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에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분배받아 나아간 탕자는 분명히 탕자입니다. 그러나 그 탕자는 돌아왔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영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안의 탕자입니다. 형은 동생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아버지의 집에 살면서 아버지의 아픈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동생이 다시 돌아왔는데, 형은 아버지가 동생을 위해 잔치를 벌려 주었다는 이유로 불평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자기에게 아버지는 송아지는커녕 염소새끼 한 마리도 친구들과 함께 먹으라 하지 않았다고 항의합니다.
탕자는 집밖으로 뛰쳐나간 사람도 있지만, 집안에서도 아버지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율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동생이 회심하고 돌아왔는데 아직도 정죄의 칼을 휘두르는 집안의 탕자가 있습니다. 탕자문명은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고 교회 밖으로 나아간 인본주의자, 계몽주의자, 진화론자뿐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남아있으나 복음으로부터 빗나가거나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명목상의 신자도 교회안의 탕자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를 유형교회와 무형교회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조직상의 보이는 교회인 유형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고 하여 모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구원받은 참된 신자들로 구성된 무형교회가 있다고 주장하였고, 이 무형교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예수님을 배척한 유태인 공동체와 같은 복음에서 멀어지는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자칭 유태인들의 회가 사탄의 회였던 것처럼, 교인들이라고 하지만 이단사상, 신비주의, 은사주의, 과격한 종말론, 직통계시와 신사도 운동, 뉴에이지,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현대사상에 사로잡혀 신앙적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칭 교회라고 하지만, 사실은 건강하지도 건전하지도 않은 운동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불안과 헛된 열심, 일상생활의 포기로 그리스도인의 몸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를 폐지하고 있습니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교회에 진화론이나 여러 이데올로기들이 들어와 성경적 신앙을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교묘하게 결합시킨 주장을 하는 사람도 교회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진화의 과정을 사용하신다는 “유신론적 진화론,” 오랫동안의 진화론적 지구역사를 주장하기 위한 “점진적 진화론,” 검증되지 않는 지질시대표에 다중의 격변을 상정하여 만든 “다중격변론”이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성경의 증언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교회 안의 탕자가 되기 쉽습니다. 무늬는 신자인데 실제로는 진화론, 상대주의, 종교다원주의, 신비주의를 좇으면서 방황합니다. 집안의 탕자는 성경적 신앙을 상실하여, 깊이 회심하고 사도적 신앙을 가지게 된 자를 핍박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