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땅에서 한 해에 두 차례 다른 작물을 심어 거두는 것을 이모작이라고 합니다.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아직 젊은 나이에 은퇴할 수 밖에 없게 된 사람들이 증가했습니다. 의학은 발전해서 수명이 길어졌습니다. 우리는 비록 사회 구조 때문에 일찍 은퇴했더라도 이모작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전반전이라고 생각하고 후반전을 멋지게 준비하는 것이지요. 전반보다 후반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갈렙은 85세에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노래만 불러서야 되겠습니까?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열정입니다. 그 열정에 성실함이 덧붙여질 때 멋진 이모작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미 그 비결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작은 일에 성실하라고... 오래 된 노래 가운데,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돌보는 새끼 양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유심히 보고 계셨습니다. 다윗은 물맷돌을 던지는 데 능숙한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그 솜씨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과 맞물려 있을 때 골리앗을 만났고, 골리앗은 맞히기 좋은 표적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악기를 배울 때도 작은 연습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연주 실력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정도로 감동을 주었고, 혼신의 힘을 쏟은 그의 연주에 귀신이 떠날 정도였으니까요. 폴란드의 작곡가 패데레츠키(Penderecki)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한 주 동안 연습하지 않으면 나의 청중들은 그것을 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그것을 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전반기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후반기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묻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답해주실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감사하는기도를 드렸습니다.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늘 한결같은 그의 삶이었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의 음모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교수는 96세 생일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를 만났던 사람들이 그에게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평생 학습이 마음과 육체를 젊게 만든다(Lifelonglearning makes mind and body young)"고 대답했습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고, 스마트전화기의 사용법을 배우려고 청년에게 물어보는 어르신은 언제나 청년 아니겠습니까? 날 무시하지 말라고 소리나 버럭 지른다면 이모작이 아니라 일모작도 제대로 일구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지 모릅니다.
『가치있게 나이 드는 법』을 쓴 전혜성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삶이 어떤 삶이라고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적어도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삶, 누구에게나 가치가 있는 사람,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그녀의 책, p.7) 자녀에게든, 교회에서든, 친구를 만나든, 어떻게 해야 내가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삶 아닙니까?
항상 웃는 얼굴, 배려하는 마음, 하나님께나 사람에게 고맙다고 표현하는 사람, 아직도 나는 배울 것이 많다며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