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으로 인해, 지난 몇 달 대한민국이 아팠습니다. 지금도 아프고, 또 얼마간은 계속 아파야 할 것 같습니다. 탄핵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나라를 사랑한다며 이런 저런 말들을 하지만 대부분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이야기일 뿐, 정치인들이 논하는 옳고 그름의 문제들은 사실 그들의 이기적 집권욕의 표출일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아픈 것은, 그런 세속 정치인들의 집권욕으로 인하여 조국 대한민국이 갈래갈래 쪼개지고 있는 현실을 보는 것입니다.
요즘 두세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 저기서 받은 카톡 내용을 보여주며 "아니 이럴 수가 있어~"라며 분노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입장과 다른 내용의 문자를 받으면 요즘 언론이 타락했다고 분개합니다. 정말 그런 것일까요? 내 입장과 같으면 바른 것이고 내 입장과 다르면 악한 것일까요? 오늘날과 같은 민족적 암흑기를 통과하면서 우리가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 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하나는 보수 쪽에서 볼 때 '종북 좌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진보 쪽에서 볼 때 '수구 꼴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보수는 자기들과 좀 다른 사람들을 싸잡아 종북 좌빨이라 부르고 진보는 자기들과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수구 꼴통이라고 부릅니다.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 설 곳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 "애매한 중도가 세상을 망친다." "애초에 중도는 없다." 중도를 이념적 기회주의로 보는 사람들의 말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이면 중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 중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세상의 편중된 입장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디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속하여 때론 계층과 지역간의 벽을 허물고, 때론 갈래 갈래 찢겨진 민족 공동체의 상처를 싸매어 주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민중 시인 김지하의 시로 만든 흔히 말하는 '데모곡'으로 1970년대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노래입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 타는 목마름으로 / 민주주의여 만세..." 젊은 시절, 고문을 무릅쓰면서까지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시인 김지하, 그러나 그에게 더 이상 그런 타는 목마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1991년 초 학생 운동권을 향해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고 말했다가 변절자로 낙인 찍혀버린 그의 그림자 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무엇을 목말라 하십니까? 보수 혹은 진보를 향한 타는 목마름이 여러분들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타는 목마름이 여러분들을 이끄시는 힘이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목이 말라 죽어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생수를 나누어 주고, 찢기고 쪼개진 대한민국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하고 싸맬 수 있는 우리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