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까지 11년째 '6.25 참전용사 보은행사'를 열고 있는 배경과 목회에 대한 생각 등을 진솔하게 털어놨다.
소 목사는 먼저 보은행사를 처음 갖게 된 계기에 대해 "2006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마틴 루서 킹 퍼레이드' 전야제에 참석했을 때, 한 흑인 노병(老兵)이 '동두천, 의정부, 평택' 하며 허리춤을 풀어 총상(銃傷) 자국을 보여줬다"며 "(그러면서 그가) '그 뒤로 한국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게 무슨 뜻이겠나. 순간 눈물이라기보다 내 동공(瞳孔)에 이슬이 촉촉해졌다. 넙죽 엎드려 큰절을 하고는 '한국에 초청하겠다. 친구들과 같이 와도 좋다'고 했다. 당장 이듬해 6월에 추진했다. 10명쯤 올 줄 알았는데 40명이 신청했다"고 했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선 "그해 7월 북한 대포동 2호 미사일 시험 발사로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 워싱턴에서 미 예비역 장성과 백악관 직원들 모임에서 설교할 기회가 있었다"며 "참석자들이 설교 내용에 대해선 질문하지 않고 '시위대가 성조기를 불태우고 짓밟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 한국은 왜 미국을 미워하느냐'라고 물었다. 그전에 TV 뉴스로 '효순·미선이 사건 시위'를 본 것 같았다. 제가 '당신들이 자유민주주의의 꽃씨를 뿌렸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라서 친미도 반미도 있는 거다. 시위대만이 한국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흘렀던 피와 땀을 잊지 않는다. 매년 참전 용사를 초청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북한을 방문했던 소감도 전했다. 그는 "어려운 형편엔 눈물지었지만, 평양의 창광유치원을 갔을 때 아이들을 주체사상으로 세뇌시키는 실상을 봤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통일 한국을 대비해 인재를 양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북한을 다녀온 뒤 교육관·문화관 시설을 갖춘 지금의 교회를 짓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소 목사는 이후 자신의 교회 개척 과정을 돌오보기도 했는데, 특히 신문을 배달했던 것에 대해 "(전도를 해야 하는데) 아파트에 경비가 있어 함부로 들어갈 수가 있나? 그래서 신문 배달을 했다"며 "신문을 안 보는 집까지 교회 전단을 집어넣었다. 색다른 글귀나 내용으로 눈길을 끌었다. 신도를 모으는 데 효과가 있었다. 교인 수가 50명쯤 됐을 때는 경로잔치를 열었다"고 했다.
또 그는 자신의 목회를 '엿장수 목회'라고 했다. 소 목사는 "설교의 언어와 제스처는 정형화돼 있다. 하지만 지금은 권위와 제도가 파괴되고 스토리 텔링, 공감 능력, 감성 등이 더 중요하다"며 "목회자의 격조, 우아함에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과거의 설교였다면, 앞으로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광대 역(役)을 맡게 된다고 본다"고 했다.
목회 철학에 대해서는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거다. 인간이 주인이 되면 교회 세습을 하게 된다. 제가 카리스마가 있다는 말을 듣지만, 그럴수록 도덕성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하루아침에 망한다. 교회의 모든 일은 장로회의의 절차와 과정을 거쳐 투명하게 한다. 저나 우리 교회 직원들은 세금을 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