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10)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기독교인들이 십일조를 완전히 이해하고 자유롭게 드리기까지 오랫동안 도전이 되어왔다"면서 "일부 기독교인들은 더 많이 낼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은 적게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들은 우리가 이같은 원칙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신 것으로 다음 2가지의 목적을 갖고 있다. 첫째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집을 위한 모금이며, 둘째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히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시험하시고, 그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하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율법과 동일한 법 아래 있진 않지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용됐던 원칙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변함이 없이 적용된다. 그 원칙 가운데 하나는 '관용'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 십일조와 말라기 3장 10절과 관련해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몇 가지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많이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찾으려고 했다.
말라기의 전체 말씀은 실제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있었던 언쟁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를 변호하려 한다.
말라기 3장 8절에서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을 변호하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관련한 그들의 불의를 증명하고 계신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엇이 옳은 지를 알고자 해서가 아니라 단지 돈을 움켜쥐고 싶기 때문인 경우가 있다.
△하나님께서 돈을 얻지 못해 분노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가장 슬프게 한 것은 사람들이 돈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마음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6장 21절에는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돈이 아니라 우리와의 신뢰 관계에 있으며 이는 재물을 넘어서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100% 온전히 신뢰하시며 우리에게 다만 10%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관용을 요구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십일조에 대해 언급하신 것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이다.
레위기 27장 30절 말씀에는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그 십분의 일은 야훼의 것이니 '야훼의 성물'"이라고 돼 있다.
바울 사도 역시 관용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십일조에 대해 직접 말하진 않았으나, 희생적인 내어놓음에 대해 언급하고 이를 격려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8장 3절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라고, 8장 4절에도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