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살던 동네에 새 커피 집이 하나 생겼다. 월요일이 되면 아내와 어김없이 찾아가는 곳이었다. 그 가게는 유명하지도 손님이 많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가게가 새로 생길 때부터 가던 곳이라 쉽게 다른 곳으로 가게 되지 않았다. 그 가게의 가구들과 모든 물건들도 친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커피 집에는 내가 늘 앉던 의자가 있었다. 그 의자는 여러 가지 색의 가죽으로 만든 조금 요란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의자였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그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다른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좋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 의자에 아내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그 후 거의 5년 만에 그 가게를 아내와 다시 찾아가 보았다. 그랬더니 가게는 그대로인데 모두 딱딱한 의자로 바꾼 것이다. 얼마나 마음이 아쉬웠는지 모른다. 그 날 커피를 사서 창가에 있는 나무의자에 몸을 맡기고 아내와 앉아 있었지만 이전에 느꼈던 그 감정은 찾아오지 않았다. 의자의 문제일까? 아니면 커피의 문제일까?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내 마음의 문제였다. 지난 5년여 동안 다른 커피 집의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날 아쉬운 마음으로 아내와 옛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를 끝까지 마시지 않고 자리를 일어섰다.
그 커피 집을 생각하면서 기도의 자리를 생각해 본다. 나의 기도의 자리는 아침에 무릎을 꿇는 교회다. 언제부터인지 아침에 교회 강단 아래 엎드려 기도하는 습관이 생겨나면서부터 그 자리는 나의 하루 중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좋은 장소가 되었다. 그 자리는 나의 감사한 마음, 기쁨, 아픔, 낙심, 절망 전부 쏟아놓을 수 있는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바뀌지 않았다고 해도 모두 변할 수 있다는 소망을 얻는 곳이고, 또한 새로운 계획을 받는 곳이며, 혹은 나의 뜻을 굽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역의 변화가 생겨서 교회를 옮겨야 하는 때에도 조금 시간은 걸렸지만 동일한 자리로 금방 변하기도 한다. 그 장소는 좋은 카펫이 깔려 있어야 하는 조건도 아니고, 잘 정리해 놓은 강단이 앞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면 되고, 방석 하나면 되며, 가장 중요한 하나님 앞이면 된다. 그 자리는 나의 인생에서 참으로 좋은 자리다. 그 자리를 세상에 그 어떤 것에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아침에 그 자리를 다녀왔다.
다니엘서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라고 했다. 다니엘은 그 맛을 벌써 알았던 것이다.
우리도 이 맛을 알고 믿음생활 해야 하지 않을까? 커피 집도 잘 옮겨 다니지 않는 것이 우리 아닌가?
기도의 자리를 정하고 결코 그 자리를 옮기지 않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 맛을 알기 때문이다.
커피의 맛은 이 집 저 집에서 볼 수 있지만, 기도의 자리는 한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던지 하나님 앞에 겸손한 무릎이다. 분위기와 가구를 탓할 것 없다. 늘 그 맛을 보기 위하여 커피를 찾듯이, 늘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기도의 그 장소가 우리를 살릴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니엘과 같은 충성된 기도의 종이 되기를 기다리신다.