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정의(Justice in Love)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 홍종락 역 | IVP | 520쪽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 1932년 1월 21일-)를 처음 만난 때는 2010년 11월이었다. 당시 철학이나 신학에 무지했기에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가 매우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 지적 깊이만큼이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를 통해 추상적인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더욱 구체화되고 명료화되었다. 사회 곳곳의 부조리와 구조악에 관심이 많으신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깨달았으며, 그러한 죄와 소외로부터 자신과의 연합을 꿈꾸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월터스토프는 앨빈 플란팅가(Alvin Plantinga)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철학자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과 미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30년간 모교인 칼빈 칼리지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의 학문적 경력은 세계적 명성이 있는 두 강좌에 연이어 초빙된 것에서 절정을 이룬다. 첫째는 옥스퍼드 대학의 와일드(Wilde) 강좌(1993-94)였고, 다음 해엔 인문 과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스코틀랜드 성 앤드류 대학의 기포드(Gifford) 강좌(1994-95) 연사로 선발됐다.
그는 분석 철학 전통에 서 있으며, 미학과 인식론, 그리고 해석학을 섭렵하고 사회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특별히 월터스토프의 철학은 전통과 현실의 대화를 기본 골격으로 하며, 실천과 이론을 조화를 모색한다.
'정의'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83년에 출간된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Until Justice and Peace Embrace, Ivp 역간)>로부터, 2008년에 《Justice: Rights and Wrongs》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사랑과 정의》서문에서도 밝히지만, 앞의 책 《정의(Justice: Rights and Wrongs)》의 집필을 계획하면서 정의와 사랑의 관계를 논하기 위해 한 장 정도의 분량을 할애하려 했으나 한권의 책이 필요함을 느꼈고, 2011년 《사랑과 정의》를 집필하게 된다. 2013년 그는 정의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과 과정을 보여주는 자전적인 책 《하나님의 정의(Journey towards Justice, 복있는사람 역간)》를 낸다.
《사랑과 정의》에서 저자는 정의와 사랑이 긴장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 명령을 잘못 이해한 것에 기인했다고 밝힌다. 따라서 그의 목적은 이러한 사랑과 정의의 명령을 이해하는 올바른 길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저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
서론에서 그는 안녕 증진의 세 가지 규칙을 말한다. 그것은 곧 이기주의, 행복주의, 공리주의다. 이러한 규칙의 특징을 제시하면서 그는 각 관점에 대해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 뒤에 대안으로서 '아가페주의'를 제시한다. '아가페주의'는 많은 사상가들이 주목하지는진 않았다. 월터스토프는 이 운동의 탁월한 구성원으로 키에르케고어(Søren Aabye Kierkegaard)와 함께 니그렌(Ander Nygren)과 칼 바르트(Karl Barth),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폴 램지(Paul Ramsey)를 꼽는다.
아가페 사랑은 무엇인가?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4권의 두번째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In agape-love a man gives himself to the other with no expectation of a return, in a pure venture, even at the risk of ingratitude, of his refusal to make a response of love, which would be a denial of his humanity."
결국 아가페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니그렌은 아가페 사랑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불어넣어져야만 가능하다고 말하며, 키에르케고어는 아가페 사랑을 우리의 의무로 생각할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월터스토프는 '아가페주의'의 기여를 많은 부분 인정한다. 하지만 '아가페주의'를 주장한 많은 신학자들이 사랑과 정의를 뚜렷하게 대립시키고 분리시키려 했던 부분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
특히 그는 니그렌이 말하는, 정의를 배제시키는 아가페 사랑에 반대한다. 또한 니버가 말하는 아가페 사랑과 정의의 충돌이 일어날 때, 현실적으로 사랑보다는 정의를 선택해야 한다는 관점도 비판한다.
저자는 오히려 사랑을 자비로 해석하는 고전적 아가페주의의 대안으로, 배려(care)로서 사랑의 개념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사랑 가운데 행하는 정의'이며, '정의 가운데 행하는 사랑'이다.
그는 논증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기존 철학과 신학에서 보여주는 한계점을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3부와 4부에서 용서와 칭의의 문제를 다룬다. 이 지점은 책이 보여주는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는 로마서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라이트(N. T. Wright)를 중심으로 하는 새관점 학파와 유사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풀어낸다.
그는 로마서에서 다루는 것은 정의의 문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존재 자체를 받아주셨고, 우리의 죄과를 묻지 않으시고 용서해 주셨다. 이것이 곧 '정의'이며, '칭의'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정하다. 월터스토프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정의로운 사랑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월터스토프의 정의와 사랑에 대한 관점이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의 관점과 유사함을 보게 되었다. 볼프 또한 그의 책 《베풂과 용서》에서 용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배제와 포용》에서는 배제와 포용의 관계를 통해 정의와 사랑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그는 《배제와 포용》 3장에서 용서는 정의를 긍정한다고 말했다.
책의 추천사에서 볼프는 아주 짧게 그의 책을 추천한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자신의 권위 있는 전작 《정의》의 논의를 잇는 《사랑과 정의》를 통해 정의의 진정한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철학과 신학의 개념을 오가며 논의가 진행되기에 다소 어려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천천히 정독해 나가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모호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한 확실한 정리와 함께, 새롭게 고민하고 해석해야 할 지점들을 보게 된다.
우리의 신앙은 명제적이며 추상적인 차원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내세적이며 개인적인 구원으로 만족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신앙은 더욱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실천적이며 현실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더욱 편만하게 사회와 세상을 품을 수 있어야한다.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서 핵심적인 '사랑과 정의'의 문제에 새롭게 관심을 갖고 정리해 보려는 독자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중현 크리스찬북뉴스 명예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