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유교적 전통에 의해 사회적 신분 계급이 뚜렷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계급이 그것이다. 선비는 존대를 받고 기술자나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천시하거나 하대했다. 더구나 천민 계급, 그 중 노비나 백정들이 인간 이하의 대접을 하고 있었던 것은 두말 할 필요 없다. 노비는 일종의 재산으로 취급돼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이었는데, 당시 노비 1인 값은 말 한 필 값 정도밖에 안 됐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결코 차등을 두시거나 계급을 두시지 않았고 평등하게 창조하셨다는 점을 교회는 강조했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이루어 낸 사회개혁 중, 인간평등을 위해 애쓴 것만큼 큰 공헌을 한 것도 없다. 버려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돌봄은 고아, 병자, 신체장애인, 노약자 등에 적극적 구호활동을 펴게 했고, 그들을 위한 사업에 최대의 노력을 경주했다.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 때에 조정은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를 설치하고 23개 조항 개혁안을 발표했는데 이 조항 가운데, - 문벌 반상(班常) 등급을 없애며 문벌 등에 구애하지 말고 인재를 뽑아 쓴다. - 공·사 노비의 법전을 혁파하고 그들의 매매 행위를 금한다. - 역인(役人), 창우(倡優), 피공(皮工)도 모두 면천(免賤)을 허용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따라서 노비제도나 백정들에 대한 차별이 법적으로는 철폐했으나, 실제 아주 미흡한 것을 교회가 앞장서서 이들에 대한 전도를 강화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천대받던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나오는 일이 잦았다.
특히 당시 사회에서 가장 천대 받던 백정들에게 교회는 관심을 갖고 인간 대접을 받게 하고 그들 해방을 앞장 서 고취했다. 오랫동안 불교문화에 젖어 있던 한국 사회는 불가에서 살생을 금하는 규율을 어기고 짐승을 잡는 백정들을 멸시하고 천대했다., 이런 시각은 육 고기를 다루는 사람들까지 연장됐다. 고종황제의 시의(侍醫) 에비슨(O.R.Avison)이 선교사 무어(S.F.Moore)가 목회하던 곤당골교회(현재 승동교회)에 출석하던 백정이 장질부사에 걸려 고생하고 있을 때 직접 가서 치료해 준 일이 있었다. 황제를 치료하는 의사가 백정 집에 가서 백정을 치료했다는 사실은 당시 상황으로는가히 혁명적 사건이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백정들도 일반인들과 같이 갓을 쓸 수 있게 됐고, 나중에는 호적까지 갖게 돼 명실 공히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됐다. 이런 일들은 교회가 여러 모로 우리 사회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차별 문화와 계급사회 척결을 위해 노력한 공로였다고 평가된다.
1894년 갑오경장 때 전통적인 노비제도가 철폐된 것도 선교사들의 공헌이었다. 에비슨은 당시의 내무대신 유길준(兪吉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 보냈다. “내무대신 각하, 한국의 백정들이 극히 하잘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환기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들은 비록 유능한 사람들이고 지능이 남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 해도 이들에게 한국에서 남자의 상징인 상투를 틀고 갓을 쓰는 영예로운 관습이 허용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정 내에 도량이 넓고 진보적인 인사가 많은 차제에 감히 이런 상황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것은 한국에 있는 모든 외국인들의 생각이며 오랫동안 고난을 받아온 백정들에게 정의로운 조처가 취해진다면 우리 모두 크게 기뻐할 것임을 밝혀 두는 바입니다. 선처를 바랍니다.”
이 편지를 받은 유길준은 즉시 전국에 “지금부터 백정들은 사람으로 간주한다. 이에 따라 백정들은 한국 남자들의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상투를 틀고 갓을 쓸 수 있다.”라는 내용의 법령을 공포하고 백정 차별 정책을 철폐했다. 백정이 사람대접을 받는 세상이 도래된 것이다.
백정뿐만 아니라 갖신(皮靴), 즉 가죽신을 만드는 갖바치와 숯장수, 광대, 무당 등도 이 천민 계급에 속했다. 서울 연동교회의 장로였던 고찬익(高燦益)과 임공진(林公鎭)은 갖바치와 광대 출신들이요, 후일 상동교회 목사요 애국지사였던 전덕기(全德基)는 숯장수 출신이었다. 1903년 감리교 연회록에서는 노예 사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해 놓았다. 1. 교인은 노예를 소유할 수 없으며 어떤 방법으로든지 노예제도를 교사(敎唆)해서는 안 된다. 2. 만일 노예를 소유하고 있다면, 그를 해방해 주도록 지시한다. 3. 과부를 매매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죄악이다. 그런 범죄에 참가한 교인은 심의를 거쳐 처벌받아야 한다.
예수를 믿고 만민 평등사상을 실천한 예로 자기 종을 해방시킨 기사를 「그리스도신문」에서 아래와 같이 보도한 일이 있었다. “우리 교인은 마귀의 종을 벗어나서 노임을 엇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엇으니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동류를 종으로 부려 짐승같이 대접함이 올치 아니한 줄을 만히 깨달른지라…순안 박인시 씨는 그 종을 속량하야 딸을 삼았고, 평양 서촌 창마을 사는 리씨는 주를 밋기 전에 일개 비자를 천 여금을 주고 사다가 부리더니 자긔가 죄에서 속랑하고 은혜로 하나님의 딸이 됨을 깨닷고 그 종과 하는 말이, “내가 지금 주께 기도할 때와 성경 말슴을 생각 할 때마다 너를 종으로 두는 거시 늘 마음에 불안하고 다시 팔자 한즉 인생을 참아 짐승과 같이 매매하는 거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뜻에 합당치 아니한즉 오늘부터 너를 속량한다.”하고 문셔를 내어 소화하고 친딸 갓치 사랑한다 하니 이 세상 사람의 동류를 종으로 부리는 사람에게 비하면 깁게 생각하고 넓게 사랑함이 몃백 층이 놉흔지라 그윽히 착한 마음 생긴 거슬 궁구하면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씨를 밋고 사람을 사랑하는 대로부터 나온 거시니 이런 거룩한 일을 우리나라 이천만 동포들이 마귀와 사람의 종을 속량할 본이 될 터이니 입으로만 사랑하고 모양으로만 개화한 사람의 마음을 곳치기를 바라나이다.”
기독교 신앙은 과거의 잘못된 사회관습이나 전통을 혁신하는 큰 힘을 갖고 있음을 이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가는 곳마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장벽을 모두 허무는 역사를 똑똑히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