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입니다. 모두들 고향을 찾아 그리운 친지들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리나라, 삼천리 금수강산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해마다 찾아옵니다.
그 아름다움에는 많은 푸른 산과 천혜의 계곡,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폭포, 대지를 흡족히 적셔 주는 많은 강물이 은물결 반짝이며, 들녘을 가로질러 흐르는 모습은 정겨운 노랫가락 같기도 합니다. 특히 전 국토의 4분의 3이 산으로 덮여 있어, 병풍처럼 바람과 적을 막아 주는 성이 되기도 합니다.
옛 선조들은 과거를 치르기 위해 험준한 산 계곡을 따라, 그리고 꼬부랑 산길로 들길로 봇짐과 지팡이에 힘을 의지하며 다녔습니다. 어머님이 읍내로, 지어 놓은 농산물을 팔러 5일장마다 다니셨던 꼬불꼬불했던 산'길', 아이들이 책 보따리를 허리에 차고, 뛰며 달리던 추억의 산'길', 친구들과 사이 계곡에서 가재 잡고 물장구치며 즐겼던 산'길'....
그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주위의 아름다움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길 따라 다녔던 그 행복했던 시절이 지금도 무척 그립습니다.
시대를 따라 사람들의 욕망으로 인해 산길은 점점 사라지고, 이제 많은 도로가 생겨났습니다. 작은 도로 큰 도로가 생겨날 때마다 그곳에는 굉음이 울리고, 사람들의 이기심에 찬 차가운 전쟁이 시작됩니다.
산길을 다닐 때 바로 옆에서 쏟아져 내리는 하얀 폭포수의 자태를 감상하고, 그 속에서 친구들과 물장구치며, 서로 등을 밀어 주고, 고무신으로 물싸움하던 그 시절이 가슴 저리듯 그리워집니다. 하지만 여기저기 도로가 생겨나면서 인간들의 욕망은 더 거칠어지고, 인간관계도 점점 멀어져 가며,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당장 눈앞에 아른거리는 물욕에 급급해 사나운 도로로 광야 같은 마을로 변질되어 가는 모습을 볼 때면, 여기가 사하라 사막인가 싶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도, 험준한 산길을 헤매고 걸으며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함을 통해 영광을 나타냈던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에는 산이 많아, 산에서 이뤄지는 역사가 많다는 점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길'은 참 소중하고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에게 가야 할 목적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이정표이기도 하고, 생명의 길이기도 합니다. '길'을 잘못 선택했을 때는 아주 참혹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길'을 가다 보면 이웃이 보입니다. 조그만 냇물도 보이고, 사이사이로 굽이굽이 흐르는 폭포도 보이고, 논두렁 밭두렁에서 피는 파란 잎들도 보이며, 흥얼거리면서 추수를 기대하는 즐거움으로 연신 땀을 닦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루가 지는 서산, 발갛게 물든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허리를 펴는 농부들의 모습들을 보노라면, 삶의 정성이 무르익어가는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도로는 '악마의 길'일 수 있습니다. 인간들의 편리와 욕망으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고 질서가 무너지며, 행복해야 할 삶들이 짓밟히곤 합니다. 이는 세상이 점점 검어져 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좁은 문으로, 그리고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큰 문과 큰 도로에는 언제나 간교한 뱀들이 우글거리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산길을 걸을 때는 그렇게도 마음들이 아름다웠는데, 점차 도로가 커지면서 이웃을 보지 못하게 되고 내 삶의 중심도 바뀌어 버리면서 주님의 가르침과 점점 멀어져 감을 크게 느낍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작은 일을 소홀히 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일만 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담임목사님 앞에서 생색을 내는 데는 잔머리를 굴리지만, 어렵고 힘들며 누가 보지 않는 곳에 있는 길은 멀리함에 심히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주님의 자녀입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주님과 함께하는 신앙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외면한 채, 내 생각 내 욕망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다 헛됨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위기의 도로에서는, 분명 일부 지도자들의 잘못되고 변질된 신앙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무참히 짓밟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길'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길을 가야 천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교만과 욕망, 그리고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는 한, 그 길은 멸망으로 향하는 '큰 도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지도자들도 물질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교회의 참 모습을 더 이상 만나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목사님들의 사례금을 드릴 수 없는 열악한 형편의 교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대신 집에 있던 닭이 알을 낳으면 목사님께 갖다 드리고, 고구마와 감자를 삶아 갖다 드리곤 했습니다. 목사님을 잘 대접하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던 그 시절의 '길'은 참 좋았었습니다. 그리고 매 주일 성미를 바치며, 함께 식사하면서 울고 웃던 때를 새삼 추억하며, 그 시절 아름다웠던 신앙을 되새겨 봅니다.
어느 한 가정에 불이 나거나 무슨 변고가 생기면 목사님이 직접 교인들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던 그때, 그 교인들이 진정 선민이었음을 새삼 느껴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 지도자들은 먼저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기득권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의 고집과 아집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특히 물질욕을 내려놓아야만 기독교의 미래가 보일 것입니다. 설교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또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늘 불안한 폭탄을 안고 싸우는 마귀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 시절 산길을 걸어갑니다. 그 길에서는 주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만과 욕망, 나의 못된 심성과 고집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내 주를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멀리 내쫓는 험악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시고, 물질에서 자유로움을 누리시고, 교만에서 나를 내려놓는 아름다운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무도 보지 않지만 참된 그 길을, 우리 함께 걸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