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은 오늘 이혼서류를 넣고 왔다고 하면서, 너무나 두렵고 무섭다고 했습니다. 고령에 또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수술을 받을지 말지 고민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이티에 가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동네마다 넘쳐 납니다. 맥도날드나 스타벅스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가는 마을마다 고아원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삐쩍 마르고 힘이 없어 축 늘어진 그 아이들을 보면 하루 하루가 얼마나 힘들까 가슴이 먹먹해지곤 합니다. 아들이 사업에 실패하자 자살했고 남은 딸들을 생각하며,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만 슬픔을 삭이며 살고 있는 어머니도 있습니다.
갈등이 없고, 싸우지 않아도 되고, 고통받을 일이 없는, 그런 직장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인간관계든 사랑의 기쁨만큼 사랑의 슬픔이 공존합니다. 어느 도시건 밝은 면 뒤에 그 밝기만한 어두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좋은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그 사람에게도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밝고 따뜻한 사람에게도 인생의 무거운 짐이 숨겨져 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삶의 양면성 아닌가 싶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다고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왜냐하면 삶에는 힘들었던 시간만큼 행복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고, 고통의 무게만큼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아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고통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본심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 당할 때 가장 가슴 아파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를 불쌍하게 느끼시는 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본심이 아니다." (애 3:32-33. 새번역).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고통스런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 주셨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마 9:35-36)
그렇다면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이 고통스런 삶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셉은 왜 자신이 형들에게 미움받고 버림받아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고, 또한 억울한 감옥살이를 해야 했는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어느 순간이 되자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깨달아졌고, 감사하게 느꼈습니다(창45:7). 두번째, 나보다 먼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고통을 통해 전달하실 때가 있습니다. 일이 잘되고 성공하는 것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실패와 고통을 통해서 사랑을 표현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실망, 좌절을 겪더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이 유익이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소망을 잃지 마세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롬8:18)
[이기범 칼럼]사는 것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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