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미국 히스패닉계 두 남자가 살인혐의로 수감된 지 23년 만에 무죄 석방됐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복잡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들이 어떤 물리적 증거나 실제 목격자도 없이 각각 26세, 21세에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49세, 44세 되어서야 풀려난 것입니다. 기사를 읽는 내내 20대 청년이 감옥에서 거의 50이 되어 버린 지난 세월을 어떻게 그리고 누가 보상하는가 답답했습니다. 21세에 입소했던 남자는 “나는 결백했기 때문에 언젠가 정의를 되찾는 날이 올 것을 믿었다”고 고백합니다. 입소 당시 생후 5개월이었던 자기 아들이 23세가 되었으니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교도소 면회실에서 잠깐씩 얼굴을 보며 위로받던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소감을 술회했지만, 무죄 석방이 23년의 세월을 돌려놓기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 억울함이 풀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답답합니다.
가족들과 행복하게 한 지붕 밑에서 살 수 있었는데, 차가운 감옥 속에 살았으니 억울한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하고 일하면서 보람있게 지낼 수 있었는데, 감옥에 갇혀 지냈으니 억울한 것입니다. 멋진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으로 죄수복이 아닌 의사 가운 혹은 목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는데 억울합니다. 선하고 유익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살았어야 했던 세월을 감옥에서 허비하며 살았으니 억울한 것입니다.
김도향 씨의 “바보처럼 살았군요” 노래가 생각납니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려버린 그런 세월…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흘려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억울한 23년의 감옥 생활이 답답한 것이 사실이지만, 더 심각한 답답함은 자유롭게 23년을 살았는데도 감옥 생활만도 못한 후회스러운 삶입니다. 노래 그대로 ‘바보처럼 살았던’ 삶입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법부의 부정행위와 오판으로 감옥생활 했다면 핑계라도 있지만, 자유한 생활을 감옥 같이 지낸 자들이 있다면 그 억울함은 어디에 가서 하소연해야 합니까?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부러워하는 우리의 하루를 ‘바보처럼’ 낭비하지 맙시다. 사랑하고 위해주어도 부족한 남편이요 아내인데, 훗날 땅을 치며 ‘억울해~!’ 하며 지난 세월을 ‘바보처럼’ 살았다고 한탄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하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노래하지 않도록, 23년 만에 억울한 감옥에서 출소한 두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하나님을 맘껏 예배하며 사랑하며 감사하며 자유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