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망의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찬연하게 밝았습니다. 희망찬 새해를 맞이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미주지역뿐만 아니라 온누리에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정유년 새해를 맞이하여 신년사를 유대인들의 설날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에 대한 소개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히브리어 로쉬는 ‘머리’라는 뜻이고, ‘하샤나’는 ‘해’라는 뜻입니다. 풀이하자면 한 해의 머리가 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이 절기는 유대의 종교력으로 티쉬리(Tishri)월 첫 날 시작됩니다. 우리 달력으로는 9월 말이나 10월 초에 해당하는데, 이때를 새해로 잡은 까닭은 탈무드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때가 바로 티쉬리월입니다. 로쉬 하샤나는 우리 인생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짚어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삶을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절기입니다.
유대인들은 신년 축제 첫날에 이삭의 탄생 이야기가 기록된 창세기 21장을 읽는다고 합니다. ‘이삭’이란 이름의 뜻은 ‘웃음’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생물학적으로 바랄 수 없는 중에 얻은 아들이기에 너무나 큰 축복이요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신년 축제에 이삭 탄생 이야기를 읽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일 년 내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염원하는 태도와 하나님의 약속은 더디더라도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서 새해를 시작하려는 그들의 신실한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년 축제의 둘째 날에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쳐야 하는 극적인 위기의 이야기가 기록된 창세기 22장을 읽습니다. 왜 그들은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루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가장 큰 슬픔과 위기가 기록된 두 본문을 동시에 읽을까요? 백세에 얻는 아들 이삭과 더불어 아브라함은 기쁨의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대를 이을 혈통이 끊어져 웃음이 사라진 가문에 모처럼 맛보는 넉넉한 행복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백세에 얻은 사랑하는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는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낯설고 무섭고 잔인한 하나님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순종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첫째 날과 둘째 날에 차례대로 이삭의 탄생과 그의 희생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유대인들의 태도에는 인생이 직면하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그들은 극적 반전도 있고, 무수한 희비의 교차도 있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거듭 반복되는 것이 인생임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 것입니다. 우리가 듣기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만수무강, 만사형통의 꿈이 언제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기치 않은 어려움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흔들리는 경험을 할 때도 있습니다. 나무는 흔들림 없이는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없고, 줄기를 높이 뻗을 수 없습니다. 의심의 바람으로 흔들리는 과정은 강한 믿음으로 채워 우뚝 서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입니다. 이러한 치열한 몸부림 없이 급조된 신앙은 낯선 영혼을 품은 몸과 같습니다. 전도서 3장에서 지혜자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고,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고,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고 한 것처럼, 그것이 인생의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이 2017년 새해에도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러나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진지하게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통과 절망의 자리에서도, 우리가 직면하는 낯선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고국이 안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채 우리는 2017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현실이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양극화뿐만 아니라 인종갈등과 정치적 혼란과 종교적 분쟁도 여전히 공존하고 있습니다. 테러의 위협도 세계 시민이 여전히 느끼는 현실적 불안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 지표를 통해 이대로 가면 한인교회가 1세 교회로 단명(短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낍니다. 이기적 개교회주의와 화합하지 못하는 교계의 현실로는 거칠고 도도한 세속화의 물결을 막을 수 없다는 자괴감(自壞感)도 듭니다. 바벨탑과도 같이 신적 영역을 넘보는 과학기술문명으로 무장한 다음 세대가 복음에서 더욱 더 멀어질 것 같은 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꿈꿉니다. 우리는 이 세대뿐만 아니라 오고오는 세대를 붙잡고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떨고 있는 우리에게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 우리의 위로와 희망의 근거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숫양 한마리로 이삭대신 번제물을 바친 아브라함이 그런 극적 반전이 가져다준 하나님의 은혜와 궁극적 기쁨을 맛본 것럼, 우리와 인간 역사의 희망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과 희망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희생적 결단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많은 어려움과 과제 속에서 2017년을 맞이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믿음과 기도가 절실할 때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한인교회와 우리가 삶의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한인사회와 미국이 복음의 근간을 붙잡고 씨름하여 더욱 도약할 수 있는 새해가 되길 기도합니다.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함으로 2017년 새해를 살아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로 하나님께 드리는 복된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또한 여러분 모두의 범사와 하시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