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 유독 낯선 개념인 페이버(favor)는 우리가 거저 받는 은혜라는 점에서는 은혜와 자비와 비슷하면서도, '하나님이 보시기 좋은 때'에만 우리에게 오는 특별한 선물이라는 점이 다르다. ... 우리가 뭔가 선한 결정을 하기 전까지 '페이버'의 축복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페이버'의 축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면 우리는 결정할 수 있다. 특히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향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자세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심장이식 후 하형록 회장이 1994년 설립한 팀하스(TimHaahs)는 컴퓨터 한 대로 자신의 집 차고에서 시작됐지만, 3개월만에 미국 2위 신용카드 회사가 첫 고객이 됐고 4개월 후 템플 대학병원 주차 빌딩 설계라는 큰 프로젝트를 맡았다. "우리처럼 작은 회사가 이뤄낸 일이라고는 사장인 나조차 믿기지가 않았다."
팀하스는 이때부터 승승장구해서 5년간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회사가 됐고, 지금은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주차 빌딩 설계 회사다. 이런 성공 덕분에 그는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을 거쳐 종신직인 국립건축과학원 위원이 됐다.
하형록 회장은 이렇듯 기적의 바람을 타고 수직 성장한 비결에 대해 "'이웃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훈을 걸고 출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 하나님의 '페이버'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책 《페이버》에는 그가 경험한 '페이버'와 그 바탕이 된 '이웃 사랑', 특히 눈앞의 이익보다는 '사람'을 중시했던 경영 사례들이 가득하다.
-《페이버》 전에 《P31》로 널리 알려지셨는데요.
"미국에서 《P31》을 주제로 강연을 하는데, 세계 선교의 마무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제까지 신학교에서는 오직 목사와 선교사, 두 부류만 양육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미국에서는 신학생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어마어마한 학교들이 문을 닫았고, 그나마 괜찮은 신학교들도 경제적으로 힘듭니다. 그 말은 앞으로 신앙인들도 어마어마하게 줄어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유럽처럼 돼 버릴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 '땅끝까지' 전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교회나 신학교에서 '땅끝'을 어디로 여겼습니까? 미국이라면 예전의 한국,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못 사는 나라로 선교하러 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땅끝까지 가기 위해 지나가는 나라입니다. 지구는 둥그니까요.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시작한다면, 끝은 다시 자기가 서 있는 곳이 됩니다. 진짜 선교할 곳은 바로 내가 서 있는 곳입니다.
한국이 이렇게 부흥하고 외국으로 선교도 많이 나갔지만, 미국처럼 흔들리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제일 선교가 필요한 곳이 한국, 그리고 미국, 유럽 아닐까요? 한국이 기독교를 계속 지탱해 나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한국이 미국처럼, 유럽처럼 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미국까지 넘어가 버리면, 기독교를 자유롭게 믿을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캐나다는 벌써 넘어갔고, 아프리카는 아직까지 정치가 불안하고 기독교는 힘이 약합니다. 부흥하고 있다지만 남미는 가톨릭이 주류이지요.
그래서 한국이 앞으로 선교에 있어 큰 일을 해야 합니다. 미국과 한국을 분석해 봤는데, 미국에서는 일터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불법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직 불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봤을 때, 5년 내에 미국처럼 법이 바뀔 수 있습니다. 요즘 각 개인들의 발언권이 세지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 중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미국처럼 바뀌게 됩니다. 회사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나 파티를 하지 말 것, 크리스마스 카드도 보내지 말 것.... 이렇게 가다가 세월이 지나면 다음 세대들은 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사회에서는 전혀 분리된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방지하려면,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에서 '일터에서 믿는 사람들이 정직하게 일하세요' 정도로는 안 됩니다. 크고 작은 회사를 바꾸고 나아가이 사회를 바꾸려면 우리의 일터가 어디든 《P31》에 나온것처럼 담대하게 말씀 중심으로 일해야 합니다. 물론 설교할 순 없으니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특히 회사의 책임자 위치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의 희생이 있더라도 깨끗한 곳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좋게 보실 것입니다."
-미국도 그 정도인가요.
"미국에 살다 보니, 미래에 기독교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 많습니다. 기독교를 오늘날에 이르게 했던 그 어마어마한 유럽이 지금 넘어지지 않았습니까. 우리 부모 세대들이 부른 찬송가 중 90%가 유럽에서 나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영국과 독일인데, 그 두 나라는 지금 예수님을 모릅니다. 프랑스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EU 체제가 되면서 더욱 하나님을 멀리 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보수적 신앙인들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많이 떠났습니다. 그래서 1950-60년대 들어 미국 신학교들이 살아났습니다. 미국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나왔습니다. 그 이전만 해도 신학을 위해 유학하려면 네덜란드나 영국으로 갔지만, 1960년대 말부터는 미국으로 향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미국이 기독교 정신을 떠받치고 있었는데, 1990년대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치가들이 만든 소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 때문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을 위해, 믿는 사람들이 너무 기독교 신앙을 드러내지 말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사회에서 받아들여졌고, 그 이후 오늘날 유럽이 넘어지던 당시의 상태까지 와 있습니다.
미국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200년 전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미션스쿨이 아니라도 졸업식에선 꼭 동네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지요. 20년 전만 해도 성탄 시즌이 되면 길가에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가 넘쳤습니다. 그것도 강제로 못하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은 동성결혼까지 법적으로 허용돼 성도로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복안이 있으신지요.
"《P31》이 그해 종교서적 전체 중 가장 많이 팔렸다고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초청을 많이 해 주셨고, CBMC(한국기독실업인회)에도 갔습니다. 《P31》 때문에 초청받았지만, 두 번째 심장이식 후 한국에서 설교할 때마다 결론 부분에 이 이야기를 합니다. 눈물바다가 됩니다.
《P31》을 읽은 30-40대들이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살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하는 피드백을 줬습니다. 지금 다니는 큰 회사에서는 하기 힘드니, 나와서 뜻있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목회와 비즈니스를 하게 하셨고, 미국 정부 건축 분야 이사로 있게 하셨습니다. 관심 분야는 아니었지만 부르심이 있어 신학교에서도 10년간 이사로 있었습니다. 언젠가 이 모두를 종합적으로 엮어서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서 '일터 선교사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방문길에 사랑의교회 특별새벽기도회(특새) 설교를 부탁받았는데, 주제가 선교였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40분간 나눴더니, 오정현 목사님이 올라오셔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국교회가 메가처치가 되면서 학교부터 유치원, 제자훈련, 신학교까지 모든 것을 교회 안에 다 도입했다. 교회 안으로 사람을 모으기만 했는데, 이제 우리가 밖으로 나가야겠다. 일터 선교사가 될 사람 일어서라.' 7,800명 중 4,000여명이 일어났습니다. 목사님도,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일터 선교사 프로그램은 제가 이사로 있는 신학교(Biblical Theological Seminary, BTS)의 기본 과목들을 교회에서 가르쳐, '일터 선교사'로 파송하는 시스템입니다. 사랑의교회에서는 10개월간 준비해서 지난해 6월 첫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1천명이 이수하고 있습니다. 과목은 5개입니다. 현재 3개 과목이 끝났고, 내년 6월쯤 대규모 졸업식을 통해 파송할 예정입니다.
장로도 집사도 좋지만, 선교사 타이틀을 주고 안수해서 일터로 파송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책임감이 생기고 일터에서 엉뚱한 짓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믿게 될테니까요. 일단 사랑의교회를 파일럿으로 진행한 뒤, 경과를 보고 참여할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형록 회장이 쓴 《페이버》와 《P31》에는 '성경적 비즈니스'의 원리와 사례가 들어있다. 그는 첫 심장이식 전 병원에서 읽었던 잠언 31장을 비즈니스에 그대로 적용했다. 특히 31장 20절,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She opens her arms to the poor and extends her hands th the needy)'에 의거해 '우리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We exist to help those in need)'는 경영철학을 정립했다.
그는 "비즈니스와 신앙은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P31》에서 △고귀한 성품을 가진 회사(10절) △상처를 주지 않는 회사(12절) △다 함께 뛰는 회사(17절) △주인이 솔선수범하는 회사(19절) △높은 목적을 가진 회사(20절) △고객의 성공을 돕는 회사(23절) △엑스트라 마일(고객이 기대하지 않는 일)을 실천하는 회사(24절) △가족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회사(28-29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회사(30절) 등을 모토로 삼고 있다.
-어떤 과목을 배우게 되는지요.
"사례가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P31》로 시작합니다. 일터 선교사란 어떤 것인지, 사례 중심으로 보여줍니다. 《P31》에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이후 선교신학, 구약에서의 선교, 신약에서의 선교 등을 배웁니다. 마지막 과목은 오 목사님이 직접 제자훈련을 실시합니다. 1년에 5과목 15학점을 이수하게 됩니다. BTS에서 졸업식을 주관하게 되고, 이수자들은 석사학위 진학시 이 5과목을 인정해 주기로 했습니다.
신학교에서도 전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목회만 할 사람을 양육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자비량 사역자들을 모집해야 합니다. 일을 하면서 말씀을 전할 사람을 길러야 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개혁(reformation)으로 평가받지 않을까요.
물론 이것은 훗날 학자들이 결정할 일이지만, 성령님이 목회자로부터 성도에게로 이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처음에는 제자에게, 다음에는 목회자에게 갔고, 이제 성도들에게 가게 되면 다시 한 번 부흥이 일어나고, 그렇게 되면 사회가 바뀌지 않을까요? 목회자들만 일하면 교회는 부흥할 수 있지만, 사회는 부흥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성도들 중 300만명만 일터 선교사로 키워낸다면, 한국 직장인이 2,500만여명이니 1/10 정도 됩니다. 십분의 일이면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일터 선교사가 되어 자격증을 받은 분들이 회사에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회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비록 직장인이지만 1/10 정도가 된다면 한데 뭉쳐서 반대를 하든 저항을 하든 의견을 내든 해서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기독교인이 전 국민의 25%라고 하지만, 단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은 비즈니스 미션이 '화두'입니다.
"다른 교회나 교파에서도 일터 사역자들을 키워내려 하시기 때문에, 함께한다면 결과가 더 좋을 것입니다. 지금도 직장인들에게 '일터 사역자로서 제대로 해 보라'고 권면하지만, 잘 안 됩니다. 이는 '가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한국에선 주어진 명칭이 있을 때 책임의식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눈치 사회이기도 하니까요. 한국적 정서를 맞춰 주려면, 절차를 밟아서 교회에서 인정해 줘야 합니다. 집사든 장로든 다 선교사로 임명하면 책임감이 생기고, 회사에서도 그렇게 행동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회 분위기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5년 전 비즈니스 미션(BaM) 컨퍼런스에 갔었는데, 3천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2년 전에 다시 갔더니 9백명으로 줄었습니다. 가르쳐서 하려고 하는데, 처음에 열심히 하다가 안 된다고 포기한답니다. 의지는 있는데, 실천이 약한 부분이지요. 사회에서 일하다 보니 휩쓸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더욱 '일터 선교사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신학교 공부를 시켜서 사회에 나가도 흔들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한국에선 그냥 '가서 하라'고만 하면 잘 안 합니다."
-마지막으로, 비전이 있으시다면.
"개인적인 비전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일터 선교사 양성이 확산돼 미국에 있는 좋은 신학교들을 다 살려내고, 한국 신학교들도 살려내 한국 사회를 다시 하나님 앞에 재생시키고, 미국도 그렇게 돼 한국과 미국이 회복된다면 유럽을 회복시키고 싶다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하형록 회장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도 '이웃'이라는 페이버의 씨앗을 마음속에 심기 바란다. 그리고 '이웃 사랑'의 방법을 싹 틔우기 바란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이웃 사랑'의 나무를 키우기 위해 땀 흘리기 바란다. 그러면 내가 경험한 이 놀라운 '페이버'의 열매가 당신의 삶을 풍성하게 채울 것이다. ... 참희생이 승리의 지름길이듯,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아서 주신 '페이버'야말로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 즉 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