. 아까 말씀드린 '전능자라면 들지 못하는 바위를 만들 수 있느냐?'는 중세 때부터 있던 질문입니다.
전능자가 어디 있느냐면서 이런 질문을 할 때,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면 전능자의 전능성은 사라집니다. 전능자 담론이 그냥 깨지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전능자가 자신이 들지 못하는 바위를 만든다? '전능(全能)'이라는 말에는 '전지(全知)'가 포함돼 있는데 중세 때부터 이어진 이런 질문, 피조물이 전능자를 비웃으면서 이러저러한 질문을 할 것도 모를 리 없지 않겠느냐고 하겠지요. 전능자가 자신이 들지 못하는 바위를 애써서 만들지 않으면 비굴한 것이고요. 그렇다고 만들어서 더욱 전능자임을 보여주겠다고 하면, 피조물들이 공감할 수 없겠지요.
전능자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기 프로젝트'를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에게만 '자유의지'를 주시면서 인간을 파트너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려 하십니다. 그런데 '사랑하기'는 전능자가 가장 잘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천지창조입니다. 그리고 '사랑받기'에 있어서는 전능자의 전능함도 쓸모가 없습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 전능자가 '조작'을 한다면, 그것은 인간들이 '조건반사'하는 것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비록 소설로 쓰셨지만, '변증'은 요새 인기가 없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사탄의 궤계라고 생각합니다. 책에는 시장의 '광택약 장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녹슨 냄비를 반짝반짝 닦아서 보여주는데, 사 와서 해 보면 그만큼 안 됩니다.
변증이 인기가 없다는 것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실생활에 적용이 안 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궤계입니다. 소설 첫 부분을 보면, '용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용서가 사후적 행위가 아닌 사전적 행위임을 변증합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실생활에서 누가 용서를 사전적으로 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나름대로 적절하게 변증하려 애를 썼습니다.
사업을 하면 '진상고객'이 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응대 매뉴얼을 만들어놓지 않습니까? 이는 나중 범죄를 미리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가 충분히 사전적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실생활에서 용서를 사후적 행위로만 인식합니다. 그것이 사탄의 궤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2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내 죄를 미리 용서하셨는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입니다. '사전적 행위로서의 용서'입니다.
깊이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용서가 사후적 행위라면 천국 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로마 황제들은 죽음이 임박하면 스스로 곡기를 끊었습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죽기 전 세례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지요. 당시는 세례를 죄 사함으로 인식했기에, 황제는 세례 받고 나서 또 죄를 지으면 천국에 가지 못할까봐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곡기를 거부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까? 나중 범죄를 미리 용서함받지 않고서는 천국에 갈 사람이 없습니다. 용서는 사전적 행위이지요. 책에서 이런 내용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이야기는 반대로, 머리로 이해한다 해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학문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지금처럼 치열한 논란만 될 것이기에, 소설을 통해 툭 던져놓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이 책이 꼭 나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신정론'에 부딪쳐 신앙에서 돌아선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트 어만이라는 침례교 목사이자 신학교 교수도 성경에 '신정론'에 대한 해답이 없다면서 종교학 교수로 노선을 바꿨다고 합니다. 그러나 <붕어빵>을 읽고 나면, 성경에 '대답이 없다'는 말은 안 할 것입니다. 이 책이 절대적이라는 건 아니고,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변증에는 성령의 활동과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성을 통해 전능자에 대해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00% 가능할 순 없겠지만, 그런 부분에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비전이 있으신지요.
"내년이면 64세가 됩니다. 제가 만난 하나님에 대해 힘 닫는 데까지 쓰고 싶습니다. 올해 책을 세 권 썼는데, 앞으로 매년 2권은 쓰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사명인 것 같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붕어빵'입니다(웃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짝퉁, 붕어빵' 이미지와 닮았습니다. 변증 하면 철학과 사상, 신학 같은 무거운 주제였지만, 이렇게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신 것 같습니다.
좀 조심스러운 말씀이지만, 앞으로 쓸 책들은 <붕어빵>의 각주가 될 것입니다. <붕어빵>에서 조금이라도 거론됐던 신학적 주제들을 보충하기 위한 저술을 준비 중입니다. 신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숨겨진 코드를 발견하실 수 있을텐데, 믿지 않는 분들도 읽어야 하기에 꼭꼭 숨겨놓았습니다.
하나만 예를 든다면, '부정신학(否定神學)'이라는 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 아니시다'로 표현하는 것은 가능하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다'고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신학 사조 -편집자 주.) 이를 패러디해서 책 중 '자식은 OOO이라고 말하는 순간 틀렸다'고 한 장면이 나옵니다. 의도적으로 인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인가요.
"우리가 하나님을 '선하다 악하다'고 말하기 전에, 전능자는 '~하다'라는 말이 붙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선을 행할 수도, 악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전능하시니까요.
그러나 '사랑하고 사랑받기 프로젝트'를 계획하신 분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일 때, 사랑은 선이고 그 반대는 악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말이 꼭 틀린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