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Photo : 기독일보) 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스트레스 조절이라는 온라인 클라스에서 애착(Attachment)이란 말에 관해 동료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중에 하나의 예를 든다면, 어느 여자 학생이 남자 친구가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을때 분명 가게에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남자 친구가 자신에게 텍스트를 보내지 아니하면 혹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계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같이 사는 가족의 구성원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는 자신에 대해 표현하기를 " 나는 만성적인 근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에게 일어나는 공통점의 염려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관계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애착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애착은 동물들이나 새들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호수가 있는 공원에 가서 보면 가끔 아기 오리들이 어미를 따라 줄지어 먹이를 찾다가 흩어져 있다가 어미를 쫓아가는 것을 잃어 버리면 다른 어미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다른 어미 오리가 자신의 새끼와 무리를 지어 뒤를 쫓아오는 오리 새끼를 쫓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그것은 새끼가 가지고 있는 어미에 대한 본능을 다른 어미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어미 오리가 자신이 낳지 아니한  어린 새끼를 본능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언젠가 TV 뉴스에서 영상을 보여 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동물원에 사는 고릴라가 어린 호랑이 두마리를 호랑이 어머니 처럼 사랑하고 어린 호랑이들은 고릴라를 자신의 어미처럼 여기며 즐겁게 노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것을 보면서 느낀 것은 짐승도 사람들 처럼 본능적인 애착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볼때 애착을 갖는다는 것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것이 정도에 지나치게 되면 과도한 염려와 불안을 조성하게 된다. 이로인해 상대방을 자유하게 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지나친 애착으로 서로에 대한 신뢰 관계에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과 가까운 관계를 이루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소유의 관계로 전환이 되면 언제나 상대를 대하는데 있어서 염려와 불안이 계속적으로 지속되어 정서적인 불안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된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대를 믿고 신뢰하고 가까운 사람을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는 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나의 마음의 울타리에 그 사람을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이 보호하시도록 그를 위해 기도로 축복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돌보시도록 맡기는 것이다. 이러할 때 상대가 진정한 자유함을 가지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지난 11월 초 시애틀의 밀알에서 주최한 "김민아 집사의 간증 집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김민아 집사가 간증을 한 것은 자신의 아들 승욱이가 태어난 후 성장하면서 승욱이가  3중 장애를 가진 것을 알게되 었다는 것이 간증의 시작이었다. 그 과정속에서 삶에서 주어지는 아픔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나에게 어떻게 이런 고통을 줄실 수 있을까?"에 대한 뼈속까지 아픈 그의 마음속 깊이 느꼈던 고통의 나눔을 듣게 되었다.

김민아 집사가 간증을 나누는 중에 몇 가지 도전을 주는 말들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신다.",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은 기다림이다.", "사랑하는 승욱아 너는 내 아들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폐암으로 병원에서 마지막 임종하기 직전에 김민아 집사에게 부탁한 유언이 필자의 마음속 깊숙히 박혔을 뿐 아니라 눈가에 눈물이 맺어지게 되었다. 그것은 "너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라" 이것을 통해 김민아 집사는 승욱이 이야기를 나누는  간증집회를 시작하였다. 그래서 김민아 집사는 간증집회 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였으며 절망과 좌절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증거하는 복음의 대사가 되었다. 삶의 고통과 자식이 눈 이식 수술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그 아들에게 세상을 보여 줄 수 있었던 시간은 일주일 밖에 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민아 집사가 희망을 가지고 살면서 복음을 증거한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 부터 "승욱이는 내것이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 간증을 들으면서 생각난 것은 송명희 복음 가수가 부른 "너는 내것이라"는 찬양 이었다. 그 찬양 가사를 보면, "너는 부유해도 가난해도 너를 사랑하여 구원했으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잘 났으나 못 났으나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강하여도 약하여도 너의 힘이 되어 일으키리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외로워도 약하여도 너를 나의 피로 바꾸었으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송명희 씨가 부른 찬양을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이사야 43장 1절이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이 말씀에 나오는 야곱의 삶을 살펴본다면 그의 이름의 뜻은 '사기꾼'이다. 그리고 그의 삶의 과정을 보면 그는 정말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장자인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기 위해 그의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 에서의 장자권을 갈취한 것이다. 그런 그가 20년 만에 하란 땅에서 돌아오던 중 얍복강 나루터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꿈을 꾸게 된다. 그후 그는 야곱이라는 이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하나님으로 부터 받게 된다. 하나님은 사기꾼을 변하게 하여 하나님의 사람, 승리의 사람으로 만드신 것이다. 이것을 볼떄 하나님은 허물 많은 야곱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그를 축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일으키는데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한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은 야곱에게 너는 내것이라는 말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신 것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비유를 신약에서 찾아 본다면 그것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이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허랑 방탕한 생활을 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올때 너무나 기뻐 그아들에게 새옷을 입히고 반지을 끼워 주었으며 송아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다. 그런데 그것을 본 형은 마음에 불평, 불만 그리고 동생에 대한 오해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 아버지는 어떻게 저렇게 나쁜 놈을 쉽게 받아들이고 그에게 뭐가 대단하다고 잔치를 벌여 주시는 겁니까? "라고 불평 불만을 토로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볼 때 돌아온 탕자는 큰 아들 처럼 소중한 아들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의 아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인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나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신 것이다.  사랑의 주님은 오늘도 나에게 너는 내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심을 절대로 후회 하지 아니하신다.

크릭사이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 전화)425-773-9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