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만 해도 찌는 듯 불덩이 같은 더위가 맹렬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벌써 가을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살며시 두드리며 속으로 파고들어 옵니다.
'가을'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무더위가 가고 찬바람이 돌면서 단풍이 물들고 곡식과 과일이 익는 계절이라고 나옵니다. 기상학적으로는 보통 9-11월을 가을이라고 하나 천문학적으로는 추분(9월 23일경)부터 동지(12월 21일경)까지를 말하고, 24절기상으로는 입추(8월 8일경)부터 입동(11월 8일경) 사이를 말합니다.
필자는 사계절 중 유난히 가을을 좋아합니다. 가을은 많은 추억들을 갖고 있고, 셀 수 없는 그 추억들을 가슴에 묻어 놓습니다. 또 이들을 오래도록 저축하는 가을 은행이기도 합니다.
집집마다 감나무에 달려 있는 홍시들의 아우성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바닥을 향해 돌진합니다. 진작 따 먹을 걸 후회하시며 숟가락으로 걷어 접시에 담으시는 할머니의 손길이 한 폭의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어머님의 '행주치마 이야기'가 빼놓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파고듭니다. '행주치마'는 여자들이 일할 때 치마(옛날 새하얀 롱스커트)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위에 덧입는 작은 치마를 말합니다. '행주'란 그릇을 훔치거나 씻을 때 쓰는 헝겊입니다. 이러한 용도를 겸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행주치마'라 이름 붙여졌다고 합니다.
'행주치마' 의 관련된 전설로는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다음해인 1593년, 당시 전라 감사 권율은 한양을 수복하기 위해 병력을 행주산성에 집결시켰습니다. 이에 평양에서 후퇴한 왜군 3만여 명이 그해 2월 12일 행주산성을 공격했으나, 권율 장군의 지휘 아래 군관민이 결사 항전하여 왜군을 물리친 이야기가 바로 행주대첩입니다. 당시 결사항전하면서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들었고, 이것으로 돌을 날라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힌 데서 앞치마를 '행주치마'라고 불렀답니다.
그런 유래를 가진 행주치마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 깊어가는 가을 속에, 더욱 애절함으로 어머니의 치맛폭 속으로 들어가고 싶게 합니다.
이와 함께 깊은 가을 들녘에는 수확을 앞둔 벼들이 황금물결을 이룹니다. 농부들은 벅찬 기쁨으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그 모습들을 바라봅니다. 초가집, 함석집, 판잣집, 기와집들의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에는 빈부의 차별 없이 가정의 평안과 화목을 위한 어머님의 숭고한 피와 땀이 보입니다.
잠시 후 집집마다 대문 앞에서 '저녁 먹으러 오라'는 어머니의 고함소리가 메조소프라노의 합창이 되어 온 마을이 소란해집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어머니의 고함 소리는 아량곳 하지 않고 노는 데만 열중합니다. 어쩌다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저마다 가기 싫은 표정으로 들은 체도 안합니다.
점점 어머니의 함성은 커져만 가고, 아이들은 연신 못들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드디어 폭발 일보 직전에 직접 아이를 '잡으러' 갑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한 놈씩 잡혀 집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잡혀 온 아이들에게 어머니는 기다리는 식구들을 위해, 그리고 시간을 줄이기 위해, 치마에 덧입은 행주치마로 얼굴을 닦아줍니다. 그리고 콧물을 '횅횅' 풀기도 하고, 놀다가 더러워진 손도 닦아줍니다. 당시는 수건도 귀한 시대라, 수건 한 장을 온 식구가 다 사용하면서도 더럽다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집 안 우물은 두레박으로 샘물을 퍼 올리므로, 동네 아낙네들이 물을 길어오거나 한 집에 여럿이 살면 한참을 기다려야 물을 떠 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녁 만찬이 시작됩니다. 아버지 밥상은 따로 있고, 나머지 밥상에는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을 먹습니다. 당시에는 밥 먹을 때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유교적 사고 때문에, 저마다 먹는 데만 열을 올렸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는 고구마가 나옵니다. 소쿠리에 담긴 파삭파삭한 고구마는 껍질도 보랏빛과 빨강색이 함께 어우러져 맛있어 보입니다.
잠시 후 동네 아낙네들 소리가 대문 밖에서부터 들려옵니다. 아버지는 자리를 피해줍니다. 어머니께서는 소쿠리에 고구마와 동치미를 함께 가져 오십니다. 가을밤은 점점 무르익어 갑니다.
동네 아낙네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 웃음보따리를 온 집을 풀어 놓습니다. 이 집 저 집 사정들을 다 아는 듯, 집안은 법원으로 바뀝니다. 그러다 모두 돌아간 후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는, 속히 꿈나라로 가라는 무거운 함성입니다.
모두 잠든 가을밤 하늘가 은하수들은 귀뚜라미들의 요란한 함성에도 아량곳 하지 않고, 잠든 식구들의 단잠을 위해 포근한 담요를 덮어 주는 은하수들의 사랑의 노래소리가 들려옵니다.
이튿날 아침에는 어머님의 행동이 바빠집니다. 가마솥으로 밥을 지으시던 어머니는 행주로 가마솥을 열어봅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곳에서, 어머니는 눈가에 김으로 인한 눈물 때문에 앞이 흐릿합니다.
'아침밥이 다 되었으니 얼른 일어나라'는 어머니의 메조소프라노는 고요한 아침의 함성입니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아이들은 저마다 더 자려고 애를 씁니다. 어머니는 방으로 가서 애들을 강제로 깨웁니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면, 빗자루로 궁둥이를 칩니다. 마지 못해 일어나는 아이들은 눈을 비비며, 곧장 우물로 씻으러 갑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아침과의 전쟁'은 어머니를 더 늙게 하고 있음을 아이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급한 나머지 우물에서 고양이 세수를 마친 아이들이 돌아오면, 어머니께서는 행주치마로 아이들의 손과 얼굴을 닦아줍니다. 콧물도 풀면서 닦아 줍니다. 때로 아이들은 잘못을 저질러 숨을 때도, 어머니의 행주치마 폭 속으로 피신합니다.
어머니의 그 치맛폭이야말로, 주님 계시던 그곳이 아닐까요? 그리운 어머니의 행주치마를, 지금 이 순간 그리움으로 불러보고 싶습니다. 밤새 불러보고 싶은 그리운 어머니, 그 그리운 행주치마 폭 속으로 다시 숨고 싶습니다.
나의 처지와 형편을 알고 치유해 주시는 주님의 치마폭 속으로 안기고 싶습니다.
/이효준 장로(덕천교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