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만만한 일이 하나도 없다. 피 터지게 뛰고 달리고 싸워도 쉽지 않다. 그래서 차창 가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지쳐 있는 걸 본다.
바울은 인생을 전쟁을 하는 병사, 운동 경기하는 선수, 농사를 짓는 농부 등으로 소개한다. 어디 하나 쉬운 게 있는가? 목숨 걸고 싸워야 하고, 비지땀을 흘리면서 훈련해야 하고, 땀 흘리며 부지런히 움직여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수고해도 허탕 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지금 지구촌의 축제인 올림픽이 브라질 리우에서 진행되고 있다. IS의 테러를 염려하는 목소리 속에서도 화려한 막은 올려졌다. 경기가 펼쳐지면서 한쪽에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기쁨과 감격의 환성을 부르며 즐거워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너무 억울하고 허탈해 쭈그리고 앉아서 통한의 눈물을 흐리는 사람들도 있다.
동일한 장소에서 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는 올림픽 현장이다. 이게 인생의 현장이다. 어떤 이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활짝 웃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가슴을 찢으면서 울고 있다. 그러나 기억할 게 있다. 웃음도 아름답고 보배로운 것이지만, 눈물도 그렇다.
바울은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딤후 2:5).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가 그걸 경험했다. 약물이 검출되어 올림픽 출전을 두고 오랜 진통을 겪어왔다. 애처로울 정도로. 그래서 난, 리우 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목에 걸어 그동안의 아픔과 눈물을 씻길 고대했다.
그런데 자유형 400m와 200m에 이어 100m에서도 예선 탈락하는 뼈아픈 고배를 마셔야 했다. 자유형 1,500m도 포기했다. 아예 준비를 못한 상태이니까. 이제 그는 4년 후인 2020 도쿄올림픽을 기대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그래도 나는 박태환선수에게 '수고했다, 애썼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4년 동안 정말 진땀을 흘려서라도 마지막 피날레를 아름답게 장식하기를 바란다.
신아람 선수에게 올림픽은 눈물의 장인가? 2012년 런던올림픽 때 그녀는 펜싱 코트에 홀로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다. 너무 억울해서. '멈춰버린 1초' 때문에! 이번에는 결단코 금메달을 목에 걸길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또다시 아쉬움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것도 개인전 32강에서.
줄곧 1점 차로 끌려가던 신아람. 그런데 3라운드에서 2분 1초를 남기고 동점을 만들고 급기야 역전에 성공했다. 드디어 아름다운 행진이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공격을 허용하는 바람에 연장전에 들어갔고, 결국 먼저 점수를 내주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또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다. 여자 펜싱 에페 단체전이다. 그러나 8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에스토니아에 26-27로 패하고 말았다. 최은숙은 7라운드서 17-17 동점까지 만들면서 불씨를 살렸다. 하지만 연장 끝에 1점차로 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신아람 선수의 메달 행진은 끝났다. 나는 너무 아쉬워서 연신 되뇌었다. '신아람이, 어떡하냐? 너무 아깝다. 속상하겠다.' 그러나 어찌하랴. 인생이 그런 것을.
생각하는 대로, 훈련한 대로, 기대하는 대로 다 되는 게 아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게 인생이다. 노력했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이를 악물고 훈련해도 기대만큼 결과가 안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비난하지 말자. 과정이 아름다운 것이니까. 거기까지 달려온 인생이 소중하니까.
이번 리우 올림픽은 '세계 1위의 저주'로 불리기도 한다. 세계 랭킹 1위의 메달 유망주들이 충격적인 탈락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테니스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가 세계랭킹 141위에게 세트 스코어 0-2로 참패를 당했다. 그것도 단식 첫 경기에서! 이전 올림픽 3대회에서 연속으로 우승을 했던 윌리엄스 자매 역시 복식 경기에서 체코 선수에게 1회전 탈락을 했다.
세계랭킹 1위인 한국 유도의 간판스타 김원진 선수는 세계 18위에게 패했다. 패자부활전에서도 세계랭킹 8위인 일본 선수에게 패했다. 유도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던 세계랭킹 1위인 안창림 선수도 16강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야말로 '영원한 승자는 결코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번 대회에 '랭킹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자주하곤 한다. 장담할 수 없고, 랭킹을 믿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하는 말이다. 자랑할 수 없는 게 인생이다. 한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언제 추락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 좀 더 겸손해야 한다.
리우에서 또 다른 이변도 일어나고 있다. 세계랭킹 8위인 유도의 정보경은 8강에서 세계랭킹 1위 선수를 꺾고 결승에 올라 결국 우리나라에 첫 메달을 안겨주었다. 세계랭킹 13위인 탁구의 정영식은 16강전에서 세계랭킹 1위인 중국의 마룽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마지막 2세트에서 모두 듀스까지 갔다가 안타깝게 패하기는 했지만, 그의 경기는 멋졌다. 아직 마룽과의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남자 단체전을 4강으로 올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마룽에게 설욕할 기회가 남아 있다.
세계랭킹 21위인 박상영은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3위인 게자 임레 선수를 10:14에서 15-14로 반전시키는 짜릿한 대연전극을 연출하여 기적과 같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 펜싱 첫 메달이자 우리나라 에페 역사상 첫 금메달이다. 임레의 입장에서는 아쉬웠을 것이다. 8분 20초를 이기고 있었지만, 마지막 20초를 버티지 못해 결국 무릎을 꿇은 거니까.
박상영이 올림픽 영웅이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결승전 2라운드 후 휴식시간이다. 잠시 의자에 앉아서 쉬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가 뭔가를 혼자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그래,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후∼) 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응원했다. 힘과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두 점만 더 빼앗기면 바로 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15대 14로 극적인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4점을 뒤진 상황에서 내리 5점을 따내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좀 뒤진다고 너무 기죽을 필요 없다. 자기 실력보다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 역전 드라마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추락하다가도 한순간에 역전할 수도 있다. 그러니 섣불리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역전패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끝까지 집중력을 흐트리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실력 차는 백지 한 장 차이다. 막상막하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마음이다.
올림픽에서 각본 없는 드라마도 연출된다. 작은 섬나라 피지의 남자 럭비 대표팀은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조국에 선사했다. 한때 식민지로 있었던 영국을 43대 7로 대파하고 금메달을 거머쥐는 감동을 연출했다. 미국 흑인 체조스타 시몬 바일스도 감동 드라마를 연출했다.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인 부모, 흑인은 뛰어난 체조선수가 될 수 없다는 편견. 그러나 그는 결국 체조 흑진주로 세계인 앞에 우뚝 섰다.
이란 양궁 여자 대표 자흐라 네미티. 그는 64강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고, 감동을 안겨 주었다. 장애를 극복한 영웅이니까. 휠체어를 타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경기장에 나온 자체가 감동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는 이미 올림픽 영웅이었다. 올림픽 최초의 휠체어를 탄 기수였으니까.
그는 태권도 유단자였다. 그런데 2003년 이란 남동부에 일어난 대지진 때 자동차를 타고 가다 지진 여파로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마저 빼앗아 가버렸다. 2006년 우연히 활을 잡았다 피나는 노력 끝에 올림픽 무대까지 나온 게다. 그러니 경기 내용과 상관없이 그는 사람들에게 감동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