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었던 인물들을 현대 선교의 역사적 관점으로 조명해 봄으로써 오늘날의 선교전략 연구 및 실행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본 자료는 양태철 목사(GMI(GRACE MINISTRIES INTERNATIONAL; 은혜한인교회) 선교팀장) 제공으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 중국명 戴德生<대덕생>)는 ‘중국 내륙선교의 개척자’, ‘믿음선교의 아버지’로 불리우며, ‘현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 1761–1834)에 의한 ‘해안 선교 시대’를 이은 ‘내륙 선교시대’를 연, 19세기의 괄목 (刮目)할만한 선교사라로 볼 수 있다.
현대선교의 이론적 정리에 큰 역할을 했었던 랄프 윌프(Ralph Dana Winter, 1924-2009)는 테일러(Taylor) 선교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More than any other human being, James Hudson Taylor, ….made the greatest contribution to the cause of world mission in the 19th century.", 19세기 세계선교가 있게 한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으로,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로 볼 수 있다 <필자 의역>).
중국에 거주하면서 사역한 기간은 1854년부터, 그가 중국 호남성에서 1905년 주님 품에 안길 때까지 총 51년의 기간 중, 만 27년간이 되었다. 그 중, 1895년에는 중국 전역에서 사역하는 CIM(China Inland Mission, 중국내지선교회) 소속 선교사가 641명에 이르렀고, 중국인 현지 조력 사역자가 462명이 되었으며, 이들이 중국 전체에 260개의 지부를 형성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또한 테일러(Taylor)가 소천하는 해인 1905년에는 800명의 선교사가 205개 지부에서 사역을 하게 되었으며, 중국 전역에 125,000명의 중국인 기독교인이 믿음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1914년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선교회가 되었고, CIM 선교회의 최대 전성기인 1934년에는 1,386명의 선교사가 활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테일러(Taylor)의 중국 선교는 다음의 7가지 관점에서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인들과 선교사들에게 귀감(龜鑑) 된다고 보며, 이에는 ①부모의 자녀들을 위한 기도의 중요성, ②선교사로서의 철저한 준비, ③선교사의 철저한 선교지 적응, ④선교지에서의 철저한 팀 사역, ⑤선교사의 철저한 믿음선교의 자세, ⑥선교사의 전략적 선교 (교육선교 및 미전도 종족 선교), ⑦선교사의 불굴(不屈)의 헌신(獻身)을 들 수 있다.
첫째, 부모의 자녀들을 위한 기도의 중요성으로써, 테일러(Taylor)의 부모인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와 아멜리아 허드슨(Amelia Hudson)는 테일러(Taylor)를 회임 (懷妊)했을 때부터, 그가 선교사의 삶을 살게 되길 기도하였다. 둘째, 선교사로의 철저한 준비를 위하여, 테일러(Taylor)는 의학과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영적으로 준비함과 동시에, 생활습관을 열악한 중국 선교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절제되고 힘든 생활을 통하여 선교사의 길을 스스로 준비하였다. 셋째, 테일러(Taylor)는 철저한 현지 적응화(identification, assimilation, cultural accommodation, adoption, indigeneousness, localization)를 위하여, 변발(辮髮)을 하고, 모든 생활을 중국 현지인과 동일하게 하도록 노력하였다. 넷째, 선교지에서의 철저한 팀 사역을 위하여, 테일러(Taylor)는 1865년에 중국내지선교회(CIM, China Inland Mission)을 세워서 함께 팀 사역을 하였으며, 1964년에 그 명칭이 OMF (Oversees Missionary Fellowship)로 변경되어, 오늘날에도 중국 및 중화권 선교를 활발히 감당하게 하는 계기(契機)를 마련하였다. 다섯째, 선교사의 철저(徹底)한 믿음선교(faith mission)의 대표적인 예를, 테일러(Taylor)는 특별히 CIM을 설립한 1865년부터 잘 보여주었다. 그 일예로, 그가 소천하게 되는 1905년까지 40년간, 누가 보내준 헌금인지도 모르는 헌금의 액수인 약 20만 영국 파운드(오늘날의 화폐가치로 약 2,500만 달러)로 선교를 잘 감당한 것을 들 수 있다. 여섯째, 테일러(Taylor)는 그 당시 해안지역 외의 내륙지역의 미전도 종족들에게의 선교를 강조함과 동시에, 교육선교를 강조하며, 그대로 실행하였다. 일곱째, 테일러(Taylor)는 선교지에서 4명의 자녀와 아내를 잃는 아픔과 1900년의 ‘의화단 사건’(Boxer의 난)으로 인하여, 58명의 CIM 소속 선교사와 21명의 선교사 자녀들이 피살되는 아픔가운데에서도, 끝까지 포기(抛棄)하지 않고, 불굴(不屈)의 헌신으로 선교사명을 감당하였던 것이다.
대만의 은혜신학교와 중국 본토에 위치한 3곳의 은혜신학교를 비롯, 여타의 신학교를 통하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와 같은 헌신된 수많은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이 많이 나옴으로 인하여, 15억이 넘는 중국 본토인들의 복음화와 전 세계에 산재(散在)한 7천만 명(대만의 2,400만 명 포함)이 넘는 화교 디아스포라들의 복음화 및 전 세계 복음화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