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양면성을 지닌 채 한평생을 산다.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것은 기본이고 또한 건강과 병도 동반자로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최선의 건강 유지 방법으로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고루 섭취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즐겁게 살라는 것이 공통된 지론이다. 그 범위 안에서 기독교인들은 병에 걸렸을 때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대처할까?
첫째로 병 낫기 위해 기도한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약5:14)"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현대 의학의 힘을 의지하지만 건전한 민간요법과 기도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또 병 낫기를 위해 여러 동역자들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실 때 침을 흙에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호수에 가서 씻어 깨끗게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일부 신자들은 기도만으로 병을 고치려 하고 의술을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
둘째는 병을 반려자로 생각한다. 나이 60, 70을 지나면서 이곳 저곳 아픈 곳이 늘어나고 약국과 병원을 찾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 일이 삶의 질을 떨어뜨려 사는 맛을 잃는다는 분들이 꽤 많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자. 현대 의학은 계속 발달하여 현재 100세 시대를 이끌고 있고 앞으로 얼마나 더 길어질지는 모르지만 장수의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을 현대 의학계에 고맙게 생각하자.
여기에 한 가지 첨부할 내용이 있다. 사도 바울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병은 어떤 병이나 고쳐주었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리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기의 고질병은 고치지 못하고 한평생을 살았으니 세상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는 후일에 고백하기를 자기가 지니고 있는 병(가시: 간질 또는 심한 눈병)을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3번이나 기도했으나 병 고침을 받지 못했다. 이유는 본인 자신이 모든 면에 능력이 많다고 생각할수록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생기고 교만해진다는 것이다. 더욱 귀한 생각은 자기가 행하는 모든 능력들은 하나님이 복음 전파를 위해 자기에게 당분간 주신 것인데 자기의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진리를 깨달은 바울은 계속 같이 살아야 하는 자기의 병에 오히려 감사했다. 즉 자신이 약하다는 것과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겸손은 기본이고 인간 관계가 원만해지고 주위에 있는 약한 사람들을 더 돕게 된다.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일에 한걸음 더 앞장 서게 된다.(고후11:18-33)
내가 존경하는 한 부부가 있다. 두 분은 부잣집에서 은수저를 입에 물고 나온 집의 자녀들로 외모나 성품도 좋았다. 공부도 잘해서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두 분이 결혼을 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가정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태어난 아기가 지체장애자였다. 그 부모는 너무도 실망하고 좌절감을 가지고 고민하던 어느 날 기독교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자기 부부에게 남들이 갖지 못한 것들을 많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지 못하고 교만했던 자신들을 회개하고는 지나칠 정도로 겸손해졌다. 누구를 만나도 먼저 인사하고 웃는 얼굴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그 부부는 아들의 병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사는 기회가 되었다.
세번째는 찬란한 천국, 병이 없는 곳, 고통과 눈물이 없는 하늘나라를 소망중에 바라며 하루 하루를 병을 이기며 기쁘게 사는 것이다. 새 날이 밝았다. 모든 것이 새로워진 하루의 시작이다. 오늘도 기쁘게 살리라. 살아있다는 자체가 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