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호수아의 당부의 말씀
14절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여호수아는 1절부터 13절까지 출애굽의 과정과 모세의 시종으로서 보고, 듣고, 체험하며 지난 역사를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 말하기를 여호와만 성실과 진정으로 섬겨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강 저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던 모든 것들을 다 제하여 버리시고 가나안 땅의 원주민을 쫓아내시고 그 땅을 자기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패를 자기 이름으로 달고 자기의 소유로 삼고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지덕지하면서 감사와 찬송가운데 더 잘 섬기며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살지를 않고 유브라데스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을 다시 섬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는 참된 영적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마음을 슬프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아직도 제사 드리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진리를 깨닫고 보면 제사를 드리는 것은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파티를 열어주는 것이며 자신의 집에 귀신들이 더 많이 와서 자신들을 더욱 못살게 괴롭히다가 결국 지옥으로 끌고 가라는 행위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고린도전서 10장 20~21절의 말씀을 처신의 원리로 삼아야 합니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전10:20~21)
참으로 염치없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제사도 참여하고 성찬에도 참여하면서 하나님께 해달라는 온갖 요구와 주문만 있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달라고 보채는데 과연 하나님이 주시겠습니까? 왜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순수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린아이의 순수성을 배우고 순수한 신앙인이 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신앙은 순수하고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듣고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목자는 그래서 애가 탑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권력있는 사람들 더 의지하여 우상을 만들고, 물질에 대한 기대가 하나님에 대한 기대보다 더 커서 또 우상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우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고, 소망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환란이나 핍박이나 고문을 당해도 하늘나라 신령한 소망을 가지고 죽을 각오로 하늘의 소망을 결신하려는 목적으로 살 때 하나님이 기대를 걸고 그때 우리를 요긴하게 들어 쓰십니다.
15절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2.여호수아의 믿음
여호수아의 믿음을 하나님은 공인하시고 보증하셨고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신실한 지도자로 쓰임받습니다. 그는 사심이 없었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따라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출애굽후 2대 지도자로 쓰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이 아니어서 여호수아의 마음은 애타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우상을 버려야 한다. 버리기 싫으면 차라리 멸망의 길을 택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선포합니다.
16~18절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의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여호수아의 설교는 매우 놀라운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설교를 듣고 여호수아의 말씀대로 하나님만을 섬기며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강력한 질책을 합니다.
19절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즉, 너희들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께서 보시고 또 여호수아 자신이 보고 알고 있는 것처럼 일편단심 하나님께로만 향하는 믿음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안타까워하며 책망하며 권면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자가 안타깝게 부르짖고 책망하며, 권면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시는 시각과 목회자의 바라보는 시각이 동일하기 때문에 목자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애타게 부르짖는 것입니다. 상선벌악(賞善罰惡)이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할줄 알기에 그것을 아는 목자가 양떼의 잘못된 신앙을 볼 때 불안하게 보여지며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부르짖고 애타는 심정으로 양떼의 잘못된 신앙을 지적하고 책망하며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에 마음을 두고 그것에 더 정열을 쏟는다면 틀린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게 분명한데 엉뚱한 것에 마음을 두고 다른 것을 섬기며 사는 이율배반적이고 배은망덕한 삶은 멸망을 재촉하는 삶이요 어리석은 삶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권면의 말씀에 따르며 여호와만 의지하고 살겠노라고 신앙고백을 하는 백성들에게 여호수아는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지저분한 생각과 오염된 처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지금 이대로는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3.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잠들어있지 않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성실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도 생리가 우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시켜서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고 기업의 후사로 우리를 가꾸시며 다듬어 가시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두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날 때 그 인생의 결과가 비참할 것을 하나님은 두려워하여 그 사람을 그냥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정성과 애정을 성도들에게 집중하셔서 그들이 다른 것들을 정성스레 섬기면 질투하시고 그냥 두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투는 성도에게 유익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채찍질 하고 징계하심은 아직 우리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다는 증거이며 기대가 있고 관심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 회개하고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으로 새출발하시기 바랍니다.
21~25절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여호수아가 가로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한지라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베풀었더라”
여호수아는 다짐하는 백성들과 더불어 세겜에서 언약을 세웁니다. 약속이 헛되지 않기 위해 짐승을 죽여 하나님을 절대로 버리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죽은 짐승은 짐승 하나의 생명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죽음을 대신한 것이며 이 언약은 죽을 지경에 순교의 자리에 가더라도 절대로 변하지 않을 언약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다른 뜻을 좆는것은 영적인 간음입니다. 믿음의 정절을 지켜 하나님께 인정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